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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Mar 21. 2022

교육소설 ep2.

엄마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이름, 인물 등은 실제사건과 관계 없습니다.










 모처럼의 연차 날, 지영은 아침에 여유롭게 아이를 등교시키고 동네 스타벅스를 찾았다.




날 위한 교양서적도 읽고 싶지만 옆구리에 낀 책은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




이미 나온 지 2년이나 지난 베스트셀러이지만 그간 바빠서 못 읽었던 터라 3학년에 올라간 올해엔 꼭 읽어야겠다 싶었다. 학년별로, 나이별로 전부 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터라 대체 안 중요한 나이는 언제인가 싶지만 그래도 안 읽으면 불안하니까 무슨 내용인지라도 훑어봐야겠다.






 스타벅스 앱을 켠다. 언제나 주문할  고민한다.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떼를 마실지 아니면 시즌 음료를 마실지 말이다. 아메리카노가 제일 무난하긴 하지만 고소한 라떼가 당길 때도 있고, 조금 특별하고 달달하게 시즌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때도 있다. 겨우내 불어난 옆구리살과 매달 쓰는 커피값을 생각하니 역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 날이 제법 따뜻해졌으니 바로 아이스로, 오늘은 아아메다.


 주문을 마치고 주변을 슥 둘러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놓고 앉은 손님들이 다들 지영 또래의 아이 엄마들 같다. 평일에 이렇게 아침부터 카페에 있을 수 있다니 저 엄마들 팔자가 부럽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





향후 중고등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을 좌우할 학습 격차가 초등 3학년에 나타나기 시작해 5학년 때 심화된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초3을 놓치면 다 놓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초등 3학년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학년입니다.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 해피이선생








 책 표지에 적힌 문구만 읽었을 뿐인데 목이 바짝 탄다.


 때마침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와 종이 빨대를 꽂아 한 모금 쭉 빨아 올린다. 종이 빨대는 아무리 써도 적응이 안된다. 아메리카노에 펄프타서 먹는 맛이다. 빨대를 뽑아 버리고 그냥 입을 대고 마신다.


초2 겨울방학을 절대 놓쳐서는 안됩니다.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 해피이선생


 지영은 아메리카노 속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와그작 씹었다.

 당장 민재가 3학년이다. 약간 손이 떨리는 것이 책 내용 때문인지 아침부터 들이킨 카페인 때문인지 모르겠다.





민재엄마!



 고개를 들어보니 채윤엄마가 있었다.




 로저 비비에 스니커즈를 신고 손목에는 에르메스 피코탄 백이 걸려있다. 필라테스라도 다녀온  룰루레몬 요가복 위에 경량 패딩을 걸쳤다. 전에 엄마들이  보석 박힌 신발을 신고 다니길래 편해보이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보여 찾아봤더니  켤레에 150만원씩하는 걸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남편이랑 합쳐  1,000만원을 벌어도 신발  켤레에 그정도 돈을 턱턱 못쓰는데 다들 돈이 어디서 나서 그렇게 흔하게 신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오피스룩으로 유명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신발이 왠지 수줍어 지영은 저도 모르게 발을 살짝 겹쳐 모은다. 엄마들이 신는 스니커즈의 출처를 검색하다가 전에 같은 사이트에서 예뻐서 샀던 메리제인이 로저비비에의 카피제품인 걸 알게 되고 나서는 신지 않고 있다.




'채윤엄마는 다 오리지널만 신겠지.'




채윤엄마, 오랜만이에요.




 채윤엄마는 오는 길에 사이렌오더로 시켰다며 이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받아왔다.




  채윤엄마는 교육정보에 빠삭한 전업맘이다. 영어유치원에 보낼 때 알게 되어 지금까지 동네 학원 정보를 채윤엄마에게 듣고 있다.




 엄마들끼리의 관계는 묘하다.




 친구는 아닌데 친구보다 자주 마주치는 사이. 애를 같이 키우는 동지 같다가도 애들끼리 싸우면 체면을 차려야 하는 원수. 애가 공부를 잘하면 학원 탑반을 꾸릴 때 모셔야가야하는 갑이었다가도 학원 T.O 나 내신등급 앞에 놓이면 치킨게임의 경쟁자. 그런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관계다.


 전반적인 교육정보야 요즘 같은 시대에 유튜브만 켜도 강의가 쏟아지고 지영의 손에 들린 책에도 한가득 적혀있다지만  동네 찐정보는 이런 채윤엄마같은 전업맘들 사이에서만 얻을  있는 것이다.


 민재를 영유보내던 시절에도 채윤엄마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T 영유가 원장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이야기. M 영유는 원장이 미국 한 번 살아본 적 없으면서 학벌을 허위로 기재하고 상담하다가 그 대학 나온 학부모에게 딱 걸려서 개망신을 당하고 학원을 접었다더라. R 영유는 아이들에게 훈육을 하겠다고 교실 불을 다 꺼버렸다가 애들이 무섭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 반 아이들이 집단으로 D 영유로 옮겨 버렸다는 일화. D 영유에서는 또 원어민 강사 한 명이 이태원에서 마약에 취해 출근을 못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도 자 채윤엄마에게 들었다. M 영유는 민재도 보낼까 알아봤던 곳인데 역시 안보내길 잘했다.




이제 3학년인데 민재 수학학원 어떻게 할 거에요?



 엄마들의 대화는 얼굴을 보자마자 약간의 스몰톡 이후에 늘 교육 이야기로 이어진다.




“지금 보내고 있는 S학원은 초등 1, 2 정도까지가 꽃이라고 해서 더 보내긴 좀 성에 안차고 4학년 때 H 학원 보내고 싶긴 한데 그러려면 또 3학년에 엄청 잘해놔야 합격할 거 같아서 안그래도 고민이에요.”




“민재는 지금도 S 학원 프리미어반 다니니까 그럼 B 학원 탑반 넣어보는 건 어때요?”




  스토리텔링 수학으로 유명학 B학원은 경시반이 아니면 보내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경시반만 H원장이 직강을 하는데 원장반 수업을 듣기 위해서 대치동에서 역으로 라이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동네 찐정보를 알기 힘든 워킹맘 입장에선 채윤엄마같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절실하다.




 “아니면 옆동네에 J 학원이 이 동네에서 오래해가지고 잔뼈가 굵은 곳이에요. 저기 길건너에 P중학교도 전교 1등에서 4등까지 다 그 학원 다닌대요. 원래 초등 고학년 이상만 받아주는 곳인데 초3도 잘하는 애들 모아오면 원장 직강으로 특별히 탑반 꾸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4명만 모아오라고 하던데 민재 혹시 생각있어요?”




 학군지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많다. 이곳저곳 학원에서 제발 우리 학원으로 보내달라며 러브콜을 보내오기도 하고 잘하는 애들로만 팀을 꾸려 학원의 대표반으로 삼기도 한다. 들어는 봤지만 3부터 벌써 이런 제안을 받는다는 사실에 랍다. 그래도 제안을 받는 입장이라니 내심 기분이 좋기도 하다.




“지금 민재가 S학원을 워낙 즐겁게 다니고 있긴 해서 제가 좀 고민해보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일주일 안에 알려달라는 대답을 듣고 이야기는 어느새 새로운 반 이야기로 넘어갔다.




 “참, 채윤이 회장 됐다면서요. 너무 축하해요. 우리 민재도 나가보고 싶다고 나가더니만 대차게 떨어지고 온 거 있죠? 부회장은 다 모르는 애들이더라고요.”




 지난 주 있었던 학급임원선거 전날 밤, 퇴근 후에 피곤해 죽겠는데 함께 공약도 준비했건만 민재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회장에 당선된 채윤이는 8표나 받았는데 본인은 3표를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애 친구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건데 회사를 다니는 바람에 친구를 별로 못만들어줘서 그런가싶어 지영의 마음 한구석이 쿡 쑤셔왔다. 그래도 처음 해보는 학급임원선거에 도전해본 민재가 기특해 칭찬을 마구해주었다.




“부회장은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뽑는데 남자는 준서, 여자는 아린이가 됐어요.”




다 처음 듣는 이름들이다. 이러니 민재가 불리했지.





그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이에요?



 “아린이는 채윤이랑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M 영유 나오고 지금 C 수학학원에서 채윤이랑 같은 반이에요. 엄마도 뭐 무난하고요.”




 아이의 출신 유치원과 현재 다니는 학원으로 사회적인 좌표가 설정되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들을 통해  엄마의 교육관에 어느 정도 짐작해볼  있는 것은 맞기에 지영은 수긍했다.





준서..는 좀.. 특이해요.




 아린이에 대해 매끄럽게 설명하던 채윤엄마가 준서 차례가 되자 조금 머뭇거렸다.


 "우리 애들다니는 초등학교에 병설 유치원 있죠? 거기 나왔어요. 여기는 다른 지역이랑은 달라서 병설보다 영유를 선호하니까 병설이 늘 자리가 남아돌거든요. 거기 누가 보내나 했더니만 준서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학원은 축구랑 태권도만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준서 누나도 있는데 누나도 학교 방과후 교실만 잔뜩 보내고 그냥 학원은 안보낸다나. 암튼 엄마가 좀 별종인 거 같아요. 애들을 좀 방치하는 느낌?!”




영유를 안보내는게 좀 특이하다?




 순간 그게 그런 취급을 받아야할 정도의 일인가 싶었지만 민재가 자기 전 읽어줬던 책에서 다리가 세 개인 나라에선 다리가 두 개인 주인공이 별종 취급을 받았었던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이 동네엔 병설 유치원을 제외하고는 일반 유치원이 없다. 이 동네에 일반 유치원을 세워가지고는 비싼 땅값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은 대부분 상가 건물 한 층을 임대하고 있는 영유를 다닌다. 모두가 영유를 다니는 곳에선 병설유치원을 나온 아이가 특이한 아이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엄마!




 스타벅스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 아이들이 너나 없이 모두 각자의 엄마를 찾아 학교 가방을 내려 는다. 밀크 푸딩을 하나 먹고 학원 가방으로 바꿔 메고 나선다.  테이블 아이는 숙제를 아직 못했는지 유기농 곰돌이 젤리를 질겅이며 문제를 풀고 있다. 어서 하라며 채근 중인 엄마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얼음을 와작와작 씹어 먹는다.  학원 시간은  앞인데 숙제를 안해서 속이 바싹 타들어가는  애꿏은 얼음을 씹으며 삭히고 있다.



 교육서도 좀 읽었고 채윤엄마를 만나 반 아이들 정보와 수학학원 정보를 얻었으니 오늘 연차를 나름 가치있게 썼다. 지영은 스타벅스 유리문을 밀고 나와 요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에 민재의 어휘문제집과 독해문제집을 고르러 옆건물 문제집 전문 서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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