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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Mar 28. 2022

교육소설 ep3.

대치동 레테의 기억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이름, 인물 등은 실제사건과 관계 없습니다.



민재엄마, 좀 생각해봤어요?








카톡이 울렸다. 채윤엄마다.









원장님이 채윤이 봐서 특별히 반 구성해주는거지. 나중에 고학년 되서 들어가려고 하면 정말 들어가기 힘들어요. 성적된다고 해도 원장반 들어가려면 기본 대기 2년이에요.









이 동네 교육정보라면 빠삭하게 꿰고 있는 채윤엄마가 꾸리는 팀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민재를 넣어주려고 하다니 지영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와 파티션 아래로 살짝 몸을 숙였다. 전업맘들이 워킹맘을 안껴준다고 하지만 역시 애가 잘하고 볼 일이다. 애 성적이 바로 엄마의 얼굴이자 계급이다.







채윤이와 민재가 팀을 이룬 것은 처음이 아니다.



민재가 7세 겨울 무렵이었다.







이 동네에서 난다긴다 해봐야 대치동 가보면 또 여긴 댈 것도 아니에요. 가서 레테보면 우리 애들 전국에서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채윤엄마가 말을 시작하면 다른 엄마들은 숨을 죽이고 경청했다.







대치동에는 소위 빅3 라 묶이는 3대 영어학원이 있어요. 그런데는 원래 레벨테스트조차 아무나 안보게 해줘요. 학원 설명회 들은 사람들 대상으로 레테 신청자격이 주어지는데 그 설명회를 들으려고 또 예약자를 받아요.











예약을 위한 예약, 대기를 위한 대기.






채윤엄마의 설명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지영이었지만 3년간 영유에 들인 돈이 7,000만원 가량 인데다가 초등 입학을 앞두고 대치동 레테에 도전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함께 있던 하은엄마는 놀이학교부터 시작해서 디즈니 영어 학습지까지 지금까지 쓴 돈이 1억은 될 것이다. 돈 좀 있고 애 교육에 관심있다하는 엄마들은 이정도는 당연히 투자하는 분위기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은마사거리구나.’



신호대기중 창 밖으로 내다본 상가건물에는 대체 이 곳에 학원과 간간히 보이는 식당 아니고 다른 업종이 있긴 한가 싶을 만큼 빽빽한 학원 간판들이 경쟁적으로 내걸려 있었다. 지영의 동네에도 있는 유명 학원들의 대치본원들부터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학원들까지. 대한민국 교육의 심장에 와있다는 생각에 지영은 핸들을 꼭 쥐었다.



은마사거리를 지나고도 두 블럭이나 더 가서야 설명회가 열리는 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솔직히 여기서 학창시절 공부 좀 안해보셨다 하는 어머님들 없으시죠? 그 때 믿고 아이들 나중에 가서 공부머리 트이면 다 잘할 거다 생각하는 하수 어머님들은 여기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머니들은 지금 바로 이 자리를 나가셔서 전국에 지점 쫙 깔린 ZRS학원 설명회로 가시기 바랍니다. 입시 전형이 어머님들 학교 다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대입에 맞춰서 거슬러와 어릴 때부터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지, 초등학교 때 놀다가 중고등학교 가서 달린다? 그 땐 이미 다른 애들은 이미 앞서가서 보이지도 않아요.







부원장의 공격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 레오킴 학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상류층의 사고 방식을 가르칩니다. 영어는 수단일 뿐이죠. 전세계 상위 0.01% 백인 상류층들은 라틴어를 배웁니다. 현재 쓰이지 않는 라틴어를 왜 굳이 배울까요?






바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의 기원이 라틴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를 할 줄 알아야 진짜 고급 상류층이고 그들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는 법이죠. 또한 새로운 단어를 접해도 라틴어를 알면 쉽게 그 뜻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지영은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라틴어’를 받아 적었다.







레오킴은 외국에서 몇 년 살다온 리터니도 떨어지는 학원으로 어머님들 사이에서 유명하죠. 왜 떨어질까요? 외국에서 살다왔다고해서 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레오킴은 뇌과학 기반의 독자적인 티칭법으로 영어를 통해 상류층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아이로 만듭니다. 국내에서만 통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실 겁니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에서 앞서가는 글로벌 인재로 만드시겠습니까? 결정은 어머님들의 몫입니다.






대치동에서도 잘나가는 학원이라 그런지 역시 설명회에서부터 자부심이 넘쳐 흘렀다.



'결정의 나의 몫..'




국내에서 의대 보내는게 목표인데 굳이 라틴어까지 할 줄 알아야하나 싶은 생각이 슬몃 들었지만 챙겨온 노트에 필기까지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지영은 흐트러질 뻔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영 주위로 둘러 앉은 엄마들은 모두 이 소리 없는 전쟁터의 경쟁자다.







레오킴은 강사진도 절대 아무나 뽑지 않습니다. 전부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백인 선생님들로만 구성합니다.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원어민 강사들의 사진과 이력 소개가 이어졌다.








민재 레테를 넣어놓고 근처 카페에 채윤엄마, 하은엄마와 자리잡았다.






민재, 준비 많이 했어요?






브릭스 250 풀던 거 좀 풀다 왔는데 너무 준비를 못해서 어쩌죠?






레오킴은 7세에 주니어 토플 풀다 오는 애들도 있다는데. 레오킴 붙은 어떤 엄마는 과외 붙여가지고 브릭스 300까지 여섯번인가 돌려가지고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대치동에 가면 너같은 애들은 상위권 축에도 못낀다며 레테 2주 전부터 쥐잡듯이 잡아놨던 터였다.



'대체 다른 애들은 뭘 어떻게 잡길래 7세에 그 정도가 가능한 걸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시고 시선을 돌리던 지영의 눈에 컨설팅룸이란 글자가 들어왔다. 카페 안에 샵인샵으로 네일아트나 옷가게가 들어가있는 건 보았어도 컨설팅룸이라니.







아, 저기 애들 학습컨설팅 받는 곳이에요. 학원과 학원 사이에 학습컨설팅 받아요. 공부법도 점검해주고 학원 추천도 해주고 모자란 부분 과외도 붙여주기도 하고요.







지영의 의아한 표정을 눈치 챈 채윤엄마가 컨설팅에 대해 알려 주었다.



‘역시 대치동은 다르구나. 이렇게까지 해대는데 우리 민재가 의대갈 수 있을까.’




목이 탄 지영은 어느새 다 마셔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기울여 얼음을 와그작 씹었다.



‘채윤엄마는 어떻게 저런 것까지 다 알까?’



전업맘이 되면 가능한 걸까 싶었지만 민재의 학원비를 대려면 퇴사는 선택지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 정도는 아직 이르고 초등 3학년 정도 되면 슬슬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입술이 자주 튼다는 채윤엄마는 피코탄 백에서 바비브라운 립밤을 꺼내서 아랫입술 좌우로 펴발랐다. 바른듯 안바른듯 꾸안꾸 스타일을 완성시켜주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베어멜론 색상이었다. 니트셋업 위로 걸친 몽클레어 롱패딩은 허리를 벨트로 잠가 잘록하게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컵을 든 왼팔 어깨 위로 M로고가 눈에 띄었다.








민재야, 테스트 어땠어?







좀 무서웠어.








제대로 못봐서 민재가 핑계를 대는구나 싶어 지영의 마음이 덜컥했다.



'역시 과외를 붙여서라도 브릭스 300까지는 시켰어야 했던 걸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영유에서 베스트 스피치상을 놓친 적이 없는 민재였다. 아이에게 좀 편한 분위기만 만들어줬어도 훨씬 제 기량을 발휘했을텐데. 아무리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아이들만 모인다는 대치동 빅3라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놈의 학원 안보내면 그만이지. 뭔데 애 기를 이렇게 죽인담.’







전화 받았어요? 레오킴에서 합격선 바로 밑에 있는 애들 몇만 특별히 방학 특강 듣게 해준대요.









대치동 쪽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던 지영이었지만 채윤엄마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






뭐 그런다고 레오킴 정규반 등록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고요.








그래도 어디가서 민재가 대치동 빅3 나왔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채윤엄마 그동안 민재까지 챙기느라 고생 많았는데 그럼 방학 때 라이드는 제가 할게요. 저 마침 1월부터 휴직 신청해놨어요.









민재와 채윤, 하은은 그렇게 대치동 영어학원을 함께 다녔다. 민재가 다니고 있는 영유에서 제일 잘한다는 다섯 중 셋이었다.



하은은 방학특강이 마칠 때쯤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민재 J학원 보낼게요.










채윤엄마가 주는 정보는 확실하다.



학군지의 잔뼈 굵은 중소형 학원이야말로 엄마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곳이다. 특히 최상위권만 받는다는 소형학원은 성적이 안되서도 못보내지만 몰라서도 못보낸다. 누군가는 전교 1등하는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너무 궁금해서 아이의 뒤를 밟아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워킹맘인 지영에게 이런 학원 정보 뿐 아니라 함께 팀까지 묶어주는 채윤엄마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채윤엄마에게 잘 보여 오랫동안 학원 정보를 받아야 한다.



핸드폰 진동이 온다. 채윤엄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휴게실로 이동해 전화를 받는다.





잘 생각했어요, 민재 다니고 있는 S수학학원은 어쩌기로 했어요?







안그래도 민재가 너무 좋아해서 그만두기 싫다고 난리에요. 자기가 거기에선 제일 잘하는 반이고 하니까 익숙해져서 그런건지. 이제 거기서 나와서 또 잘하는 애들 만나서 치고 올라가야하는데 이러다 4학년 때 H수학학원도 못붙으면 어쩌나 걱정이에요.







지금 다니는 S학원은 사고력 위주고 교과는 따로 안챙겨주잖아요. 우리 애들 보낼 J학원은 교과 위주긴 한데 또 사고력 놓긴 좀 그렇고요. 전에 얘기한 B학원도 레테 한 번 보는 거 어떄요?









스토리텔링 수학으로 유명한 B학원은 탑반에 들어가면 대치동 아이들도 역 라이딩해서 온다는 H원장의 직강을 들을 수 있다.






수학학원을 그럼 두 개나 보내요?







이 동네 애들 두개는 기본이죠. 인도 베다 수학으로 하는 연산까지 세 개보내는 엄마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연산까지 학원을 보내기에는 부담스러워 학습지로 하고 있었다.


지영 역시 베다 수학으로 배운 애들은 암산으로 엄청 빨라서 나중에 문제풀이 속도가 차이난다는 말을 듣고 알아보긴 했었다. 욕심난다고 세상 모든 학원을 다 보내기에는 민재의 시간표가 허락하지 않았기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채윤이는 B학원은 안보내실 거에요?








채윤이는 따로 과외 선생님 오세요. 그리고 베다수학도 이 동네는 원장이 좀 별로에요.









채윤엄마는 이 동네 학원의 원장들을 어디까지 꿰고 있는 걸까. 그 과외 선생님도 소개받고 싶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까지 물었다간 왠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것같았고 그랬다간 교육정보의 동앗줄을 영원히 놓칠 수도 있다. 입을 다물고 채윤엄마 옆에 딱 붙어 있는 것이 민재를 위한 지영의 처세술이다.






민재도 한 팀에 넣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B학원도 알아볼게요.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온 지영은 B학원 홈페이지를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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