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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Nov 22. 2022

빈 미술사 박물관

2019년 마크 로스코 특별전 방문

최근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의 중심에 위치한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이 국립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 때문에 새로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 2019년의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에 방문했던 빈 미술사 박물관에 대한 짧은 소개 및 그 때 갔던 전시회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미술사 박물관 정면

2019년 어느 날 친구가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하는 마크 로스코 전시회를 꼭 보고 싶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누군지도 몰랐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엄선된 작품들을 보러 친구와 함께 빈에 갔다.


친구가 미술관 앞에 서 있는 사진을 찍어 줬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브런치에 위 사진을 올릴 때 스냅시드 앱으로 내 모습을 지웠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로비 계단

정면부터 압도적이었던 박물관에 들어가니 당대의 거장들이 몇 년에 걸쳐 만들었을 온갖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들과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분명한 벽 장식과 기둥, 천장 벽화에 이르기까지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나마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을 때를 노려 사진을 찍느라 전시회가 열리는 회랑의 근처에도 가기 전에 이미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진을 찍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중앙의 로스코 전시 홍보용 태피스트리 양옆의 황금을 녹여 부은 대리석 기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마크 로스코의 자화상(1936), 캔버스에 오일

이 자화상은 화가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의 개인 소장품으로 로스코가 아직 화풍을 정립하기 이전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적에 그린 그림이다.


마크 로스코는 원래 러시아 (현재는 라트비아 영토) 출신으로 1903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양차대전 사이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 화풍이 만들어져 로스코가 그 중심인물이 되었고 이 화풍에 속한 이들은 뉴욕 학파로 불리게 되었다. 이 뉴욕 학파의 추상표현주의는 양차대전 사이와 전후 1950년대 예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계기가 되었다.


무제/지하철역의 여자(1938), 캔버스에 오일

그림 속 인물의 붉은 모자와 코트가 인상적이라 전시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봤던 그림이다. 이 그림도 역시 화가의 아들인 크리스토퍼가 소장하고 있다.


로스코에게 영감을 준 피렌체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위 사진은 아래 시그램 벽화의 원형 격인 도서관의 전경인데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 건축했다. 이렇듯 로스코가 여행한 장소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그램 벽화, 무제, 캔버스에 오일.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시그램 벽화는 로스코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58년 로스코는 뉴욕 시티의 시그램 빌딩 내 포시즌스 호텔 레스토랑의 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일련의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이 시그램 벽화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1960년에 로스코는 레스토랑은 자신의 그림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판단해 계약을 파기한다.


로스코는 옛 거장들의 예술을 심도 있게 탐구했지만 우리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여태껏 예술에 주로 등장한 소재인 신, 전설, 역사 등을 그리는 대신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감정을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배경 지식 없이 그림을 마주하면 길을 잃을 수 있지만 사실 로스코는 그림과 관객 사이에 깊은 교감을 형성하고 싶어했다는 전시회 설명이 있었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내 카페에 갔다. 카페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곳에 각기 다른 색과 무늬를 한 대리석이 쓰였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건물 내에서 단 하나의 여백도 없이, 조금의 공간이라도 생기면 정교한 조각상을 배치하고 금빛 장식을 해둔 것을 보고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넘쳐나는 부를 실감했다.


아포가토 만들기

이런 공간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어 입장권만 사면 마음껏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기뻤지만 일단 눈앞에 닥친 더위, 피로, 허기 같은 괴로움은 해결해야 했다. 기온이 38°c까지 치솟아서 너무 더운데 피곤하기까지 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포가토를 먹고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오스트리아의 메뉴판에 그런 것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아포가토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에스프레소 투샷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누가 오스트리아가 독일어권이 아니랄까봐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계속 내 선택을 의심하며 아이스크림은 최소 세 스쿱을 주문해야 하는데 모두 같은 맛으로 주문하는 게 확실하냐고 여섯 번이나 되묻고 끝내는 매우 이상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며 주문을 받아갔다.

그런데 같이 있던 친구마저도 종업원이 사라지고 나서 종업원이 하는 독일어를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냐면서 아이스크림 세 스쿱을 모두 같은 맛으로, 게다가 초코나 딸기나 견과류맛도 아닌 하필 바닐라맛을 그렇게나 많이 주문한 것이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붓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감동해서 자기는 내가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이런 디저트를 일상적으로 먹는 한국인의 천재성을 극찬했다.


카페에서 아포가토를 다 먹고는 또다시 38도의 땡볕 아래서 미술사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다행히도 해가 조금 기울어져 박물관에 갈 때보다는 조금 선선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박물관 앞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이 나중에 열사병으로 쓰러지지 않을지 조금 걱정될 정도의 무더위였다. 걷다 보니 햇살이 너무 강한 탓에 친구의 피부가 온통 빨갛게 익어서 친구가 날 보고 축복받은 아시아 유전자라며 자기 피부만 빨갛게 되어 따끔거리는 게 불공평하다고 했다.


박물관 주변의 기둥 모양으로 깎인 나무나 수백 년은 같은 곳에서 자라왔을 커다란 나무들과 박물관 부근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연사 박물관, 미술관 구역, 호프부르크 왕궁 등 예전에 궁전으로 쓰였던 건물들을 보면 합스부르크가 다스렸던 오스트리아 제국이 얼마나 크고 강대한 나라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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