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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24. 2023

한여름 공원에서 발레 공연을

독일 슈투트가르트 Ballett im Park

최근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 따뜻한 날씨를 그리워하며 여름에 찍은 사진을 뒤적이다 보니 이 사진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계절감은 좀 맞지 않지만 매년 여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발레 행사에 대해 써 보기로 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살 당시, 7월 말의 발렛좀머(Ballettsommer; 여름의 발레) 행사로 6월부터 온 슈투트가르트가 들썩여서 진작부터 궁금증이 차올라 있었다. 벌써 독일에 몇 년째 살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슈투트가르트 주민이 아니었던 탓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2019년에는 누구라도 도저히 모르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시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그래서 2019년 7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에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발레 공연이란 것을 보러 공원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토요일 저녁에는 비가 와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다가는 폰이 침수될 것 같아 사진을 전혀 찍지 못해서 여기 나오는 사진은 모두 일요일 오전의 사진이다.


평소에 발레 공연이 열리는 Staatsoper

사진 속의 멋진 건물은 슈투트가르트 국립 오페라 하우스인데 독일어로는 슈타츠오퍼(Staatsoper)라고 한다. 발레는 여름 동안에는 오프시즌이라 공연을 하지 않는다. 슈투트가르트가 발레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노년층 인구가 주요 관객인데 이들이 주로 일요일 오전에 발레를 보러 와서 그 분들이 아쉬워할까봐 서비스로 이렇게 국립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 공원에서 7월 마지막주의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에 발레 공연 영상을 틀어준다.


이번에 발레 행사가 열리는 곳인 공원은 오페라 하우스 앞 호수 건너편에 있는데 행사의 규모가 이 정도로 클 줄 몰랐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어쩐지 조금 떨어진 슐로스플라츠에서도 음악 소리가 들릴 때부터 이런 규모를 예상했어야 했다! 역시 독일이 뭘 하려고 마음먹으면 누구보다도 제대로 해낸다


진행요원이 울타리를 지키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보니 테러 위협이 있어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표시로 손목에 저런 걸 감아준다.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대놓고 테러리스트처럼 하고 오지는 않을 텐데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동네 주민이라 스마트폰과 약간의 현금만 들고 맨몸으로 공연을 보러 가서 아무 말도 없이 저걸 감아줬지만 가방을 들고 왔더라면 가방 속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담으로 사진 속에서 손에 들고 있는 엽서는 저기서 받은 것이 아니라 단골 카페들에 비치되어 있던 홍보용 엽서다. 시에서 이 행사의 홍보를 위해 카페마다 돌아다니며 엽서를 가져다둔 것 같다.


울타리 밖에 옹기종기 모여 선 latecomers

이 날은 일요일 여름날 아침이었는데 다들 예상하듯 독일의 7월은 특히 날씨가 좋은데다 마침 전날에 비가 오기도 해서 하늘이 파랬다. 게다가 저 발레 축제 때문에 드물게도 길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푸른 하늘 아래 텅 빈 길에서 혼자 사진을 찍다 그만 공연 시작 시간에 늦어 버렸다. 단호한 독일답게 10분 늦게 왔다는 이유로 울타리 안에 들여 보내 주지 않았는데 괜히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어수선해지느니 그렇게 통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 게다가 독일 축제에는 항상 맥주를 파는 부스가 있어서 그냥 울타리 밖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발레를 감상하기로 했다. 울타리 안에서는 맥주를 못 마신다.


인터미션이라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1시간이 지나 드디어 인터미션이 되어 울타리 안에 들어갔는데 지역 방송국에서 나온 사회자가 무대 앞에서 축사와 간단한 소개 같은 것을 하고 들어갔다. 화면에는 발레단의 홍보 영상과 단원들의 간단한 인터뷰가 나왔다.


사회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이 공연이 녹화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호수 건너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레단이 관객 없이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공원에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라이브로 전송한다고 한다. 그럴 거면 왜 오페라 하우스가 아닌 공원에서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햇살 아래서 풀밭에 앉아 다 같이 공연을 보는 것도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 공연 시작 직전 무대 인사

여기서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공연장 내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라 옆 자리 할머니께 주의를 받기도 했고 큰 화면을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나게 몰입해서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화면 옆에 붙은 스피커와 공원 옆 호수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정말 웅장해서 시청각적으로 도취되는 기분이었다!


호수 건너편에서 본 발레 공연장

오후 1시 반에 발레 공연을 마치고 나오니 벌써 날씨가 흐려진 게 비가 올 것 같았다.


이렇게 무료 공연을 한 덕분에 평소에 발레와 친숙하지 않았던 나도 발레의 매력을 알게 되어 그 후로 몇 번이나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발레 공연을 보고 왔다. 슈투트가르트에 살면 나처럼 매년 열리는 이 축제를 통해 발레에 입문하게 되는지 오페라 하우스에 발레를 보러 갈 때마다 좌석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발레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이 축제라는 ‘미끼상품’에 훅 낚여서 오페라 하우스에까지 발레 공연을 보러 가긴 했지만 다행히도 모든 공연이 기대 이상으로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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