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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Sep 25. 2022

깊은 울림을 주는 말 한마디

회사 내 고마운 사람들 - 1

요즘에는 그런 마음으로
말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어떤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김윤나 작가의 '말그릇'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벌써 9년 전의 일인데도 가슴속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 한마디가 주는 묵직한 힘에 새삼 놀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신입사원의 티를 벗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일을 하다 실수를 하게 되어 같이 일하던 매니저분이 대신 수습을 해주셨던 적이 있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언급할 때 '천사 대리님'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하던 분이라 나로 인해 곤란해진 상황을 대신 맡아주셔서 더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팀원들끼리 같이 밥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내려가던 중에 이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

고 싶었기에 "제가 실수한 일 대신 처리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때 천사 대리님이 해주신 말씀은 아직도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고 멋다. "이런 거 하라고 매니저들이 월급 더 받는 거야. 네가 죄송할 일 아니야." 오전 시간 내내 혼자서 주눅 들었던 마음이 이 한마디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후에 동기에게 천사 대리님의 그 한 마디를 전하면서 진짜 멋졌고 나도 나중에 그런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그 순간의 감동을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했던 기억이 난다.




신입사원 시절에 진땀 뺀 적 한두 번 없는 사람 찾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기억에 남는 몇몇 경험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은 앞서 언급한 사건처럼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꼈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처를 받았을 때 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았던 경험에는 그 기억 더 다채로운 색깔이 입혀져 추억으로 남게 되고 속상했던 기억들은 그 당시부터 잊으려고 노력해서인지 점차 흐릿해지곤 했다.


하루 중 가장 업무가 바쁜 시간대인 정오 경 사건이 벌어졌다. 직원들 중 누군가의 실수로 손님께 불편을 끼친 일이 생긴 것이었다. 우선 손님께는 정중히 사과드리고 일을 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먼저였을텐데 당시 부서의 팀장님은 '누가 잘못을 한 것인지' 빨리 찾아내라고 옆에 나란히 앉아 일하고 있던 매니저님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우선 일을 해결하고 조금 덜 바쁜 시간에 원인을 찾고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을 했어도 됐을 일이었다. 그 일에 나 또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차대로 진행해서 실수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나도 모르게 뭔가 실수한 것은 아닐까 싶어,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앞에 손님과 얘기하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매니저님은 "걱정하지 말고 있어. 동요하지 말고 천천히 네가 지금 하는 일 하고 있어. 언니가 잘 처리하고 올게."라고 말하며 팀장실로 내려갔다. 바쁜 시간에 전산 상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인지 유관부서와 계속 연락하며 일의 상황 파악을 하느라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텐데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동요되어 얼굴이 흙빛이 된 후배를 먼저 다잡아주셨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 사람만의 실수가 아니었어서 한번 더 신중하게 업무 진행할 것을 고지받고 잘 마무리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식은땀 나는 추억이다.




혹자는 후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선배가 나서서 일을 해결해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두 분의 매니저님보다도 더 나이가 든 지금의 나는 후배의 일을 대신 책임지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돌이켜 보았을 때 나는 그 당시에 두 분처럼 후배에게 일말의 질책 없이 보듬어 줄 수 있었을까, 내 마음보다 후배의 마음을 우선하고 진정시켜줄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자신 있게 "Yes."라고 하지 못하는 만큼 9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새삼 더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분에 사회에 갓 발 디딘 수많은 신입사원들이 예상치 못한 사회의 혹독함 속에서도 의지하며 커나갈 수 있는 것일 테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추억 한 조각 선물해줄 수 있는 어른는 과정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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