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수 Jun 18. 2022

육아 에세이를 쓰는 이유

인간의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미화되고 잊힌다. 말 인상 깊어서 잊을 수 없을 거라 확신했던 일 조차도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지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다.


처음 아이가 '엄마' 비슷하게 발음하며 나를 불렀을 때,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격스럽고 엄마를 알아본다며 속으로 꽤나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이가 자길 처음 '아빠'라고 부르던 날이 생각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나는 아이가 언제 처음 엄마라고 불렀었는지 그 장면을 콕 집을 수가 없었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의 어렴풋한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여겼으면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나름 충격이기도 했다. 남편은 묻지도 않았지만 "난 기 때부터 음마, 어맘 이렇게 들어서 그런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라며 얼버무렸다.




최근에는 휴대폰 사진첩에서 아이의 1년 반 전 동영상을 보고 너무나도 아기 같은 모습에 새삼 놀랐다. 영상으로 찍어놓지 않았다면 머릿속 기억창고에는 남아있지 않았을 소중한 추억이었다. 이렇게 사진을, 영상을 보며 예전을 돌아보니 좋았던 기억 속에서 기운을 얻고 힘들었던 경험 속에서는 '그땐 그랬지. 그래도 잘 버텼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느껴졌다.


그게 무엇일까.

...


사진과 영상에 찍힌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과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것도 자연스레 잊히겠지 하는 아쉬움이었다.




아이와의 모든 추억을 다 기록할 순 없지만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며 가끔 나무 그늘에 앉아 육아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도 꽤나 낭만적일 것 같다.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들려줄 이야기도 더 무궁무진하고 생생하겠지.


태교일기를 쓰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흐지부지되었고 초음파 사진 앨범을 만들어주려 모아둔 사진들은 서랍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아이와의 추억을 기록한 글은 이곳에 차곡차곡 담아보고 싶다. 태교일기나 초음파 사진앨범은 많이들 한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육아 에세이는 내가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시작점이니 꾸준히 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모도 같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로 기록해둔다면 나는 어떤 엄마로 자라나고 있는지 그 여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는 생각들었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 속 감정과 생각들이 또 다른 부모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작은 미소라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라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가지 복병, 등센서와 모로 반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