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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Apr 03. 2022

두 가지 복병, 등센서와 모로 반사

책과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

숨소리조차 사치인 이 순간, 임무를 완성한 기쁨을 누리는 건  딸깍거리는 손잡이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문을 닫고 나서 해도 충분하다.


1초, 2초... 조용하다. 성공!


'커피 한 잔 마셔야지... 내려먹는 건 시끄러우니 믹스커피로 조용히 마시자. 후아.. 살 것 같네.'


푹신푹신한 매트리스와 한 몸인 것처럼 누워서 보들보들하고 시원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하고 스르르 단잠에 빠지기 마련인데 세상 사람이 다 나 같지는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나날이었다.




아이가 임신 중에 프랑스 육아와 관련한 서적을 두어 권 정도 읽었었다. 출산과 육아가 부모의 생활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아기들의 수면 패턴이 일찌감치 자리 잡게 되는 육아방식이 매력적이었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아기침대도 정말 신중하게 이것저것 알아보고 샀건만, 구성품이었던 기저귀 갈이대만 잘 쓰고 침대는 잠깐 아주 잠깐 뉘어놓고 내 손목을 쉬게 해주는 용도로 쓰였다.


책에서는 처음부터 아기방을 따로 만들어주라고 했지만 소심한 쫄보 엄마는 그렇게 하진 않았고,

밤에 자야 하는 시간에 아이가 울어도 안아주지 말고 눕혀놓고 문을 닫고 나오라고 했지만 문을 닫지도 눕혀놓지도 못하고 안아서 토닥여 주었다.


안아주면 조용했고 웃었고 이내 품 안에서 잠이 들었다. 아기 수면 관련한 정보들을 검색해보니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낮은 침대에 누워 있는 것보다 서 있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부연설명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왜?! 높은 곳이 더 무섭게 느껴져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어떤 생명체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소파에 앉은 채로 안아줄 때도 썩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아이는 품에서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내 허리와 손목은 점점 너덜너덜해져 갔다. 심할 때는 낮잠 자는 시간 동안 계속 소파에서 안고 있었던 적도 있고, 친정에서 몇 주간 지낼 때 부모님과 셋이 번갈아 안고 있던 적도 있었다.

간신히 재우고 침대에 눕히는 순간 등에 센서를 달아놨는지 칭얼거린 적도 많아서 그냥 내 침대에 같이 누워서 있다가 슬며시 내가 빠져나오면 새근새근 자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가 사라져서 그런 거라는 얘기를 듣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아이 옆에 두고 나오기도 했다.


또 하나, 이건 모든 아이들이 다 겪는 거겠지만 모로 반사도 잠든 아이를 깨우는 복병이었다. 자다기 갑자기 움찔하면서 팔이나 다리를 번쩍 들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몸짓에 자기가 놀래서 깨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래서 사실 신생아 시절에 한동안 속싸개로 아기를 팔까지 둘러서 싸 두는 건데, 아이는 또 조리원에서부터 팔을 어지간히 빼고 싶어 했다. 조리원의 전문가 선생님들 틈바구니에서도 기어코 팔을 빼던 아기가 집에 와서 속싸개에 가만히 팔을 넣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모로 반사 때문에 깨곤 했다. 배 위에 너무 무겁지 않게 접은 수건이나 아기 베개를 덮어놓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품에서 아이가 잠들면 내 침대에 눕혀놓고 나도 그 옆에 누워서 같이 자거나 조용히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곤 했다. 내 팔이 아이의 베개가 된 날도 많은데 아이와 같이 잠들고 일어날 때 팔이 고무장갑 마냥 늘어져 저렸던 나날을 보냈다.




다른 건 무난했는데 잠이 문제였다. 그러던 아이가 돌 즈음부터는 누워서 토닥토닥해주면 잠들기 시작했고 조그만 소리에도 기가 막히게 깨던 아이가 옆에서 기침을 해도 잘 잔다.


지금도 잠을 잘 자는 아이들에 비하면 자는 게 너무 싫고 슬프다는 아이지만 그래도 때 되면 낮잠 자고 밤잠을 자니까 그걸로 족하다. 가끔은 아기 때 해준 팔베개가 그립기도 하고  안고 재우던 때의 아기의 촉감과 새근새근한 숨결이 아쉽기도 하다. 지금은 아이도 엄마 팔을 베고 자거나 품 안에서 쭈그리고 자는 것보다 그냥 엄마 옆에서 원하는 자세로 자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엄마랑 같이 자는 걸 좋아하고 스무 살 때까지 엄마랑 같이 잘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스무 살이 뭔지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딸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나중에 혼자 자겠다고 하면 살짝 서운할 것도 같다. 하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더 아이의 세상이 커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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