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인기가 많고 후기도 좋은 말 그대로 요즘 핫하다는 장난감을 사줘도 아이의 반응은 그다지 열광적이진 않았다. 조금 관심을 갖긴 했지만 하루 종일 그것만 갖고 노느라 육아가 좀 더 수월해졌다거나 하는 후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뭐든 길이 있다고 아이는 책을 참 좋아했다. 가리는 분야도 없고 책이라면 뭐든 펼쳐서 주의 깊게 봤고 엄마 아빠가 읽어주면 나이에 비해 글밥이 좀 많아도 꼼짝 않고 마지막 장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그리곤 연달아 보고 싶은 책을 골라왔다. 어느 정도 말문이 트이고 나서는 "장난감이 좋아? 책이 좋아?"라고 물어보면 늘 책이 좋다고 대답했다.
흐뭇했다. 사실 장난감을 더 좋아하는 게 흐뭇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그냥 책을 좋아하는 아이인 게 엄마 마음에 좋았다. 물론 하루 종일 읽어달라고 할 때는 '좀 장난감도 갖고 혼자 놀기도 하지'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책육아 관련 카페에 보면 엄마들이 '아이가 책에 관심이 없어요', '읽는 책만 계속 읽어요', '원래 잘 봤는데 요즘 도통 책을 꺼내오지도 않아요' 등등의 고민을 털어놓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18개월쯤부터 아이들의 관심 분야가 다양해져서 책을 예전만큼 잘 보지 않는다는 통설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두 돌을 맞이했다. 그 해 3월부터는 어린이집도 다니기 시작했고 두 달 정도 흘러 적응기간이 끝나고 아이는 3시 반쯤 하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아이는 책보다는 다른 놀이, 활동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이의 건강한 발달에도 좋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하루에 책을 한두 권도 채 읽을까 말까 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이러다 아예 책에서 관심이 멀어지면 어쩌지?'란 걱정에 억지로 아이에게 읽어줘보기도 했지만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냥 엄마 옆에 있는 게 좋으니까 잠깐 와서 듣는 둥 하더니 이내 곧 다른 장난감을 가져와 놀자고 했다. 남편의 '이제 책 안 좋아하나 봐. 책 당분간 더 사지 말자.'는 말이 야속하게 들렸고 내심 속으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런 시기가 있다고 쿨한 척 말했다.
엄마가 재미있게 읽고 있으면 궁금해서 다가올 거라고 해서 따라 해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책을 안 봐서 그냥 원하는 대로 하게 두었다. 그나마 한글책은 가끔씩이라도 보는데 말을 점점 더 잘하게 될수록 영어책은 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국어가 편한 반면 영어는 그만큼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언젠가 관심이 생기면 다시 잘 읽겠지란 생각으로 놔둔 지 서너 달은 훌쩍 지났을 때 아이는 다시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고 34개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잠자리에서 그리고 낮시간 중간중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아이는 또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처음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뭐든 엄마 주도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아이의 관심이 기우는 쪽을 잘 살펴보고 그때그때 그 부분을 잘 키워주는 것이 엄마인 내가 마땅히 해줘야 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장한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것들에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책태기 (책+권태기) 를 겪으면서 배운 점 하나는 내 자녀라고 해도 100% 확신하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나를 다 모르는데 하물면 내가 아닌 존재를 어떻게 다 알까?
지금도 아이가 흥미 없어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하면 내 기준에 맞춰 걱정하기보다는 응 계속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고 말해주고 다른 관심 있어하는 놀이를 한다. 처음에는 잘 못 세던 숫자도 지금은 잘 세고 요즘엔 또 부쩍 영어에 관심을 갖고 영어책도 자꾸 꺼내오고 잘 보지 않던 영어만화도 재미있다고 한다. 이해는 하면서 보는지 모르겠지만 좋다고 하니 그냥 둔다. 아이의 시간과 속도를 엄마인 내가 재촉하지 않는 것, 매일매일의 육아에 늘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한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