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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Aug 07. 2022

사내 야유회, 워크숍의 노림수

회사의 낭만_2

산들바람이 서서히 무거워지고 강한 햇볕의 기운이 완연한 초여름이 오기 전엔 부서별로 야유회, 워크숍, 혹은 체육대회라는 이름의 단합대회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1박 2일이냐 당일치기냐의 갈림길에서 난 늘 당일치기에 손을 들었다. 1박이 되는 순간, 화장품과 여벌 옷 등 챙겨야 할 짐이 늘어나고 씻고 자는 것만큼은 집에서 편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부서는 늘 당일치기로 결정이 되었다.


야유회를 가면 단순히 밥 먹고 이야기 나누다가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팀을 나누어 여러 종목의 게임을 진행해서 시합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장기자랑도 하면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늘 행사를 기획하는 담당 매니저가 몇 분 있었고 당일 사회를 보는 MC도 직원 중에 지정하곤 했었다.


출발하기 전까지는 친한 동료들과 "휴, 또 가서 땀 흘리기 귀찮은데.." "할 일이 산더미인데 가서 또 클라이언트 전화받으면 바로 처리하기도 힘들고  더 쌓일 텐데 그냥 사무실에서 일하다 집에 가고 싶다." 등등 투덜투덜 푸념을 하곤 했다. 그래도 막상 45인승 버스에 늘 입던 차려입은 옷이 아닌 편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올라타면 현실의 일더미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느낌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게 회사에서 야유회나 워크숍을 매년 지속하는 목적일까?




가는 내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체 주문해놓은 김밥까지 먹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뛰어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정신없이 회사생활을 하다가 운동화를 신고 넓은 운동장에 서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쉬니 어느새 '그래도 오니까 기분은 괜찮네..'로 마음이 변한다.


더욱 기억에 남는 건 팀을 나누고 시합을 하게 된 이후이다.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이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발야구 투수일 때는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하던 나, 피구 경기 중에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어떻게든 피하겠다며 날렵하게 뛰어다니던 나만 있었다.^^; 사내 야유회의 목적과 취지 제대로 부합한 칭찬받을 직원의 모습이 아닌가..!


하이라이트는 저녁식사 후 장기자랑이다. 2년 연속 장기자랑에서 순위권에 들어 상품을 받았다. 미리 준비하는 장기자랑도 아니고 즉석에서 내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혼자서는 민망하니 늘 둘 아니면 셋이 함께 했다. 이왕 하는 거 그냥 즐겁게 하자는 마음으로 대중적인 흥겨운 노래나 소화 불가능한 고음이 난무하는 노래를 택했다. 상품을 받고 그 상품이 좋아서라기 보단 그냥 흥에 겨워 신나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면 지금도 종종 웃음이 난다.




친한 매니저가 "너 되게 의욕 없이 그냥 따라온 것 같더니 시합 시작하니까 눈빛이 돌변하던걸? 승부욕이 막 이글이글 타올랐어!" 하면서 놀리는 듯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이런 게 야유회의 묘미이자 노림수이지 않을까 싶었다. 왜 단합대회라는 명목 아래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지 직접 경험해보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한참 선배인 분들과도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편하기보단 어려운 존재인 직책자분들을 열심히 응원해보기도 하고 결재를 받고 성과를 평가받는 입장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회사 밖에서 조금은 편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이 아닐까.


물론 이때 얻은 단합력과 활기찬 에너지로부터 받은 동기부여가 현실로 돌아오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스트레스로 쌓인 마이너스 기운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하고 다시 0부터 시작한다는 데 소소한 의미 부여를 하곤 했다. 마이너스 80 즈음됐을 때 다시 피구공 던지고 받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아, 그만두고 싶다.. 이직할까.. 다른 거 뭐 할 수 있는 것 없을까. 부서 이동하면 좀 나을까" 등등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으면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당분간이라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이 시간의 효과라면 효과이지 않을까?




지금은 이곳을 떠나 있지만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던 만큼 문득문득 땀 흘리며 해맑게 웃으며 바닥에 앉아 서로 얘기 나누던 이 시간이 종종 떠오른다. 막상 또 야유회 가자고 하면 투덜거릴 모습이 눈에 뻔히 그려지는대도 말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지금은 그 시절처럼 같이 모여 활동하는 일이 잘 없고 코로나로 인해 회식도 많이 줄었고 갑작스러운 번개모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쉬는 것을 선호하면서도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이었던 저때처럼 가끔은 친한 동료들끼리 모여 서로 얘기 나누고 그날 속상했던 일들을 풀어버리곤 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추억은 추억일 때가 제일 아름다운 법이니 그 시절의 추억들은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글로 써 내려가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어쩌면 내 기억도 미화되어 좋았던 일들만 더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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