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결혼주의자에요

결혼 관련 질문을 피하는 귀여운 방법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못해도 1년에 한두번은 꾸준히 10년동안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얼굴을 본지 벌써 1년도 더 지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그간 밀린 이야기들을 쉴새 없이 했다. 동기 Y가 시켜둔 피자가 다 식고, 파스타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식당이나 카페만 가면 그렇게 찍어대던 사진도 다 잊은 채, 우리는 한참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아니, 언니, 그래서 요즘 누구 만나?”


만날리가 있나. 이직하고 나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도 못 갈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고, 업무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많아서 그거 쳐내다 보면 그저 지쳐서 집에 가는 게 일상인데.


“나도 연애 하고싶어. 근데 진짜 물리적으로 요즘 짬이 안 난다. 올해는 소개팅도 더 열심히 하고 뭐 모임도 나가보고 해야지. 너는 누구 만나는 사람 있어?”

“어? 어… 나 그 오빠 다시 만나. 기억나지? H”


H는 동기 N이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룹 연수 때 만난 동기였다. 꽤나 둘이 성격도 잘 맞고, H가 차분하게 N을 잘 받아주는 편이어서 3년 정도를 잘 만났지만, 장거리 연애로 인한 여러 어려움 및 결혼 관련 가치관의 차이로 헤어졌었다. 약 10년만에 H의 이야기를 다시 듣는데, 뭔가 느낌이 새로웠다.


“뭐 둘만 좋으면 됐지. 결혼 생각도 있어?”

“결혼? 해야지… 해야지. 나 결혼주의자야.”


뭐?


“회사에 다른 여직원이 한 분 계신데, 남자친구도 있고, 두 분도 만난지 꽤 된 사이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둘이 결혼은 안 하냐, 언제하냐 뭐 이런거 물어볼 때 이렇게 대답 하더라고. 해야죠~ 저 결혼주의자에요~~. 이렇게 말하니까 그 뒤로 다들 아무 말도 못하더라. 보통은 결혼 잘 모르겠어요, 비혼주의에요,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되게 훈수두고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네, 애는 가져야 하네, 결혼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누굴 만나야 하네 뭐 이러잖아. 근데 저렇게 말하니까 다들 말문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더라. 그래서 나도 그 뒤로 결혼주의자라고 해.”


아니 이런 재치를 봤나. 나도 늘 결혼 관련 질문들을 받으면 그냥 때 되면 하겠죠~ 이러다가 저 비혼주의에요 했는데, 되려 비혼주의라고 하면 역질문이 많이 들어오긴 했다. 왜 어쩌다가 비혼 주의가 되었는지, 결혼하면 좋은 이점들, 아이가 생기면 좋은 이점들 등등. 물론 나도 안다. 다만 그런 이점들을 끌어안으면서 나를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도 안 되어 있을 뿐이지.


“언니도 앞으로 결혼주의자라고 해. 결혼은 할거잖아.”


결혼.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나한테 관심 보이는 사람도 귀찮아 하는 내가.


무튼 결혼주의자라며 킥킥 거리며 말하는 N의 얼굴은 실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중간 중간 내 얘기를 들으며, H에게 카톡을 보내는 모습도, 서로 회사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그녀를 괴롭히던 힘든 일들이 한차례 지나간 모습들이라 너무 편안해 보였다.


뭐 결혼주의자 라는 말로 주변 사람들의 압박이나 관심(?)을 막아내든 뭐든 어떠랴.

결혼을 하게 될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할 것이고, 아니라면 안하겠지 뭐.


근데, 그래서 요즘 내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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