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현실이야
첫 직장을 다닐 때 옆 파트에 정말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업계에서는 나름 악마와 같은 캐릭터로 비춰지던 그녀였지만, 대신 깔끔한 일 처리, 성과 하나는 탁월했기 때문에 모두 어려워 하면서도 협력 업체들 모두와 사이도 좋던 그런 선배였고, 당시 나는 그 선배처럼 되고 싶었다. 물론 옆 파트 선배였기 때문에, 내가 그녀의 무서움을 몰랐을 수도.
정확한 나이를 알지는 못하지만, N선배는 결혼을 조금 늦게 했다고 하셨다. 뭐 지금으로 치면 30 조금 넘어서 결혼한 거니까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여자는 20대에 결혼하던 시절을 지낸 N선배 입장에서는 조금 늦었을 수도.
N선배의 남편 역시 같은 업계, 다른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연애 이야기가 조금 궁금해서 여쭤본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분께서 N선배를 좋아해서 꽤나 열렬히 구애를 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 케이스더라.
이런 N선배는 내 눈에는 굉장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였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면서 시댁에서 아이를 봐주고 있었는데, 내가 모든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늘 업무에서 뭐 하나 놓치는 면이 없으셨다. 늘 농담으로는 아이보다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녀는 그녀의 아들과 딸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였다.
“N님, N님은 남편분 어떤 면이 좋으셔서 결혼하셨어요?”
“야, 넌 뭐 그렇게 낭만적인 질문을 하고 그러냐?”
“네?”
“연애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했다고들 하지 다들? 야, 그냥 솔직히 말하면, 결혼할 때 됐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야.”
“네에????”
낭만적인 질문이라니. 하긴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 때 나는 한창 연애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였고, 주변의 여자선배들은 전부 한살이라도 어릴 때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하던 때이긴 했다. 미혼의 여성들이 유아용품을 판매하던 시절이니까 모두 다들 빨리 결혼해서 본인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서 더 관심도 갖고 그러라는 이야기를 우스개 소리로 할 때였고, 그래도 아직은 결혼보다는 연애가 더 먼저 현실적으로 다가오던 시절이니까 결혼이 좀 더 낭만적으로 보였으리라.
“아니 물론 사랑하지.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니까 연애하지. 근데 그 사람 없으면 죽을 것 같고, 너무 평생 같이 있고 싶고, 집에 가는 게 아쉽고, 헤어지는 게 죽도록 싫고 그래서 결혼하는 거 아니야. 그냥 남들 다 결혼할 때, 사회적으로 결혼하는 시기라고 흔히 말하는 시기에 옆에 누군가 있다? 그럼 결혼하는 거야. 그게 현실이야.”
실은 N선배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 뭐라 다른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주변을 봐도 이 사람 없으면 죽을 것 같이 사랑해서 결혼해 라는 얘기는 솔직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긴 하다. 다들 이런 저런 장점들을 얘기하고 그런 면이 좋아서 결혼한다고 하지, 아님 20대 후반의 나이에 아예 결혼을 전제에 두고 만나볼 사람을 찾거나.
사회적 통념, 사회에서 권하는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는게 우리는 올바르게 사는 거라고 알고 지내고, 그렇게 자라왔으니, 남들 다 대학갈 때 대학에 가야하고, 남들 다 취업할 때 회사에 들어가야 하고, 남들 다 결혼할 때 결혼해야 하는 거. 그게 현실인거 맞지 뭐.
나 진짜 무슨 낭만을 바랐던건가.
“뭐 무튼, 낭만적으로 서로 없으면 죽을거 같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만, 나는 그랬어.”
“그래서 어떠세요?”
“뭘 어떻긴. 똑같지. 결혼한다고 뭐 다르겠냐. 서로 다른 배경으로 2-30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서 치고 박고 서로 양보하고 조율하고 맞춰가고 그렇게 사는 게 결혼인데. 죽도록 사랑하면 뭐 다를 거 같냐고. 다 똑같아 사람 사는거”
끄덕끄덕. 나랑 내 친 남동생도 20년을 같이 살다가 6년 떨어져 살았다가 다시 같이 살면서 그렇게 싸우는데, 서로 생판 남남인 남녀가 만나서 같이 사는데 오죽할까.
N선배 말은 뭐 하나 틀린 게 없다. 그래서 1등 MD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