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을 무서워하는 이유
최근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지금 다니던 커피집에 나름 큰 애정을 갖고 있었지만, 경계 없는 업무들에 지쳐가고 있었고,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나를 능력 부족으로 취급하는 상사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가 가득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한 기업의 경력직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결국 최종 합격을 해서 직장을 옮겼다. 굉장히 규모가 큰 회사인데, 그 회사의 다른 부문에 다니는 대학 친구와 축하 자리 겸 오랜만에 저녁을 먹었다.
"이야~~ K, 회사도 바뀌고~~~ 대기업 오셨으니 이제 연애만 하시면 되겠네~"
"야 소개팅이나 해주고 말해."
"내가 내 부서 후배들 보여줬는데, 네가 다 싫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긴 했다. 미안한 부분.
"근데 너는 여자친구랑 거의 10년 다 되어가는데 둘이 결혼 얘기 없어?"
"응. 나도 딱히 결혼 생각 없는데 여자친구도 없는 것 같아. 최근에 여자친구 이사했는데, 친구랑 같이 살기 시작했어. 나보다는 여자친구가 더 어리기도 하고, 결혼에 진짜 크게 뜻이 없는 것 같아. 야, 우리 늙어서 나중에 같이 실버타운이나 들어가자. 어때?"
"아니, 뭐 벌써 실버타운 타령이야. 그때 가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
"에이, 나 진짜 결혼 생각 없어. 나중에 혼자 실버타운 가면 심심하니까 같이 가자 K야."
10년 가까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잘생긴 내 친구 H는 자꾸 결혼생각이 없다고 했다.
키도 크고 훤칠하게 잘생겼는데, 대체 왜 결혼생각이 없는 건가.
둘이 오래 사귀기도 했고, 여자친구도 이제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고, H와 나는 중반인데, 왜?
"근데 너는 왜 결혼 생각 없는데?"
"나? 좀 무섭잖아. 결혼에서 오는 책임감이."
"어떤 책임감? 내 가족이 생긴다는 책임감? 아니면 양쪽 가족들 챙기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 그런 거 말고. 나는 아이와 관련된 책임감이 무서워."
"아이?"
"응."
오...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결혼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
"분명 내 자식이니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일 텐데, 과연 그 아이가 제대로 올바르게 커서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할 수 있을지가 무섭달까."
"오, 나도 그 생각해. 나도 내가 아이 낳아서 키우면 이 아이가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을지가 너무 무서운 거야. 내가 아무리 애지중지 귀하게 곱게 키운 들, 아니면 훈육을 하면서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경우, 혼내고 잡아주고 한들,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접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어떤 아이가 될지 너무 무섭더라고."
"그렇지. 요즘 애기들 보면 어디서 뭘 어떻게 접할지도 모르고.... 내 앞에서는 정말 착하고 얌전한 아이처럼 해도 학교 가서는 어떨지 또 모르는 거니까."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나는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서 걱정과 두려움이 많다. 물론 아이보다는 반려묘가 더 의사표현도 안 하고 뭐라고 하는지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고양이의 세상은 내가 전부다. 내 고양이가 어디밖에 가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던지(?) 사고를 친다던지(?) 그런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근데 아이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자유의지가 있고 의사 표현도 명확하고, 내가 아이에게 접하게 해주는 세상 외에 정말 다른 세상들을 접하게 될 건데 그런 것들이 아이에게 분명 영향을 미칠 거고,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내가 바라는 대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자기 한 사람의 1인분의 몫을 온전히 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하다 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으로 아이를 안 낳겠다 하고 결혼을 안 하겠다 한다고 한숨 쉬시고는 한다.
"야 근데 무튼 나랑 생각 똑같은 애 처음 봤어. 보통 내가 이런 거 때문에 걱정돼서 아이를 안 낳고 싶고, 아이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을 굳이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 쓸데없다고 하는데, 와... 나랑 똑같이 생각한다니."
"ㅋㅋㅋㅋ 그러니까. 나랑 실버타운 들어가자고 70살쯤에."
너 그때도 여자친구 있을 거잖아,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