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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Jul 18. 2020

조심스럽지만, 코로나로 얻은 자유

난 코로나 덕에 '화장 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7월 17일 현재 기준 공식적인 발표에 의한 수치만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1,36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의해 감염되고 58만 명이 사망했다. 총, 균, 쇠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균'이라더니 정말 무서운 숫자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코로나에 지치고 염증,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작년 개인적으로 마음 아픈 일이 생겨 그 마음을 달래고자 4월 한 달을 발리에서 보낼 계획을 세웠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든 숙박/항공료를 100% 환불받았지만 리프래시 되지 못한 마음은 코로나 블루를 앓기에 충분했다. 개인의 사정도 이러한데 의료진들의 지친 마음은 오죽하랴. 그래서 오늘 코로나로 바뀐 일상 중 좋은 점을 적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는 찾아보면 영 없는 것은 아니라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계속해서 '코로나로 우울해'라는 말을 하는 것보단 혹시 지나치다 이 글을 읽을 사람에게도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로 바뀐 일상 중 굳이 긍정적인 면을 꼽자면 세 가지 정도인 듯하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위생 습관은 우리 집에도 좋은 영향이었다. 나는 집 청소는 하지 않아도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반드시 손발은 씻고, 양치도 제때제때 하는 습관이 배어있지만 남편은 나와 반대 성향이었다. 양치는 제때 하지 않아도 집안 물건들이 어질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어하는 유형. 하지만 코로나로 씻어야만 하는 환경이 집에 오자마자 씻는 좋은 습관을 길러준 것 같다. 물론 내 정리 정돈 습관까지 바꾸진 못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재택근무 경험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꼭 필요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종의 엄청난 스케일의 사회적 모의 테스트를 한 느낌이다.

한창 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국내 확진자가 백 단위로 늘어가던 3월경, 우리 회사도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재택근무와 관련된 일을 제2의 직업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재택이든 회사를 직접 출퇴근하든 일할 사람을 일하고 놀 사람은 논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해준 경험이기도 했다. 우리는 '팀장들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 '월요일에는 출근을 해야 한다'라는 끝내 고리타분함을 버리지 못한 '조건부 재택근무'였지만, 우리 회사뿐 아니라 컴퓨터로 대부분의 일을 하는 많은 회사들이 꼭 주 5일 출근을 해야 회사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으리라 본다. 

 실제로 미국은 재틱근무를 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0% 정도는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근로의 모습도 점차 바뀔 수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 방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섣불리 판단은 어렵다. '육아'등으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의 경력단절자들에겐 취업의 길이 열리는 긍정적인 영향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이는 여자인 나에게도 퍽 반가운 소리다. 하지만 한 편으론 회사와 회사일을 '효율성'이라는 한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 '긱 경제'의 활성화와 이로 인한 비정규직 문제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는 내 설명 보다 영화 - 미안해요 리키혹은 책 -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라 어찌 보면 나에겐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난 코로나 덕에 '화장 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화장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에게 코로나 사태로 인한 마스크 착용은 어쩌면 스트레스 1순위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평소에도 화장을 잘 하지도 못할뿐더러 하는 걸 귀찮아했다. 그래서 한참 코로나가 심했던 3월이 지나 4월 다시 출근을 시작했을 때 '화장이 지워지지 않는 픽서'를 택하는 대신 '화장하지 않을 자유'를 택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선크림 하나로 버티며 그 선택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라 자유를 얻은 대가로 (한국인답게 노랗다고 예쁘게 포장하기엔) 누런 피부를 드러내고, '너 탔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지만.


 내가 화장하지 않는 것을 '자유'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이유는 일단은 피부가 숨 쉬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고, 꾸밈없는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 내가 화장을 '여자가 당연히 겪어야 할 불편'이라고 생각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머리를 기르거나 화장을 하는 남자들이 많지만 내가 신입인 불과 6년 전만 해도 '화장 안 한 것'은 가려야 할 부끄러움이자 놀려먹기 좋은 소재였다. 늦잠을 자 화장을 못하고 간 날에는 "화장 안 했어? 넌 화장을 안 해도 될 얼굴이 아냐"라는 농담 따먹기를 했고, 화장을 빡세게 하고 간 날에는 "오늘 남자친구 만나러 가니?"라는 너스레를 들었다. 실제 경험담이며 놀린 사람은 남녀 가릴 것이 없었다. 나조차 놀리는 편에 서기도 했다.


 비단 가십거리의 주제가 화장이 아니라 여자의 외모였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남자들은 생전 해본 적 없는 화장을 여자인 내가 하지 않으면 입방아에 올랐고, 이런 상황들이 쌓여 화장을 하는 건 여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 또는 (심지어 즐겁게) 감내해야 할 불편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화장이 너무 불편해서요.'라는 말은 왜인지 모르게 나에게 당당함을 쥐여주었고, 탔냐는 물음에 '원래 제 피부가 누래요'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힘까지 생겼다. 그리고 내 맨얼굴에 사람들의 내성(?)이 생긴 건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도 질문을 하지도 않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또 한 번 느끼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고, 또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아, 물론 나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날(사진을 남겨야 하는 날?)이나 어딘가 놀러 갈 때 화장을 한다. 그리고 아직 누런 맨 얼굴보다는 피부는 하얗고, 입술은 붉은 내 모습이 더 예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화장하지 않은 내 모습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화장을 할지 말지를 내 스스로 선택해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길게 나열해 본들 오늘도 친구들과 '코로나가 제발 꺼졌으면', '백신 좀 안 나오냐'라는 말을 한다. 하루에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하소연이다. 코로나로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코로나로 세 가지는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게 되는 누구든 코로나로 잃은 것 밖에 없다는 슬픈 말보다는 '손 씻는 습관 하나는 건졌다'라는 생각도 가끔은 해주면 좋지 않을까.


진심으로 모든 이들의 가정에 건강과 안녕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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