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 '산책과 음악'
책을 고르는 일은 살이 좀 빠졌을 때 옷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즐겁다. 책장엔 아직 다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지만 서점에서 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땐 안 사고 못 배긴다.
한 달 전 즈음 서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가질 수 있었다. 디자인이 독특한 시리즈물을 발견했는데 홍보 책 띠가 없어서 좋았다. 남의 평을 먼저 들은 후에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한 온전한 내 감동이 없으리란 나의 오만과 고집으로 늘 책 띠를 쉽게 내다 버린다. 그런데 내다 버릴 종이가 없다니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참 좋다. 시리즈 세 권 중에서 '커피와 담배'라는 책을 골랐다. 가장 얇았기 때문이다.
커피와 담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그 둘이 뭐 어쨌다는 거야?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열었다. 첫 장을 펼치고서는 나는 계산대로 가 점원을 불렀다.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버려야 할 것들을 고르고 또 고르다가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커피 인 걸 알았다. 그래서 '커피와 담배'라는 책을 쉽게 쓸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면 되니까. 착각이었다. 기분 좋게 좋아하는 것과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해서 쓰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정은 ‘커피와 담배’ 책에서 발췌
다 읽어보니 정은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가 센스 있는 문체로 다채롭게 담겨있는 수필이었다. 얇다는 게 아쉬울 만큼 재미있게 읽었고 나에겐 이런 질문을 남긴 책이었다.
"나에게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것은 뭘까?
내가 절박하게 좋아해 결국 내 맨 얼굴이 드러나게 하는 것은 뭘까?"
돈 버는 것보다 돈 쓰는 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재미있지만, 나는 옷도 가방도 운동화도 그릇도 화분도 문구류도 그리고 커피마저 버리라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면 말이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뭔지 한참 동안 떠오르지 않았고, 내 인생은 깊게 빠진 아이템 하나 없는 심심한 인생인가 싶어 우울하기까지 했었는데, 그런 게 꼭 있어야 할까 싶어 졌다. 오히려 다 버릴 수 있는 삶이 더 홀가분한 게 아닐까.(하하.. 난 원래 합리화를 잘한다.)
하지만 물건에 집중했던 생각을 좀 틀어봤더니 알 수 있었다. 내가 포기하기 힘든 건 '산책'과 '음악'이다.
두 가지 모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이면서 신기하게도 행복할 때 보다 마음이 답답할수록 더 필요한 것들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시간이겠지. 물론 음악 대신 남편과의 대화가 있어도 좋겠다.
산책과 음악
이 두 단어에는 어떤 내 인생이 담겨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나는 이 둘을 결코 버리지 못하는 걸까.
나는 해가 저물기 직전의 시간을 좋아한다. 노을도 좋고, 그 특유의 푸르름도 좋다. 봄과 가을은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정도이고 여름은 여덟 시까지도 괜찮다. 그 시간 즈음에 산책을 시작해서 집에 돌아올 때 즈음 온 세상이 깜깜해지면 오늘 하루 잘 충전했구나 싶다.
결혼 후 남편과 산책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대화가 더 많아졌다. 산책은 어찌 됐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행위라 핸드폰을 잠시 잊게 해 준다. 그래서 산책은 누군가와 함께 라면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참 좋다. 술을 마시면서 할 수 있는 얘기 들을 선선한 바람을 마시며 할 수 있게 된다.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런 농담에 웃고 즐기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산책을 하면서 그와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걸으면 '아 이게 저녁이 있는 삶이구나' 싶어 진다. 그 시간을 위해 낮 동안은 또 태양의 리듬에 맞춰 열심히 보냈구나 싶다.
가끔은 혼자서도 산책을 하는데 남편과 싸웠거나 남편이 없어서 혼자인 시간이다. 싸운 날은 신기하게 평소보다 좀 빨리 걷게 된다. 가끔은 땀을 흘릴 정도로 뛸 때도 있는데 그러다 보면 잡생각을 잊을 수 있다. 어떤 생각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아버리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생기는 것 같다. 머리를 더 잘 쓰기 위해서 머리가 아닌 몸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도 필요하다. 혼자 걸을 땐 가장 느리게 걷게 되는데, 온갖 사물을 관찰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모르던 나의 흥미를 깨닫게 되기도 해 재미있다. 혼자든 둘이든 산책은 나를 충전하는 힘이다.
내가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 시간은 차 안이다. 남편이 차를 타면 음악을 꼭 틀어서 이젠 나도 차를 타면 음악을 트는 게 습관이 되버렸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보다 더 간절하게 음악이 필요한 순간은 '지옥철'과 '회사 야근 시간'이다. 산책이 힐링과 충전의 시간이라면 음악은 나에게 치료제 그 자체인 거 같다. 힐링이라는 부드러운 단어보다는 조금 더 절박하다. 힘든 시간에 더 필요한 음악은 약에 비유하자면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악보를 잘 읽을 수도 없으며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없지만 음악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어차피 음악의 본질은 음표가 아니라 음악이 주는 행복에 있는 거 아닌가. 이게 '솔'인지 '라'인지 잘 아는 게 내 행복의 옥타브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참 감사하다.
간혹 회사에서 윗사람의 잔소리를 듣기 싫거나 일이 너무 힘들 때 한쪽 귀에만 콩나물을 끼운다. 무선 이어폰을 발명한 사람에게 정말 노벨평화상을 수여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는 장소,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회사에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잘 아는 노래를 듣는다. 심적으로 안정이 되고 위로받는 기분이다. 출퇴근 길에서는 빌보드를, 주말에 집에서는 재즈를 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뭐냐고 물으면 '재즈'라고 답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주말 집에서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장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음악이 간절하게 필요할 때는 좋아하는 국내 가수의 노래를 듣는 걸 보면 말이다.
어찌 보면 산책과 음악은 닮았다. 나에게 그 둘은 같은 의미인 것 같다.
나는 산책과 음악으로부터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알았다. 삶의 위안을 얻고 있었던 거 같다. 산책은 행복을 충전시키고 음악은 아픔을 지워준다. 나를 또 나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것들이다. 나의 하루가 산책과 음악으로 조금 더 소중해진다.
누구에게든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그건 다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그건 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일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