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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Aug 06. 2020

월요병엔 약이 없을까

평범한 회사원의 무기는 결국 나 자신

오늘은 분명 역사상 가장 과학이 발전한 날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는데 현대인들의 고질병은 자꾸만 늘어가는 것 같다.

만성 위염, 신경성 장염, 변비, 우울증, 일자목 증후군에 이어 '월요병'이라는 어마어마한 놈도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 이 모든 걸 겪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 보다 많은 걸 겪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월요병'이라는 놈 덕에 (오너가 아닌) 회사원이라면 현대인들의 고질병 중 하나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월요병은 대게 일요일 저녁을 먹고 나면 시작된다.

'개그콘서트'가 국민방송이던 시절(?) 개콘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웃음기가 가시며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거나 우울증에 말을 잃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슬슬 주말 동안 잊고 지냈던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서울의 출근 지옥철이 떠오르는 것이다.


퇴근보다는 출근이 지옥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퇴근은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병이 시작되었고, 오늘 나의 증세는 우울증이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회사 밖에서, 혹은 주말에 업무를 생각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토요일부터 월요병이 나타난 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지난주 금요일 한 클라이언트와의 대화에서 발생한 '불쾌감'과 그래서 더 일을 잘 처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 같다.

하필 처음 해보는 파트라 욕심에 비해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감까지 겹쳤다.

(쓰면서 현실을 직시하니 더 최악인 것 같다... 괜히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돈을 주는 사람에 비해 을의 입장이고 나의 업무도 반전 없이 평범하다.

지난주 나는 소위 갑질 하는 클라이언트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 거 같다.

(이하 그년이라 하고 싶지만 그녀라고 표현하겠다.)

더 문제는 그녀의 프로젝트가 코로나 영향으로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 팀에서 희망을 주는 액수이며,

그녀가 우리 회사를 상대로 이미 투아웃을 외친 이후 맡게 된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그녀는 골리앗 같은 투수이고 경기는 투아웃인데 나는 다윗 같은 타자인 상황이랄까.

뭐... 그렇다.


상황이 엿같지만 난 오늘 로또에 당첨도 되지 않았고, 나에겐 천정부지로 솟은 아마존 주식도 없고, 될 데로 되라고 프로젝트를 엉망으로 만들 배짱도 없다.

결국 나는 월요일 출근을 할 것이고 그 프로젝트를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기왕 골리앗을 만난 다윗이 된 김에 진짜 다윗처럼 골리앗을 이겨버리고 싶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 하느님의 도움인지 천재적인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라 대략적인 내용만 알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돌멩이로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내용은 여러 신화, 그림, 성경에서 확인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돌멩이는 분명 목동이 쉽게 가질 수 없었던 청동검, 쇠검, 탄총, 기관총, 대포가 아니다. 목동에게 너무나 친숙한 아이템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가 나의 월요병 치료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지혜를 준 것 같다.


나에게 어울리는, 내가 평소에 써오던 무기로 싸울 것

나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부분을 잘 해석해 내니까, 일의 순서를 잘 정하니깐, 팀원들과 도움을 잘 주고받으니깐, 정 안되면 공을 들여 밤을 새울 수 있으니깐,


괜찮다. 그래 괜찮다.

무엇보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낸 적은 많지 않다. 혹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내 무기로 싸워진다면 패배를 인정하면 그만이다. 무기를 바꾸든 내가 바뀌든 그 이후의 문제는 그 이후에 생각하자. 신도 아닌데 내가 왜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가.


뭐가 됐든 나는 또 나의 방식으로 그렇게 싸울 것이다. 회사 가는 것이 전쟁터 싸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알기론 월요병엔 약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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