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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Nov 29. 2020

구름이 뿡하고 방귀를 뀌었네

외할아버지 안녕, 안녕히.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린지도 벌써 2주가 흘렀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말수도 웃음도 적은 편이었다. 우리가 외갓집을 가서 듣는 소리도 '금쪽같은 우리 손녀 왔네'와는 거리가 멀었다. 늘 밥은 제대로 먹냐는, 왜 그렇게 말랐냐는 핀잔이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 나 살쪄서 예전에 입던 바지가 안 들어가요."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풍채 좋은 할아버지 눈에 손녀딸은 아직도 어리고 여리고 아기 같았을 테니. 어차피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 타향살이 손주들은 늘 밥을 못 먹고 다니는 것이 국룰 아니었던가.


그런 외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뵀을 때는 남산만 하던 배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깡 마른 모습이었다. 뭘 잘 드시지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니시지도 못했다. 항상 하던 잔소리도 없으셨다. 웅얼거리셔서 내가 잘 듣지 못했거나.

코로나 때문에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본 것도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할아버지는 잠이 드셨다. 일 년 동안 손녀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차마 상상하기도 죄송하다. 현실에선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지만 난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에 외할아버지와 꿈에서 만났고 이제와 혹시 그게 미리 한 작별인사가 아니었을까 그리워해 본다. 꿈에서 외할아버지는 예전의 그 푹신푹신한 배로 날 안아주시면서 '이제 괜찮다. 안 아프다.' 하셨다. 온 가족이 모였고 예전처럼 아빠랑 술도 드셨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정말 행복한 꿈이었다. 꿈에서 깬 뒤엔 이게 꿈이었다는 게 너무 믿기지 않고 슬퍼서 엄마한테 엉엉 울며 전화할 만큼 행복한 꿈이었다.


그때의 꿈처럼 외할아버지가 가끔 웃을 때가 있었다. 내가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거나 재롱을 떨면 근엄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다 포기한 사람의 어쩔 수 없이 피식거리는 입꼬리를 보이곤 했다. 그리고 난 그게 그렇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외할아버지도 날 아끼셨다. 단연코 외할아버지는 손주 셋 중에 유독 나를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기른 손녀딸이라 그랬던 거 같다.

엄마 껌딱지였던 언니 덕에 둘째인 나는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 집에 자주 맡겨지곤 했는데, 어릴 때부터 외가 손을 타서 그런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특히 좋아했다. 말을 시작했을 땐 ('할아버지'라는 발음이 안되어 '하지'라고 불렀다.) 하지 집에 데려다 달라. 하지 집 가서 잘 거다라고 생떼를 써서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우린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외할머니는 여전히 오래된 그 추억 속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몇 년 전 그 외갓집에 들러 창고방에서 매실액을 꺼내오는데 오래된 장롱에 그 스티커들을 발견했고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정말이지 나는 친구들과 남편에게 '또 기억 안 나?'라는 말(말이라기 보단 혼쭐)을 자주 듣는 편인데, 말을 배울 때의 내가 떠올랐다는 게 잘 납득은 되지 않지만 분명 외할아버지가  '이건 코끼리. 이건 구름.' 하며 스티커를 가리키던 것, 그리고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던 촉감(?)이 기억났다. 또 신기한 건 근엄한 할아버지와 어울리지 않은 그 스티커들은 족히 30년은 되었을 텐데 때도 타지 않고 새 것 같이 붙어있었다.


이번에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스티커를 사진에 담아왔다. 외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외할아버지가 나를 안고 '구름이 뿡 하며 방귀를 꼈네'라고 하셨단다. 내 기억은 '이건 구름, 이건 코끼리' 였는데 아무래도 나보단 외할머니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내가 찍어 온 사진 속 구름은 뿡 하고 방귀를 뀌고 있었다.


 기억은 외할아버지가 그리워 내가 조작한 것일지라도 외할아버지의 사랑만큼은 진실일 것이다.

혹은 '이건 코끼리고 이건 구름이야. 그런데 구름이 뿡 하고 방귀를 뀌었네.'라고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돈 벌기 시작한 뒤 고작 몇 번 드린 용돈을 그대로 모아놓고 다시 주시면서 늘 살 좀 쩌라, 밥은 먹고 다니냐 걱정하시던 외할아버지가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쉬시길 바랄 뿐이다.


안녕 하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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