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파트를 포기하니 보이기 시작한 주택
남편이 자취하던 투룸에서 신혼을 시작하다 처음 아파트 전세를 살게 되었을 때, 저희는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아본다는 기쁨과 내 집 마련의 희망으로 가득 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안 살아보고 몇 억을 어떻게 써? 2년 전세 살다가 이 동네 괜찮으면 열심히 돈 모아서 여기 아파트 사자."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살(Live) 집을 살(Buy) 때에 몇 년 정도 살아보는 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일이 돼버렸죠. 어떤 정책도 무마시켜 버릴 투기꾼과 이런 현실을 외면한 정책의 콜라보, 설상가상으로 COVID-19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자산 가격...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몇 년 사이에 서울의 집값은 미친 듯이 높아졌습니다.
살아보고 결정해야지 라고 생각한 시점의 매매가를 억 단위로 뛰어넘는 전세 실거래가가 등장하기 시작하자 초조해졌습니다. 서울 대부분의 집값이 2배는 올랐으니까요. 빚을 좀 많이 지더라도 차라리 그때 샀어야 했다고 후회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채광이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살다 보면 겨울에 곰팡이는 어느 쪽에서 고갤 내미는지, 동네 마트는 편리하고 쾌적한지, 직장과의 출퇴근은 할만한지, 저녁에 외부 소음은 잘 차단되는지, 밤길은 위험하지 않은지, 이웃들은 친절한지, 층간소음은 심한 편인지, 도보 거리에 커피 맛집이 있는지는 사고 나서 생각하는 것들인가 봅니다. 전 재산을 쓰면서 말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올라버린 집값에, 낮은 청약점수에, 결국 저희는 아파트를 포기했습니다. 사실 집 사는 걸 포기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 공부도 시작했고, 정 안되면 서울을 떠나자고 마음먹고 미래의 사업 구상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습관이 무서운 건지, 미련이 남았던 건지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서 시세를 확인하는 건 여전했습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아파트'만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차이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해 주었습니다.
N부동산을 보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저를 불러 집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아파트가 아닌 상가주택이었습니다. 흔히 보던 빌라들과 달리 외관이 예뻐서 저는 처음엔 '음 예쁘네' 하고 말았는데 남편의 뒷말이 저를 톡톡 건드렸습니다.
"구너야 이거 봐봐, 월세도 나오는 이 건물이 옆 동네 아파트 값이야."
" 잉? 건물인데 그게 말이 돼? 요새는 땅콩 건물도 다 옛말이고 건물은 다 몇십억 하는 거 아니야?"
사실 절대적으로는 저희 기준에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서 아파트 값이랑 비슷한 건물이 '합리적이다'라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빠 난 이 집 마음에 드는데 그냥 임장 데이트 셈 치고 보러 가봐?"
다음 날 바로 공인중개사로 연락을 했고 그렇게 저희는 우리 집을 만날 약속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