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너 Aug 15. 2021

머메이드 버블

주의 :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설희는 재구 앞에서는 늘 벙어리가 된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은 설희였는데 그녀는 자신이 이름처럼 백옥 같은 피부가 아닌 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어릴 때부터‘이름이랑 다르게 검은 편이구나’라고 놀림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설희는 말재주로 남자를 홀리는 능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재구가 반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반면 재구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리고 그런 재구를 보며 설희는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했답니다. 회사에서도 학교처럼 ‘인기남’이 있었고 바로 재구는 그런 남자랍니다.  얼굴이 잘 생긴 건 말할 것도 없이 일도 잘한다는 평가가 많았고, 체육대회를 할 때엔 꼭 필요한 그런 팔방미인 말이에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건 ‘겸손’이었지만 요즘이야 겸손보단 자신감이 더 멋있어 보이는 거죠.

 작년 체육대회 때 혼성 배구경기를 하면서 설희는 재구에게 푹 빠져버렸는데, 꽃샘추위마저 지나고 슬슬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기 시작하자 설희의 마음은 더 말랑말랑해졌습니다.  


 3월은 설희 회사의 조직개편이 있는 달이에요.

설희는 자신의 멘토인 현 과장님과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생뚱맞은 부서로 발령이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팀이 분리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설희는 현 과장님과 같은 팀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리 기쁘지 않은 소식이 있다면 대리 3년 차가 된 설희도 이번 TF팀에서 꼼짝없이 성과를 내야 했어요. 원래 회사는 대리 2~4년 차들이 이직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온갖 일을 시킨답니다.

  

“축하해 오대리. 이번 TF는 국장님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이라 잘만 하면 내년 특진도 기대해 볼만 해~”


 현 과장님이 지난해 평가가 좋았던 설희가 TF팀이 된 것을 축하했지만 설희는 기쁘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그녀는 INFP였기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초조한 마음을 속으로 삼켰답니다.


 TF팀 회의는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선 순간, 설희는 깜짝 놀라 다시 회의실을 나올 뻔했어요. 바로 재구가 대각선 자리에서 팬을 입에 물고 있다가 설희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는 게 아니겠어요?


“안녕하세요.”


“아..”


 설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어요. 그저 가까이에만 있어도 심장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데 설희를 보며 웃음 짓는 재구를 보니 턱 하고 숨까지 막히는 거예요!

 그날 밤 설희는 잠을 설쳤어요.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진 거예요! 왕자님 같은 재구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니 어디 잠을 잘 수 있겠냐고요.

 하지만 설희가 자든 말든 시간은 잘만 흘러 또 아침이 되었고, 다시 밤이 되었고, 또 아침이 되어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어요!


 설희는 겨울에 태어났지만 여름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여름은 설희가 잘하는 수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었거든요. 설희는 18살 때까지는 수영선수가 꿈이었답니다.

 28살이 된 설희는 수영선수가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취미생활로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입사동기 영하가 회사 근처 수영장에 아침반이 생겼다고 알려주었어요. 친구 추천은 10% 할인까지 된다기에 설희는 상담을 하러 간 날, 3개월치를  끊어버렸습니다.

 설희는 아침 수영을 즐기니 출근 후 머리가 팽팽 더 잘 돌아갔어요. 오늘은 접영도 평소보다 잘 되더니 TF 회의시간에도 설희의 아이디어가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았지 뭐예요! 기분 좋게 회의실을 나서려는데 재구가 설희에게 말을 걸었어요.


“설희 대리님 오늘 아이디어 멋졌어요. 그리고 수영도.”


“감사… 네?”


“하하. 수영장에서 설희 씨 예쁘던데요?”


 설희는 너무너무 부끄러웠지만 예쁘다는 재구의 칭찬이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용기 내어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혹시.. 사거리 스포츠센터 다니세요?”


“네. 저녁반이었는데 TF팀 야근이 많아져서 옮겼어요 얼마 전에.”


“ 아 그러시구나…”


“음 같은 수영장 다니는 기념으로 우리 술이나 한 잔 할래요?”


 원래 수영장을 같이 다니면 같이 술을 먹어야 하나요? 이 전개가 과연 자연스러운가 싶었지만 재구의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고 멋졌기 때문에 설희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회사 밖에서 재구는 더 매력적이라 설희는 이 시간이 꿈같기도 해서 정신이 몽롱했어요. 실제로 재구랑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하다 잠이 들곤 했지만 야속하게 재구는 설희의 꿈에 조차 나타난 적이 없었거든요.


“뭐.. 좋아해요?”


“아.. 저는… 그냥 과장님이 드시는 거랑 같은 거..”


“여기 회사 아닌데”


“네?”


“회식도 아니고, 우리끼리 술 마시러 온 건데 나 여기서도 과장이에요?”


“네? 아… 네 그럼… 선배님..?”


“귀엽네.”


 그날 설희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어요. 살짝 술에 취해야 은근슬쩍 좋아하는 마음도 표현해 볼 텐데 여과 없이 들어오는 재구의 칭찬에 왜인지 설희는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날 이후로도 둘은 TF팀 야근을 끝내고 둘이서만 맥주를, 막걸리를, 과일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바뀌었죠. 재구는 수영장에서와 술집에서 설희에게 너무 다정하고 장난기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예의 바르게, 그리고 살짝은 거리감 있게 행동했어요. 설희도 괜히 사내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이런 재구의 행동이 싫지 않았습니다.

 회사 밖에서 재구는 설희가 예쁘다는 말을 자꾸 했어요. 특히 다리가 예쁘다고요.


“설희야 오빠 접영 좀 알려주라.”


“나 누구 알려줄 만한 실력은 아닌데…”


“아냐 네 접영 자세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진짜 인어공주 같단 말이야. 다리가 길고 쭉 뻗어서 그런가.”


 그 뒤로 설희는 거울이 보일 때마다 은근슬쩍 다리를 요리조리 비춰 봤어요. 예전에는 그저 까만 막대기 같다 생각했지만 재구가 칭찬해주니 매끈하고 건강한 다리 같아 보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설희는 허리가 아파서 23살 이후로 신지 않았던 하이힐을 다시 신어보기로 결심하고 구두가게에 갔습니다.


“어머 너무 잘 어울린다.”


“10센티는 너무 높은 거 같은데…”


“하긴 자기는 다리가 기니까 그럼 좀 더 낮은 거… 음.. 혹시 이거 한 번 신어 봐요.”


 가게 주인이 구석에서 앞코가 뾰족하고 글리터 장식이 있는 8센티 힐을 꺼내왔어요. 겉보기엔 여느 구두와 다를 바 없었지만 신는 순간 설희의 다리는 만 배는 더 예뻐 보였답니다.  


“사실 이건 내가 신으려고 만든 거라 파는 게 아니긴 한데…”


“아.. 이걸로 사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좀 곤란한데.. 이건 밑창을 만드는 데1년, 앞코를 만드는 데에 1년, 몸통을 완성하는데 1년, 또 글리터 장식에 1년이나 걸렸다고.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제일 아끼는 구두야.”


“아아… 정성스럽게 만드셔서 그런지 정말 너무 예뻐요.”


설희는 이 모습을 꼭 재구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구두가 가지고 싶어 눈물까지 날 뻔했답니다!


“혹시~ 그렇게 가지고 싶다면 이 제안 어때? 특별한 날 이 구두를 빌려줄게. 대신 한 번 빌려줄 때마다 우리 가게 다른 신발을 하나씩 사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이미 뾰족구두에 홀린 설희는 그러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설희는 후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구두를 신고 간 날 재구에게 처음으로 주말 데이트 신청을 받았거든요.


 주말에 만난 재구는 ‘꾸안꾸 남자 친구 룩’의 정석으로 입고와 그 어느 때 보다 멋있었습니다. 하지만 뾰족구두를 신은 설희도 만 배는 예뻐진 모습으로 예전과 달리 자신감이 넘쳤죠. 선남선녀의 데이트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매력적이고 순조로웠습니다.


“오늘 정말 예쁘다. 너 내가 바라던 이상형에 가까운 거 알아? 수영 잘하는 인어공주. 다음 달도 수영장 다닐 거지?”


 재구는 달콤한 말을 참 잘했어요. 그래서 설희는 구두를 빌리고 또 빌렸지요.

평일에 비해 턱 없이 짧은 주말은 쉴 새 없이 빨리 지나는 것 같았고 어느새 단풍이 새빨갛게 물든 가을도 깊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발장에 구두가 넘쳐났지만 설희는 뾰족구두를 빌리고 또 빌렸어요.


“너 지네야? 요새 왜 이렇게 안 신는 신발을 계속 사.”


“아 그게.. 데이트가 있어가지고..”


“아니, 내 말은 데이트에 신고 나가지도 않잖아! 그러다 니 텅장된다? 게다가 너 허리도 다시 아프다며”


“아냐 참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그냥 낮은 거 신자. 응? 한 번 나간 허리는 잘 안 돌아온다?”


“알겠어.. 근데 오늘은 아냐. 진짜 오늘은 이거 신어야 돼.”


 유난히 정성스레 화장한 설희는 룸메이트의 조언을 무시하고 뾰족구두를 신은 채 재구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왜냐면 평소와 달리 재구가 이런 말을 남겼거든요.


- 오늘은 할 말이 있어-


 설희는 드디어 고백을 받는 날이 왔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허리가 아프던 말던 이 뾰족구두를 신고도 펄쩍펄쩍 뛸 만큼이요. 하지만 레스토랑에 도착한 설희는 재구의 표정이 어두워 보여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이내 긴장했구나 생각해버렸지만요.

 둘은 맛있게 파스타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갔어요. 확실히 해가 짧아져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하늘은 금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술 한 잔 할까?”


“좋아요.”


“오늘은 소주 마시자.”


 어묵 바에 들어간 설희와 재구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설희는 용기 내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재구의 연인이 되고 싶었어요. 사실 여전히 회사에서 거리를 두는 듯한 재구의 모습에 조금 실망스러운 맘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오빠 오늘 할 말 있다면서요?”


“응 맞아..”


“뭔데요? 어, 안주 왔다. 먼저 이거 먹고 말해요.”


“음.. 그게… 이거 좀 봐줄래?”


재구가 핸드폰을 보여줬어요. 설희의 번호를 ‘나의 인어공주’라고 저장해두었지 뭐예요! 설희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지만 왜인지 재구의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의 인어공주?”


“응.. 설희야 미안한데… 인어공주가 되어 주면 안 될까?”


“풉. 그게 무슨 오그라드는 말이에요? 그리고 그게 왜 미안한데요?”


“인어공주는 예쁘고, 착하고, 착해서… 왕자님의 행복을 빌어주니까…”


 재구는 벌컥 술을 들이켜더니 설희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곤 또 한 잔을 혼자 따라 마시더니 설희의 눈을 보며 말을 이어 갔어요.


“나 사실 결혼해.. 여기 이거..”


 재구가 몇 가지를 누르고 다시 보여준 핸드폰에는 믿기지 않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

            모 바 일 청 첩 장

- 12.19 재구❤주아 결혼합니다 -

========================


“… 이거.. 뭐예요?”


“와달라는 말은 안 할게..”


“ㅁ.. 뭐라고요?”


설희는 당혹감과 모멸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나 너 사랑했어. 진심이야. 나는… 너는 내 이상형이고.. 근데 어쩔 수가...”


재구는 설희 앞에서 뭐라 뭐라 떠들어댔지만 설희의 귀에는 파리가 윙윙대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예전처럼 재구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생각했는데 설희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얼어붙어버렸어요. 재구가 말을 하면 할수록 공기는 더 차가워져 설희의 심장을 베는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 어묵 국물은 따듯했어요. 어묵 국물만이 그 공간에서 설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따듯함이었습니다.


 다음날 회사에서는 재구의 종이 청첩장이 돌았어요. 설희는 한 번 더 재구가 결혼한다는 그 문구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갈기갈기 찢어 버릴까 생각했지만 회사 사람들은 설희가 재구를 많이 짝사랑했구나 하겠지요. 사실 회사에서 재구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설희에게도 딱 그 정도로 대해주었거든요.

 모두에게 친절했던 재구는 설희를 제외한 모두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청첩장 대신 찢어진 건 설희의 마음이었어요. 퇴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카드값이 생각났어요. 설희는 그동안 구두를 너무 많이 사버렸던 거예요. 게다가 재구가 아닌 자신이 퇴사를 하는 건 너무 부당하게 느껴졌답니다.

 친구들 몇 명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친구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증거를 모아서 네ㅇ트판에 올려라, 깨톡을 캡처해서 그 청첩장 게시판에 올려라, 몰래 그 여자를 만나 다 말해버려라 등등.. 민소희도 울고 갈 복수극이 넘쳤습니다.  


 설희는 어떤 복수가 제일 통쾌한 복수일지 밤마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구를 생각하면 할수록 아픈 건 설희였어요.


‘인어공주… 왕자를 위해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가 되어달라고? 우리도 사랑이었지만 결혼상대는 다른 여자라라고? 이게 말이 돼?’


설희는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아 얼마나 안타까워요.


“야 오설희! 너 정말 이렇게 지낼 거야?”


“난희야…”


“너 정말 그 멍청한 인어공주가 될 거냐고! 친구고 가족이고 다 버리고 머저리 같은 남자랑 데이트하더니 결국 사랑에도 배신당해서 물거품 따위나 돼버릴 거야?”


“흐흑… 난희야… 나 어떡하지?”


“뭘 어떻게 하긴. 일어나 나가자.”


“어디 가는데?”


“그냥 따라 나와.”


 난희가 데려간 곳은 구두가게였습니다. 성난희는 한 번도 신지 않은 수많은 구두들을 어디서 찾은 건지 판례까지 들이대며 모두 환불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뾰족구두도 주인에게 던져버리고 왔습니다. 멋진 친구예요!  그리고 그 돈으로 설희에게 소고기도 사주고 옷과 예쁜 플랫슈즈도 사줬어요. 사실 그러고도 돈이 남았답니다.


“내일이지?”


“응..”


“가자.”


“싫어. 내가 거길 가서 또 상처를 받아야 해?”


“누가 상처 받으래?”


 어묵 바에 간 그날보다 더 예쁘게 치장한 설희는 난희와 함께 결혼식장에 도착했어요. 난희는 설희를 위해 남장을 했습니다. 원래 키 큰 단발에 미남형인 난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친구 우진이의 도움으로 정말 멋진 남자처럼 보였답니다!

 난희와 팔짱을 낀 설희를 본 재구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한순간도 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던 재구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자 설희는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곤 재구 앞으로 걸어갔어요.


“유재구 과장님, 결혼 축하는 못 해 드리지만 선물은 놔두고 갑니다.”


 재구가 뭐라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설희는 훽 돌아서서 식장을 나왔습니다. 곧이어 "신랑 입장!"이라는 소리에 재구는 바로 식장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종이백 안의 선물상자와 카드를 열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종이백은 돌고 돌아 신부 친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랑을 담아’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에 신부 친구는 그 종이백을 주아에게 전해주었지요.

 몇 개월이 지나 주아는 그 선물을 뜯어봤어요. 그건 러ㅇ의 ‘머메이드 버블’이라는 버블바였어요! 주아는 재구와의 로맨틱한 밤을 상상하며 욕조에 버블바를 녹였습니다. 풍성한 거품이 욕조를 가득 채우고 삼십 분이 지났을 까요 거품이 걷히자 코팅된 사진이 욕조 위에 둥둥 뜨는 게 아니겠어요?

 그건 바로 설희 볼에 입을 맞추는 재구의 사진이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주아는  사진을 뒤집었어요. 사진 뒷면엔 '주아씨가 봤다면 미안합니다. 부디 혼인신고 전에 발견했기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지요.


주아는 너무 놀랐고 샤워 가운만 입은 채 종이백 안의 카드도 열어보았습니다. 카드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네가 바라던 인어공주 거품이야. 개자식아



 해는 바뀌었고 추운 겨울은 깊어져 설희의 생일이 다가왔어요. 사실 그날 이후 설희는 재구의 개인적인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어요. 재구가 그 카드를 열어봤는지 주아가 입욕제를 사용했는지 설희는 몰랐답니다. 하지만 설희는 이제 재구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재구의 앞에서 말문이 막히지도 않았고요. 다만 딱히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죠. TF팀의 프로젝트는 성공해서 설희는 현 과장님 말대로 특진을 했고, 4월엔 태국지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흘렀을까요 설희는 재구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여전히 그는 잘생겼고 여전히 바람을 피운다고요. 사내 게시판에 불륜 폭로 글이 올라왔거든요. 이 재미난 가십을 난희에게 말해주었더니 난희는 게시글을 올린 여자는 대체 언제부터 만난 건지, 그럼 문어다리였던 건지, 주아와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는지 속사포처럼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설희는 궁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알게 뭐람’ 하고 말았습니다.


 여름의 나라인 태국에서 설희는 마음껏 수영을 즐겼습니다. 오늘도 설희는 일을 마친 뒤 수영을 하러 갔어요. 한국에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태국에서는 바다수영을 했고 프리다이빙까지 배웠답니다!


프리다이빙을 하는 설희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인어공주 같았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파트가 너무 비싸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