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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Mar 11. 2022

반반은 치킨 시킬 때나 하세요

07. 당신이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결혼생활은?

 애로부부(방송/채널A)를 가끔 보는데(사실 요즘 애청자가 돼버렸다) '반반한 남편'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접했다. 뭐든지 반으로 정확하게 계산하는 남편의 얘기였다.

사연 속 그는 결혼할 때 경제적인 부분도 반, 집안일 같은 노동도 반으로 나누자는 사람이다. 얼핏 들으면 매우 합리적이고 공평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사연 속 남자는 결혼 비용은 반반했으나 육아는 반반 할 생각이 없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가는 비용도 '네 몸 쉬는 거니 네가 알아서 충당해'라고 말하고, 분유를 타거나 젖병을 소독하는 일은 반반 할 수 없는 '엄마의 일'이란다.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부인에게, 반반 나눈 집안일 중에서  '밥 차리는 것'은 네 몫으로 나눈 일이니 대신해줄 수 없다고도 한다. 결국 육아에 지친 부인이 베이비 시터를 들이려 하자, 그는 점점 더 본색을 드러내는데, 베이비 시터 비용이 아까워 장모님께 30만 원 정도의 작은 용돈으로 아기를 맡기려 한다. 결국 부인과 싸워 장모님께 200만 원을 드리며 아기를 맡기게 되자 자신의 어머니와 3일씩 일자도 나누고, 돈도 100만 원씩 나눠드리자며 엄마 혼자의 몫이었던 육아가 갑자기 반으로 나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장모님이 암에 걸리셔서 아기를 봐줄 상황이 안되자, 본인 어머니께 300만 원을 드리자는 어이없는 말을 뱉더니, 장모님 암 보험비로 나온 5천만 원을 또 반으로 나누자는 욕 나오는 논리를 펼치는 것으로 일단 드라마는 끝이 났다.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그의 황당한 논리 때문에 '부부에게 정말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식은 뭘까?'라는 질문은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반반 나눈다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쉽게 공평함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서 '정확히 반반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매정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어쩌면 반반하자고 말하는 마음에는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를 위해 조금의 희생도 하고 싶지 않다는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평생의 동반자에게 듣는 기분이 유쾌할 리는 없다. 혹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아직 그런 마음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결혼할 준비가 안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숫자를 다루는 게 아니고서야 정확하게 반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집안일로 예를 들자면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나눈다고 했을 때, 식사 준비에 재료 구매부터 손질, 요리, 요리 뒷정리가 포함된다면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각각 하나씩 맡는 게 정확하게 반을 나눈 게 맞을까? 그렇다고 해서 식사 준비 따로, 손질 따로, 요리 따로, 수저 세팅 따로 이렇게 모든 일을 세분화해서 반으로 나눈다면 그게 부부로서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극단적인 사연이 아니고서야 대게는 한 사람만의 희생을 막기 위해 '반반'이라는 방법을 활용할 것이다. (거의 모든 집안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고 꼴랑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어리석은 주장을 하지는 않길 바란다.)

 나와 남편 역시 대부분의 집안일을 나눠서 한다. 한 사람이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한 사람이 정리정돈을 한다거나, 누군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분리수거라도 하려고 한다. 얼핏 사연의 부부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손해 보고 싶지 않아!'가 아닌 '네가 힘들게 무언갈 하고 있으니 나도 뭔가를 돕고 싶어'란 마음이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물론 누군가가 더 많은 일을 할 때도 생기고 그러면 사람인지라 '왜 나만 다 하는 것 같지?'라는 감정으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고 또 화해하면 항상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상대방의 희생이 있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혼생활 불행하겠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의 희생과 양보도   없는 결혼생활 역시 끔찍하긴 매한가지다.

 부부는 '이적 - 다행이다' 가사처럼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있게 하는 존재다. 이 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가장 진득하게 내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내가 1 했으니 너도 1해라는 메마른 말은 넣어두자.

나 또한 반성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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