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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너 Feb 27. 2022

언제 결혼을 결심했어요?

06. 가장 진부하고 가장 궁금한 이야기

 결혼을 한 선배에게 하거나, 혹은 본인이 결혼을 했다면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래서, 언제 결혼을 결심한 거야?


육하원칙에 따르면 이 질문은 시점을 묻는 것이겠지만 그 속뜻은 다르다.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때, 혹은 이 사람의 어떤 점이 결혼할 사람이라고 느꼈는가'가 더 정확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혼 6 차에도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하는데 우리의 대답은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다.

오빠의 대답은 사실 나를 섭섭하게까지 만들었다.

"우리 엄마 팔짱 끼는 거 보고 진짜 이 여자다 했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니.. 지금 그럼 내가 여자로서 큰 매력이 있다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 잘하는 여자라서 결혼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물론 나 역시 우리 가족한테 잘하는 모습을 보면 반할 거고 감사할 거고 더 좋아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가족과 어른에게 잘하는 남자는 결혼상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훨씬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저히 헤어지기 싫어서'라거나 '나이 든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것마저 좋아서'와 같은 좀 더 달달한 멘트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라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변명 아닌 변명은 원래 본인은 결혼관과 연애관이 일치해서 결혼할 만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면 잘 사귀지도 않고 사귀더라도 한 달을 못 넘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처음부터 결혼할 만큼 좋았다고... 이러니 저러니 구시렁대어도 결국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지만 살아보니 몸매가 예뻐서, 직업이 마음에 들어서, 돈이 많아서 보단 어쨌든 나의 (변하기 어려운) 성품, 성향에 관련된 퍼스널리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었다니 다행이었다 싶기도 하다. (자기 합리화인가...)


 나의 대답은 간결하고 센스 있는 문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의 대답과 비교해서 좀 더 로맨틱하다.

 "오빠가 이직한 지 몇 년 안 된 0000(대기업) 그만둔다고 했을 때 깨달았지. 아 내가 이 남자 결혼할 만큼 좋아하네라고. 퇴사하고 시작한 사업 망하면 어떡하지? 그때도 내가 오빠를 좋아할까? 솔직히 잠시 걱정됐는데 그래도 오빠 자리 잡을 때까지 내가 벌면 되지 뭐, 혹은 같이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싶더라고."

 그래서 난 한창 퇴사를 고민하던 남편에게 '좀만 더 참아보지'말고 '그래 퇴사해'라고 할 수 있었고 그즈음에 어느 정도 나이 찰 때까지 사귀고 있으면 이 남자랑 결혼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결혼은 참 다양한 이유로 성사된다. 재벌들은 인수합병처럼 본인의 커리어나 권력승계를 위해서, 누군가는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아픈 이유로, 점점 나이가 드는데 혼자 살기는 싫어서, 이제 돈을 모으고 싶어서, 그(그녀)의 직업이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되어서, 손주 타령하는 부모님 잔소리에.

 사실 대게 '사랑해서'라는 두리뭉실한 문장 안에 가지각색의 이유, 속뜻이 존재한다.

칼 같은 조건만남이 아닌 이상 어쨌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할 테니 그 위에 어떤 속뜻을 더하든 결혼한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언제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보다 '어떻게 결혼생활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나'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의 중요성과는 상관없이, 결혼 몇 년 차가 되든 '그래서~ 언제 결혼을 결심한 거야?'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 있지? 근데 [블라블라*]"


*블라블라 : 속뜻

우리 가족한테도 잘하더라고

대화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

경제력까지 좋으니까 너무 멋있는 거야

얼굴까지 너무 예쁜 거야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 너무 잘 맞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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