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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Dec 31. 2021

브런치 작가 승인부터 내 에세이 출간까지

짧은 2021년 글 연말정산

#브런치 작가

강의나 북토크에서 '고민보다는 행동', '피봇팅' 같은 말을 줄기차게 들으면서도 나는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전환하는 게 다소 느린 편이었다.

어릴 적에는 정말 책과 글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그 기억이 까마득해졌다. 일기라도 좋으니 내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도 한 번에 합격이 되었다. 2021년의 시작과 함께 한 새해 첫 굿 뉴스였다.

그 후 낙서처럼 퇴고도 없이 올렸던 몇 개의 짧고 거친 글을 브런치 북으로 묶었다. 묶은 뒤에는 다시 개별 글로 되돌릴 수 없다기에 삭제하고 다시 쓰려 했는데, 어느날 조회수가 이만치 올랐다는 알람이 떴다. 놀라서 들어가 봤더니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 있었다. 글에 공감하는 분들도 여럿 만났다. 댓글이 달리고 나니 마음대로 삭제하기는 영 그래서, 부끄럽지만 방치하듯 그대로 놔뒀다.


뒤돌아보면 누군가 내 행동이나 글에 공감하는 일은 오히려 내가 힘을 빼고 그저 하던 것을 내보였던 순간에 나타나곤 했다. 누군가 내게 감응하는 지점은 때로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저 나는 내 일을 하면 될 것 같았다.




#에세이 공동 출간


어쨌든 내 이름이 들어간 공식적인 첫 번째 책인데 이제야 브런치에 언급하게 되었다.


2021년 1월에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과 봄 내내 매주 하나의 공통 주제로 글을 쓰는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그중에서 고른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냈다.


출간기념회는 커녕 얼굴 한 번 못 보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했던 다분히 코로나 시기 다운 시도였고,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고릿적에 출간 제의를 받고도 흘려보낸 후에, 직장 생활을 하며 잊은 줄 알았는데 내심 한구석에는 찝찝함과 아쉬움 한 조각이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찌질한 감정을 털어내고 결과물이 뭐가 됐든 간에 내보이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때의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새삼 다시 깨달은 점:  

-게으른 완벽주의에 억지로 마침표를 찍게 해주는 데 역시 데드라인만큼 좋은 것은 없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

-없던 영감도 마감 앞에서는 나온다.  


기회가 되면 지인들과 또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




# 첫 단독 에세이 출간 & 1인 출판사


그 이후 여름이 되고 얄궂은 알고리즘이 외대에서 진행하는 '독립출판 프로젝트' 지원 광고를 내게 보여줬다. 원래 원고가 준비된 이들을 위한 공고였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해 고민이 앞섰다.

‘몇 개 안되는 브런치 글을 정리해볼까, 새로운 주제로 글을 써볼까?’

빨리 마음의 결정을 하고 글을 써야했는데, 그럴싸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이 살고 있는 고즈넉한 한옥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오랜만에 방문한 북촌의 예스러운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서,  문득 '서울에 관해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제가 정해지고 그날부터 제목과 목차, 초안을 써내려갔다.


정신없이 낸 샘플 글과 서류가 운좋게 통과된 후, 지하철에서 최종 확인 격인 전화를 받아 긴장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담당자분이 글과 컨셉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운을 떼주셔서 긴장이 사르르 녹았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서울시 캠퍼스타운 출판사 창업 및 독립출판 지원을 받을 최종 7인에 합격!


하지만 기쁨은 잠시, 현실로 돌아오니 사실 이미 다른 2개의 프로젝트에 한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기에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다른 걸 더 하게 될 줄은 몰랐고, 사업자를 내야 할 줄은 더더욱 몰랐었던 몇 주 전의 나를 탓할 뿐.


그래서 애초에 욕심은 다 걷어내고 남은 2달여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했다. 책을 낼 수 있는 만큼 글 쓰고 인디자인 배워보기로.


물론 구청과 세무서에 가서 신고하고, 디자이너 구해서 표지 디자인 정하고, 종이 정하고, 가제본해 보고, 인쇄소 정하고, ISBN 받고, 감리와 세금 처리하느라 인쇄소 사장님과 매일 통화하고, 책 소개 쓰고... 이런 세부적이고 부가적인 절차는 내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과정이나 책 소개는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하고,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 글로 대신해본다.


새로운 도시와 공간을 여행하는 에디터였던 저자가 일상적인 공간을 재발견하고 기억의 파편을 모아 써 내려간 ‘서울 기억 여행기’입니다. 태어났던 동네가 재개발되는 풍경부터 직장 생활, 아련한 연애의 추억이 담긴 서울 곳곳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습니다. 함께 여행하듯 저자의 기억을 따라 찬찬히 읽다 보면, 동시대의 공통적인 기억을 떠올리거나 자신의 추억을 풀어내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독자도 자신만의 소중한 공간과 순간을 떠올리길 바라며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기억을 담았지만, 당신이 사는 곳이 서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 도시의 역사가 아닌 소소하지만 특별한 당신의 이야기로 그 공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채우길 바랍니다.



실상 내 책은 가벼운 에세이지만,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내 의도를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굵직한 사건과 담론으로 가득한 사회의 주도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자신의 기억을 통해 발굴된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고 잊힌 것들을 조명해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것이 모여 동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 도시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꼭 그 지역에 가보지 않았던 분들도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했다고 공감하면서, 자신도 써보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신기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이렇게 2021년 쾌청한 가을을 삭제해버린 나의 첫 독립출판.

시간도 없었고 여러 이유로 선뜻 도움 요청도 못 했는데, 오히려 도움 줄 것 없냐며 챙겨주신 분들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쉬움보다는 앞을 바라보면서 2022년에는 홍보도 좀 해보고, 2쇄를 찍게 된다면 아쉬웠던 분량과 사진을 넣어볼 수 있기를. 독립출판을 조금은 제대로 배워보고, 다른 분들과 적극적으로 일을 작당해보고 싶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어를 못해서 읽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영어 버전으로도 만들어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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