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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18. 2021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 엄마

우리 집 원더우먼에게 바칩니다.

내 삶에 특별한 사람을 묻는다면, 나를 짧게 스쳐가거나 혹은 깊게 각인된 많은 인연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맺히는 그런 사람은 엄마가 유일한 듯하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도 나의 대답은 똑같다. 우리 엄마.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살아서 애틋할 것도 없을 텐데, 엄마를 떠올리면 사랑, 미안함, 존경, 감사함, 서운함, 안타까움 같은 온갖 감정이 뒤섞여 올라온다. 대한민국 장녀와 엄마 사이 특유의 애증까지 섞여 더 복잡한 그런 감정.


부모가 되면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데, 나는 엄마 기준에 어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인 결혼도 안 했으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겨우 일부분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일찍 어른이 되어 참 많이 힘들었겠다 짐작을 해볼 뿐이다. 


임용시험을 합격한 후 발령을 기다리는 그 몇 개월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다른 사무일을 했을 정도로 엄마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도 결혼 후 맞은 첫 명절에 성이 다른 낯선 '새 가족'이 거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엌에서 과일을 깎으며 어색함과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던 것을 얘기하시고는 한다. 뭐, 워낙 똑 부러지고 긍정적인 엄마 성격 덕분에 그 서러운 적응의 시기는 길지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엄마는 시부모님까지 모시면서 육아 휴직 한 번 없이 아이 둘을 키워내, 집안에서도 그야말로 원더우먼으로 생각하는 맏며느리가 되었다. 


몇 년 전 평생 있었던 교단에서 내려온 엄마는, '이제는 같이 사진이나 찍으며 놀러 다니려나'하던 아빠의 기대를 무너트리고 또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이제는 가르치는 일이 지겨울 만도 한데 교실 대신 자연에서 나무와 꽃에 대해 가르치고 이야기하는 일을 하신다. 평생 누구 하나 미워하는 일 없이 사시는 엄마에게 어쩌면 저렇게도 맞는 일을 찾으셨을까. 생업이 아닌데도 여전히 누구보다 열심히 임하며 가끔은 그 지식을 나누는 봉사활동까지 하는 모습에, 아빠는 '사서 고생'이라며 그 서운함을 애써 감추시곤 한다. 엄마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자식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가끔은 비교대상으로 느껴져 부담스럽고, 그런 잣대를 들이대 서운해할 때도 있지만 그런 자식들의 못남과 어리광까지도 품어주는 엄마의 그릇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몇 년 전 가족이 함께 떠난 유럽 여행은 평생 책임감과 함께 사셨던 엄마에게 내가 제안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지 싶다. 2주나 되는 휴가를 빼느라 미리 야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틈틈이 여행 계획을 짜야했지만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특히 학기 중에는 수업 때문에 여행을 못 가고, 방학 때는 가정을 돌보느라 자유롭게 여행 한 번 못 갔던 엄마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비행기 좌석 모니터에 뜨는 지도를 보며 설렘에 잠 못 이루시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얼마나 세계 지리와 세계사를 좋아했었는지 새삼 생각이 났다. 딸은 이미 몇 번 다녀온 유럽인데, 엄마는 이제야 책이 아닌 실제로 본다는 생각에 찡하고 미안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이제는 가족이나 일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녀요, 우리.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 엄마. 지금처럼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면서, 이제는 우리보다는 엄마를 더 챙기면서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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