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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18. 2021

우울함을 물리쳐준 나의 구원자

음식에 대한 사적이며 심층적인 고찰

스마트폰 사진을 저장해놓는 구글 포토가  작년 이 맘 때라면서 내가 만들었던 음식 사진을 보여줬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사진 알림에 나의 기억도 2020년의 그날로 점프했다. 


'내가 해왔던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 몇 년을 일했는데 왜 하나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지' 같은 직장인의 사춘기 같은 감정에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져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던 날 중 하나였다. 언제나 안 좋은 일은 같이 온다고 일과 연애, 크게는 인간관계에 실망하고 그 회의감은 겨우 기어 올라가려는 내 기분을 한 번씩 바닥까지 끌어내리곤 했다. 그러다 살짝 햇살이 따스해진 3월이 오자, 무기력한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댔다. 지금 생각하면 내 몸이 이대로는 안된다고 신호를 보냈던 것 같다. 문득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봤던 계란 토스트 만들기 영상이 떠올라 내 방에서 나와 평소 친하지 않던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고 어설프게 요리를 시작했다. 신선하고 컬러풀한 채소, 도마와 칼이 만나 내는 경쾌한 소리, 프라이팬 위 지글지글 소리와 기분 좋은 냄새가 잠들어 있던 다양한 감각을 깨우면서 조금씩 내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만들어낸 토스트를 접시에 담아내고 사진을 찍었다. 토스트를 앙 크게 물어 먹으니 입이 즐거워졌고, 곧 든든한 포만감도 찾아왔다.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그것을 만들기 전보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나를 발견했다.


그 뭔지 모를 기분 좋음에 끌려 그날부터 정기적으로 마트에서 식재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뭘 만들지 고민하면서 식재료를 고르고, 배달된 한아름 꾸러미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때로는 근처 시장에 나가 식재료를 고르고, 처음으로 제철 재료와 채소 가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안에 바질과 민트 화분을 들여놓고 요리의 마지막에 잎을 똑 따 올리는 재미도 추가되었다. 단언컨대 요리는 무기력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였다. 요리와 맛있는 음식이 내게 주는 다양한 즐거움과 하필 그 순간 나를 매혹시켰던 이유를 하나씩 끄적여봤다. 


하나. 나 자신을 존중하는 정성스러운 행위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자르고 다지고 끓이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요리. 나의 업이 아닌 이상, 먹는 이를 위한 애정과 존중이 있어야 가능한 이 수고의 결실을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내면, 내가 만들었다는 것도 잊고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게 된다. 사회에 치어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에도 음식은 '너는 이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는 따뜻한 다독임을 건네준다.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NS에 올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깔끔하게 식탁 매트 위에 올려 먹곤 했다. 내가 나를 먼저 대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하겠어?

 

하나. 미식, 원초적인 즐거움

친구들과 다양한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 내게는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대도시에 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태국, 모로코, 그리스, 인도,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퀴진을 즐겼는데,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친구와의 외식은 커녕 혼자 가기도 조심스럽게 되었다. 먹는 것에 진지한 나는 그 상황이 생각보다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조금씩 요리에 재미가 붙자 어학연수 시절에도 안 하던 '만들어서라도 먹자'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의 요리 실력은 초보라 감히 '미식'이라는 단어를 꺼내긴 힘들지만, 바질 파스타, 라따뚜이, 프리타타, 쌀국수, 팟타이 등 하나씩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하나.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이해 

음식을 워낙 좋아해 평소에는 크게 식사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몇 년 전 바디 프로필을 찍고 바디빌딩 대회를 나가면서 식단이라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게 될 기회가 생겼다. 음식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밀접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긴 시간을 할애하기는 힘들었기에 내게 허락된 식재료와 양만 겨우 맞춰 먹을 뿐이었다. 그러다 요리를 하면서 같은 재료로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고, 어디에서 온 식재료가 어떤 조리 과정을 통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지한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운동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몸을 만들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이라면, 요리는 그 근간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식재료를 내가 직접 다루다 보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그 뒤의 윤리적인 문제까지 시선이 확장되기도 한다. 


하나. 창조의 기쁨

집안일 중에 요리만큼 창조적인 일이 또 있을까? 각각 존재하던 재료들이 내 손에서 하나의 요리로 탄생하는 것을 보는 기쁨은 바로 창작자의 기쁨이다. 메뉴를 선정하는 것부터 어느 순간에 무엇을 넣을지 과정마다 오롯이 내가 선택할 수 있고, 같은 사람이 만드는 같은 메뉴라도 매번 결과물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요리는 예술품에 비견되나 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먹으며 행복함까지 나눌 수 있는 요리.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생산자의 욕구가 요리로 표출되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글을 포함해 생산적인 행위가 멈춰있던 시기에, 보이지 않지만 생산하고 싶은 에너지는 여전히 그 질량을 보존하고 있다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주방에서 발현되었을 거라는.


그러니 한 끼를 먹어도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고심하고, 음식 하나에도 윤리와 철학을 논하고, 식재료 하나에도 깐깐한 사람들 보더라도 유난이라는 비난 대신 조금은 너그러워지자. 식욕 자체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지만, 생존과 직결되는 그 가치에 더해 음식과 그것을 만드는 행위는 그저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상당히 고차원적인 무엇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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