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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Feb 03. 2019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에 담긴 양자역학

블랙미러의 광팬인 내가 밴더스내치의 모든 결말을 플레이 해 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밴더스내치' 는 인터렉티브 방식과 영상을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인터렉티브 콘텐츠> 란 사용자가 콘텐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사용자와 콘텐츠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사실 이런 콘텐츠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며, 최초의 인터렉티브 영화는 무려 1967년도에 공개된 <Kinoautomat> 일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인터렉티브 콘텐츠라는 매력적인 주제에 대해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포스트들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아직 인터렉티브 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면 다른 포스트를 먼저 읽을 것을 권장한다.


글 읽으면서 이 음악 들어주세요..왜냐하면 더 재밌어지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을 베이스로 만든 콘텐츠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실험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판자에 2개의 틈을 만들고 미시 입자인 '전자'를 하나씩 여러 번 반복해서 판자를 향해 발사한다. 판자 뒤에는 또 다른 판자가 있는데, 틈을 빠져나간 전자는 뒤에 있는 판자에 부딪쳐 충돌 흔적을 남긴다.

이렇게

먼저 2개의 틈 가운데에 하나만 열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하나씩 여러 번 반복해서 발사한다. 전자는 열어놓은 틈을 빠져나가 뒤에 있는 판자에 충돌 흔적을 남기는데, 여러 개의 전자가 하나의 틈으로 빠져나간 것이기 때문에 뒤에 있는 판자에서는 한 개의 줄무늬만 생기게 된다. 그럼 다음 번에는 틈을 두개 다 열어놓고 실험을 해 본다. 상식적으로 생각 해 본다면 하나의 틈만 열고 실험을 했던 아까처럼 두 개의 틈을 열어놓으면 두 개의 줄무늬가 생겨야 한다. 하지만 뒤에 판자에는 2개의 줄무늬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줄무늬가 생긴다.. 만일 전자가 뉴턴 역학 세계의 야구공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결과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 이 실험은 <이중슬릿 실험> 이라는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실험이다.


이 실험으로 우리는 전자 입자의 성질(한 개의 줄무늬)와 파동의 성질(여러 개의 줄무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밝혀냈다. 이 실험 결과는 물리학계에 엄청난 파란을 만들어 내는데, 파동은 본래 많은 입자가 모여서 만드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입자가 이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건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중 슬릿 실험으로 멘붕이 온 과학자들은 판자 옆에 관측기구를 놓고 전자가 둘 중 어느 쪽 틈을 통해 빠져나가는 지를 관측하기로 한다. 그런데 결과는 과학자들을 더 멘붕시키고 만다. 아까처럼 여러 개의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줄무늬만 판자에 생겨난 것이다.. 전자가 스스로 관측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파동의 성질을 숨기고 입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흑흑 무서워요.. 이걸 파동이 수축한다고 표현한다.)


관측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물체에 빛이 닿아 반사된 빛을 우리의 눈으로 포착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물체를 보기 위해서는 물체에 빛을 닿게 해야한 만다. 빛에는 물체를 미는 힘이 있는데 그 힘은 아주, 아주아주 작기 때문에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런데 '전자' 같은 미시 입자들에게는 어떨까? 미시 입자는 너무나 작기 때문에 관측을 위해 빛을 닿게 하면 입자는 튕겨나간다. 결국 관측을 하는 행위가 미시 입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1927년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이론을 하나 발표하는데 "미시 입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동시에 정확히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반드시 남는다" 가 그 내용이다. 우리는 입자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영역은 예측할 수 있지만 그 범위 안에서 실제로 입자가 어디에서 발견될지는 알 수 없고, 뿐만 아니라 관측하기 전 단계에서는 입자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떻게 관측을 잘 하더라도 미시 입자의 위치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반드시 따라다니기 마련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미시 세계에서는 미래가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밖에 없다.


1. 파동중첩상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기본적으로 양자역학을 베이스로 깔고 진행된다. 양자역학에서 전자같은 미시 입자는 다양한 가능 상태의 파동 중첩 상황에서 측정을 통해 하나의 상태로 파동붕괴가 일어난다고 설명하는데, 이때 숨겨진 변수나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파동중첩상태> 라는 말이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여러분이 밴더스내치를 시청하려고 컴퓨터 혹은 노트북을 켰을 때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에는 다양한 가능 상태가 하나의 현실에 중첩되어 있다. 밴더스내치의 스토리는 갑자기 영상을 보지 않기로 결정한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아예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진행 될 때에는 시청자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결말을 맺을 수 있다. 또, 시청자가 하나의 결말에 만족하느냐 아니면 나처럼 모든 결말을 강박적으로 플레이 했느냐.. 등등의 선택에 따라 그 안에 엄청나게 많은 가능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2. 파동붕괴

시청자들이 본격적으로 밴더스니치를 시청하면서 부터 스토리가 진행되기 시작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점점 굳어지게 된다. 시청자가 영상을 측정할 때, 하나의 상태로 파동붕괴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스토리가 결정되는 것은 변수나 원리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선택이라는 무작위의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또, 시청자가 선택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우연에 의해 무작의로 선택지가 골라지며 하나의 스토리로 굳어진다.


3. 당신이 밴더스니치를 시청한다는 것의 의미

양자역학에 따르면 어쨌던 이 우주는 자체 충족적이지 못하다. 결국 이 우주의 매 순간을 관측하고 결정하는 이 우주를 초월한 어떤 세계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관측되어야 비로소 시작되고, 하나의 상태로 굳어지기 시작하므로! 그런데 여기서 설명되는 우주를 초월한 어떤 존재는 바로 이 밴더스니치를 시청하는 당사자, 바로 당신이 되어버린다.


4. 평행우주론

그런데 초월자의 관측에 의한 파동붕괴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세력이 있자 파동붕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된 다른 해석이 있었다. 바로 평행우주론(또는 다중우주론) 이다. 양자가 파동 중첩 상태에 있다가 측정하는 순간 모든 가능한 상태로 우주가 갈라진다는 해석인데, 내 기준에서는 이게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그럴싸한 이론이다.. 이 평행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천재게임개발자가 주인공과 같이 마약을 할때 한다.

그런데 이 평행우주가 계속해서 모든 가능한 상태로 갈라진다면, 상황에 해당되는 높은 확률을 보장하기 위해서 거의 무한 개의 동일한 상태의 우주가 중복되어 복제돼야 한다. 지금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있는 정확히 동일한 상태의 우주가 무한개가 있다는 가정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5.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환상

만약 당신이 우주를 초월한 당사자이고, 관측을 통해 다양한 우주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스테판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모든 것을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침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스테판과 우리의 차이점은 오직 우리는 그것을 절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없다는 점이다. 스테판은 초월자가 자신을 조종하고 본인은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양자역학에서 인과론은 무너졌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으로 남게 된다. 당신은 밴너스내치가 가상의 스토리라고 생각하면서 플레이 하고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 가상의 콘텐츠도 평행우주에 속하는 하나의 현실이라면? 당신은 하나의 현실을 관측하고 선택함으로써 조종하고 플레이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당신의 플레이 때문에 죽었고, 아버지를 죽였고, 토막살인을 했고,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초월자가 '선' 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있는 완전체라고 생각하고, 초월자에게 질문한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끔찍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건가요' 이 질문을 당신에게로 돌려보자. 왜 그랬나? 당신은 왜 스테판이 아버지를 죽이게끔 선택하고, 토막살인을 하도록 강요했나? 그 선택을 하면 스테판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 콘텐츠는 자꾸 나에게 다른 선택을 할 것을 강요했어요! 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스토리가 당신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시청을 중단하고 노트북을 덮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종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신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대신 ‘신은 당신을 플레이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십니다’ 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른다.


스테판과 상담사와의 대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스테판이 초월자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상담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상담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만약에 이게 누군가의 게임으로 플레이되고 있는 거라면 왜 좀 더 재미있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당신을 봐요. 당신은 너무 평범한 곳에 앉아서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어요. 당신이 시청자라고 한다면 좀 더 자극적인걸 원하지 않았을까요? 예들들어, 액션 같은?' 그 후 나오는 선택지에서 '맞아요' 라는 선택지를 고르면 갑자기 이 드라마는 뜬금없이 액션이 되어버린다. 스테판이 상담사와 수퍼히어로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다. 어이없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정확히 이 콘텐츠의 핵심이다. 액션을 선택한 평행우주가 생긴 것이다.


6. 과연 이 콘텐츠의 주인공은 스테판이었을까?

당신은 스테판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의지대로 블랙미러를 보고 자유의지대로 선택지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군가 당신을 플레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플레이를 하는 거냐고? 그거야 알 수 없다. 이 판을 짜놓은 감독은 당신에게 무한한 자유의지가 있고, 선택에 따라 결말을 볼 수 있으리라 믿게 만들었지만 사실 몇개의 선택지만을 협소하게 갖추어놓고 당신이 그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고 조종했다. 당신의 '초월자' 는 바로 밴더스니치의 감독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생각 해 보자. 보통 블랙미러의 시점은 근미래로, 가까운 미래의 SF 가 주제이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의 배경은 80년대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이 에피소드의 배경은 바로 당신이 밴더스내치를 보고 있는 바로 그 시점이라는 뜻이다. 즉 당신이 밴더스내치의 주인공이고, 당신이 스토리였던 것이다. 밴더스내치에서는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관측당해야 플레이 될 수 있는 파동일 뿐이라는 암시를 작게나마 준다. 이 감독의 초월자는 과연 누구일까? 누가 밴더스내치라는 콘텐츠를 만들게 한 것인가? 우리를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도 또 다른 플레이어에게 플레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주는 말 그대로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하니까. 물론 어떤 시점에는 정말 순수한 원세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 (원본)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가 원본일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나의 자유의지라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게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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