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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Apr 04. 2020

몰락하는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years and years

코로나로 인해 자택근무가 길어지는 상황이 오자 오래 전 사놓고 묵혀두었던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책 '총,균,쇠' 에서 판데믹 수준의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 패권 경쟁과 경쟁 이후의 세계 이념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유럽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의 총, 칼에 의해 목숨을 잃은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유럽인들에게서 건너온 병원균에 의해 목숨을 잃은 원주민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스페인의 아스텍 제국 침략은 유행병으로 성공했으며,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왔던 진정한 주인공은 천연두였다.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이 역사에 비추어 봤을때, 현재 코로나의 국가별 확진자수는 단순히 전염 추이 외에 어떤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가 세계 패권을 쥐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선진국이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유럽권 국가들과 미국이 코로나 확진자수를 앞다투어 갱신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병을 옮겼지만 그 자신은 전혀 피해입지 않았던 유럽인들이, 마치 자연의 보복이라도 당하는 것 마냥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냥 멀리 떨어진 입장에서 우스워할 수는 없다. 세계는 이전보다 조금 더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만큼 세계화되어있다. 이란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문제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우리나라의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으며, 일본에서 일어난 불행에 온 세계가 휘청거릴 수 있지 않은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사태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 우리세대는 이 세대가 겪는 위기 중 최대한의 위기를 겪고 있고, 정부와 개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의해 세계정치, 경제, 문화가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했다.


원래라면 오랜기간동안의 실험과 가설입증을 통해 변화될 예정이었던 것들이, 긴급상황이라는 이름 하에 한 국가가 전체가 사회적 실험 대상이 될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빠르게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 세계의 질서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다.


이 시점에서 아주 시의적절하게 나와준 영국 드라마가 있다. 이어스 앤 이어스 <years and year>는 근미래에 세계가 현실적으로 몰락해가는 모습을 너무나 생동감있게 그리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되는 타임라인의 이 드라마 속에서는 한 해 한 해가 지나며 현실에서 생길법 한 일들이 일들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으로 일어난 핵 폭발 (트럼프가 쏨ㅋㅋㅋ), 트럼프보다 더 멍청한 총리를 뽑은 영국,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 갈수록 멍청해지는 사람들, 지구온난화로 멸종된 바나나, 전기부족, 기존 세대가 이해할 수 없을 새로운 가치의 등장...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드라마는 결코 오버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는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영국 맨체스터의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으며, 그들은 세계가 눈 앞에서 몰락하고 있는데도 정확히 체감하지 못한다. 사회, 경제, 정치, 환경은 급격하게 변하고 전문가들은 경고하지만 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늘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몰락은 사람이 적응하고 살 수 있을만큼 느린 속도로 진행되다가 그들이 체감할 정도에 이르르면 그때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붕괴한다. 그때에는 그들의 평화로웠던 가정도, 일상도, 가치나 이념도 무사할 수 없다. 그리고는 모두가 생각한다. '어떻게 하다 이지경이 됐지?'



드라마에서는 이 세계적 몰락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맨체스터 저택에 살고있는 할머니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 한다. '이건 모두 너희 책임이다. 자동계산대가 생겨 캐셔들이 일자리를 잃었을때 너희들은 뭘 했지? 그냥 불평이나 하면서 가만히 두었지. 우리는 나서지 않았어! 이 중 누가 피켓을 들고 맞서 싸우려고 했지? 사실, 너희들은 자동계산대를 좋아했어. 그 결과로 캐셔들은 사라졌다. 정치인이 광대놀음을 하며 날뛰었을때 너희들은 뭘 했지? 너희들은 불평만 할 뿐 아무것도 안했다. 이건 너희들의 책임이야, 현재는 너희들이 만든 결과야.'



사회운동가인 이디스도 말한다. '우리 서구사회는 핵이 터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다음은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공포스러워요. 공포스럽다고요.'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오래 전부터 경고했어요. 30년 전, 아직 희망이 있다. 20년 전, 지금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10년 전,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런데 뭐, 누가 그런걸 신경써요? 이제 끝나버렸죠.'



years&years의 총리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난민들을 수용소로 몰아넣고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들을 수용소에 들여 ^자연선택^ 이라는 미명 하에 학살을 자행한다. 현실세계로 돌아와보자. 현재 영국과 스웨덴은 ^집단면역^ 을 통한 코로나 대응을 주장하며 노약자들의 죽음을 자연선택에 의한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의 충격적인 대처에 이제 유럽은 세계 패권을 가져가기에는 너무 후지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건 나뿐일까?



지구온난화, 소수자를 향한 혐오, 핵폭발, 제노사이드 정책, 전염병..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집구석에 앉아 불평만 늘어놓으며 먹고 마신다. 그러고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것들의 책임은 개개인의 선택에 있다. 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으려는 선택,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선택, 가짜뉴스에 속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찾아 올바른 투표를 하는 선택, 혐오를 멈추고 연대하려는 선택. 그러나 현재 그 선택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 이슈로 각 정부와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지의 첫번째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이념이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를 선한것, 전체주의를 나쁜것으로 인식하는 까닭은 '선진국' 이라고 알려진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수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에서 선택한 전체주의는 실패작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코로나와 같은 판데믹 수준의 전염병에 적합하지 않은 이념이라면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미국이 코로나로 무너지고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중국이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면 이후의 세계는 전체주의를 정당화 하며 빠르게 이념을 바꿔나갈 수 밖에 없다. 이전 세계에서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하나의 이념은 이후 세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두번째 선택은 폐쇄적 민족주의와 글로벌 연대이다. 코로나가 창궐하자마자 국경을 걸어잠그고, 중국인, 동양인을 혐오하며,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려 지원물품을 몰래 빼돌리는 태도는 폐쇄적 민족주의의 흐름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전염병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겠지만, 이미 세계화된 시점에서 이러한 폐쇄적 민족주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엄청난 손해를 끼칠 것이다. 한 나라가 무너진다면 세계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며, 장기적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글로벌 연대는 세계는 하나, 인류는 하나라는 이념으로 서로를 돕는 선택이다. 방역물품이 많은 나라는 방역물품이 적은 나라에 물자를 지원하고, 의료진이 많은 나라는 의료진이 적은 나라를 지원한다. 성공적으로 전염병을 통제한 나라는 전 세계에 성공적인 모델을 공유하고, 다른 나라또한 성공적으로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도록 발벗고 돕는다.


years&years 속의 사회운동가 캐릭터, 이디스는 마지막에 자신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밝힌다. 총리의 끔찍한 정체를 폭로하고, 소수자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던 행동들은 바로 사랑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신은 팩트나 정보에 국한된 존재가 아닌, 사랑으로 이뤄진 존재라고. 진부하지만 결국 사랑이 모든것을 통합하고 사랑이 모든것을 나아지게 만든다. 혐오, 배척, 무지, 분열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민주주의-시민적 역량강회, 글로벌 연대라는 모델로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도 있다. 국경을 닫아야 한다, 베트남 같은 괘씸한 국가에는 키트를 지원해줘서는 안된다, 중국인 혐오는 정당하다, 외국인 입국을 금지해야한다.. 두려움은 혐오와 배척을 자아내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나조차도 두려움에서 비롯된 혐오의 감정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만든 이 모델이 나는 퍽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세계가 분열과 배척, 혐오보다는 통합과 연대, 지지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써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선을 다해 지키며, 혐오의 감정이 들 때마다 고양이 사진을 보며 사랑을 가지려고 하고, 플라스틱을 소비하지 않고,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해 열심히 조사해야겠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책임이다. 불평을 멈추고 행동으로 운명을 바꾸는 선택이, 바로 몰락하는 세계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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