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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Jul 08. 2019

메모- 생각 정리, 좋았던 글들, 글감.

- 가벼운 글과 무거운 글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나는 마음에서 불어오는 바람같은 글을 좋아했다.


- 바람 한점이 시름에 잠긴 깊은 한숨같이 느껴지는 선선한 저녁이었다.

- 희소한 무형의 자산을 만들어내야한다. 결국 나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하면 의미가 없는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창조적인 일은 밖에 있는게 아니라 나의 내면에 있는것.


- 말하자면 나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감각을 강화시키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살아있고 싶도록 깨끗하게 옷을 입고, 살아 있고 싶도록 정갈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살아 있고 싶도록 집 안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했다. 살아 있고 싶도록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었고, 살아 있고 싶도록 나를 먼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살아 있고 싶도록 맛있는 음식이 주는 기쁨을 즐기고 싶었다. 살아 있고 싶도록 나는 내가 벌어들이는 돈을 썼다. 내가 가진 적은 것들이 나를 비참하게 할까봐 대범한 마음과 대범한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무엇보다 몸이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는 나를 훈련시켰다. -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 우리는 몇 개의 살구를 더 먹고 몇 대의 담배를 더 피우며 몇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다. 창밖으로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유진목 선생님이 내 집을 떠난 저녁에 나는 서재를 곧바로 치우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녀간 흔적을 다음 날 아침까지 두고 싶었다. 살구 씨랑 과도랑 찬물이 담겨있던 컵이랑 재떨이랑 나무 그릇, 그리고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책상 위에 남아있었다. 사랑과 용기도 남았다. 사랑과 용기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자신의 쓸쓸한 곳을 그것들로 채운 사람이 조금 전에 다녀갔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는 일에 대해 나는 자꾸 생각했다.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선생님이 소심한 전지전능이라고도 말했던 그것.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남의 좋음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혼자서도 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는 것, 그러다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부르는 것, 노브라로 무대에 서는 것. 미래의 내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는 것. 닮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밥을 먹는 것. 사랑 속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낮과 밤을 보내는 것. 기쁨과 슬픔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셔터를 내리는 것. 떠나는 것. 불행한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것. 때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며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 울다가 웃는 것. 이런 성취들을 나는 작은 전지전능이라고 부르고 싶다. 유진목 선생님의 힘을 빌려 나도 나를 위한 신이 되어간다.


- 열등감을 심하게 지닌 적이 한 때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열등감을 계속 가진 채로는 내가 양지의 삶을 살 수 없겠더라고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정신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 수 없겠다는 느낌이요. 그래서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남의 좋은 것을 저도 좋아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걸 좋아하기로 마음을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되게 좋더라고요. 제 옆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더라고요.


- 잘 마른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놓듯이, 어떤 연애는 한 때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옛날에 끼워졌다가 어느 날 무심코 예전을 뒤적이던 우리에게 발견된다. 족히 둔중할 우리의 인생에서 한때는 어떤 사람이 은행잎 무게만큼의 가벼움을 차지했었노라고 깡마른 기억을 뱉어낸다. 사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한 후에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과 함께 출현하면서도 언제나 사랑보다는 한참이나 늦게 사라지는 아픔도 마찬가지다.  오이디푸스는 아무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만큼 명민해씨만, 정작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사정에 몰랐었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황홀의 지평을 넓힐 때에는 그 세계에 황폐한 자리도 당연히 포함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잊는다. 우리는 연애에 대해, 사람에 대해, 고통의 개별성과 살면서 불가피한 상실에 대해 정말로 말할 수 있게 된다.


- 우리는 사람들이 행하는 세렌디피티라는 개념을 갖고 있어요. 뜻밖의 행운인거죠. 가령 레스토랑에 가서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우연히 마주치는 것과 같은거죠. 굉장한 경험이죠. 그 상황이 그렇게 마법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체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사실 그런 상황들이 실제로는 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우리가 그 중의 99%를 놓치고 있는 거겠죠.


-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난 네가 부럽다. 내 위치에 있는 부모 대부분은 이런 일이 없길 바라겠지,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있니?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한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지. 그걸 없애지 말거라.


- 나를 치고가는 고통에 유연해질때, 어지간한 일에는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을 때, 내 힘든 것을 숨기고 남을 안아줄 수 있을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 결국은 용서하라는 겁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하라. 결국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용서를 끌어내려는 일련의 과정들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삶이 고달프고 힘겨운 것도 이해가 됩니다. 미워하고 복수하고 갚아줄 수록 업보는 계속해서 쌓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모든것을 해소하죠.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해 보이지요.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지죠. 억지로 이 사람을 용서 해 보려 해 보았자 그럴 마음이 들리는 만무합니다. 이 상황안에, 개인의 자아에 고립되어서 사건을 바라본다면 그럴 수 밖에요.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또 다르고,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또 다릅니다. 용서는 훈련을 통해 수월해지는 것이기도 해요.


- 부탄을 여행하며 자비와 인내에 대해 배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예민하고 이기적인 성미를 가진 사내로써,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과 시비가 붙기 마련이었죠. 그는 옳은 말 하기를 좋아하고 도덕을 따졌으나 그의 옳음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그를 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니 그도 사람들을 적으로 대했죠. 아!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미워하는 사람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의심이 깃들고 증오의 마음이 싹트지요. 그야말로 고통 속에 사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그도 마음씨 좋고 하나같이 온화한 부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지요.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미소짓는 잔잔한 그들의 표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점점 그의 가슴속에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개똥을 밞아도 욕하거나 고함치지 않았고, 목이 탈 것처럼 말라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을 양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세월도 언젠가 끝이 나는 법,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와야만 했던 그는 긴 시간의 비행에 지치고 지쳐 집으로 가는 새벽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새벽 버스의 운전기사는 아주 인상이 좋은. 성실하고 상냥해보이는 중년의 사내로, 남자의 무거운 짐을 순수 실어주고 살뜰히 목적지까지 물어보았습니다. 남자는 그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지요. 하지만 장시간 쭈그리고 있던 그의 무릎은 거의 경련을 일으켰고, 몸과 입 안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눈은 튀어나올 것 같고 머리는 지끈지끈거렸습니다. 비행기에서 먹은 음식에 체를 했는 지 속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의 거미줄처럼 예민한 귀에 어떤 소리가 날파리마냥 걸려들었습니다. "딱,딱, 짝" "딱,딱, 짝"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계속 반복되는 그 날카롭고도 둔한 소리는 껌을 씹는 소리같이 들렸습니다. 그는 거의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잠을 좀 자고 싶은데, 이 경박하고도 멍청한 소리는 대체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 남자의 피곤한 눈은 버스 안의 사람 한 명 한 명으로 꽂혔습니다. 그 와중에 껌을 씹는 소리는 더욱 더 커졌습니다. "짝,짝짝, 짭짝, 딱. 따악 딱." 남자의 표정은 혐오와 고통으로 한가득 찌그러졌습니다. 그는 버스 안에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관찰하고, 의심하고, 상상하고, 혐오했습니다. 저 빌어먹을 노인네가 내는 소리인가? 아니면 저 중년의 여자일지도 몰라. 어디서 배워먹은 천박한 짓거리람!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런 소리를 내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버스 안의 사람들을 아무리 주시해도 범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귀를 막은 남자는 마음속으로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며 욕설을 마구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봤던 것입니다. 선량하고 성실해 보이던 버스기사가 졸음을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껌을 씹는 모습을... 버스에서 내리고 나자 그가 부탄에서 가졌던 사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그맣게 내뱉었습니다. "이게 왠 헛지랄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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