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기분 좋게 따가운 애리조나에서
4월 말인데 기온이 40도까지 육박하고,
햇살은 내 몸을 파고들지만 땀은 잘 나지 않는,
이 곳은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다.
딱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민들레 홀씨 같던 나를 뿌리내리고 싶게 만든 이 곳 애리조나에 정착한 지도 벌써 1년 반 여가 되었다. 한국의 세 배는 더 큰 애리조나이기에 이 곳 전체가 겨울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살거나 다른 주에 사는 내 친구들은, 애리조나 어느 지역에 눈이 내렸다고 하면 거기도 눈이 오는 거냐, 거긴 늘 여름 아니냐 묻곤 한다 - ,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적어도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곳은 영하로 내려갈 일이 거의 없는데,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애리조나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지상 낙원 같았다.
2014년 말, 미국에 연고라고는 단짝 친구 한 명 정도뿐이고,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은 사정상 할 수 없었던 나는 한국 안에 있는 모든 곳들을 다 가 본 것도 아니면서 한국이 너무나 좁게만 느껴졌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다른 또래들처럼, 어쩌면 조금 더 고생스럽게 복수전공을 하며 졸업 전시와 취업에 휘둘리면서 크고 작은 폭풍우들을 겪어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한국은 너무 좁아' '여긴 너무 답답해'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누가 보면 어디 나가서 몇 년 살다 온 줄 알겠네. 하지만 경력이 있는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아이러니한 채용 공고가 내 머리카락 수보다 더 많던 그때에 그만한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에서 '해외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걸 추진한다는 반가운 뉴스가 들려왔고, 나는 무작정 교내 취업 지원 센터에 들어가 필요한 자료와 서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모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버리기엔 재미가 없으니 이 얘긴 찬찬히 하기로 하고.
2015년 늦여름에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 뉴저지의 어느 한인타운에서 3년 넘게 살다가, 2018년 12월에 이 곳에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거주하고자 넘어왔을 때, 달력의 마지막 장에 어울리는 차가운 칼바람과 눈보라 대신(뉴저지는 정말 눈이 많이도 왔었다) 선선한 가을바람 같은 공기가 나를 감싸 주었을 때, 그 꿈과 현실의 어느 경계선쯤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때의 그 기분은 세상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영어를 굳이 하지 않아도 편하게 한국말을 하며 살 수 있었던 뉴저지와는 아주 다르게 동양인 자체의 인구 비중이 훨씬 낮은 환경과, 완전히 새로 적응해야 하는 새 직장에서의 생활이 나를 아주 가슴 뛰게 만들다가도 겁먹게 했다. 정말 미국다운 미국에 온 기분이었달까.
이번 연초에 뉴저지에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만나게 된 친구가 드디어 큰 맘먹고 우리 집으로 한번 놀러 오게 됐는데, 한밤중에 PHX 공항에 도착해서는 언니, 저 선인장 크기가 실화냐며, 야자수 나무가 이렇게 많냐며 재잘 대는 모습을 보고는 왠지 애리조나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떠올라 반갑고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문득 떠올라 이렇게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럼 이제부터 해외에 딱히 연고가 없던 내가 무식하고 용감하게 미국 이민 생활을 하게 된 일련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자.
^ 2016년 애리조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선인장이 이렇게 클 수가 있냐며 보이는 선인장마다 옆에 서 서 사진을 찍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