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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Apr 24. 2020

어쩌면 해외 인턴십의 기회가

J1 비자를 받기 위한 예측 불가했던 나날들-1

 2014년 11월, 복수 전공인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시를 마치고 대학 막 학기에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마음도 어딘가 같이 눅눅하고 쓸쓸한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캠퍼스를 빠져나가던 나는 무심코 시선을 정리하다가 어느 한 현수막에 눈길이 머물렀다. '해외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

어, 해외 인턴이라.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무턱대고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라는 책을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디자인을 복수 전공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입시는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주 전공은 경영학과였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뭐 먹고살래' 하셨다는 뭐 그런 진부한 얘기. 한데 다행히도 다니던 학교에서는 미대 전공이 아닌 타과생도 디자인을 복수 전공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었고, 미대 교수님들의 의심과 눈초리를 한눈에 받으며 나는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을 당시 엄마께선 '디자이너는 무슨 디자이너며, 해외에 나가서 어떻게 살겠다는 거니, 아무 연줄도 없는데?'라고 여느 때처럼 무심한 소리를 하셨었다. 그런데 해외 인턴 지원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시행한다니.


그 길로 집으로 가 엄마한테 선전포고를 하듯이 말했다. "엄마, 나 해외 인턴하고 올래."

헛소리 마라며 핀잔을 줄 것만 같았던 엄마는 왜인지 "어떻게 진행되는 건데?" 하고 물어 오셨고,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모아 부모님과 상의를 했다. 다행히 뉴욕 시티와 가까운 뉴저지 쪽의 어떤 K-Pop 관련 회사에서 인터뷰를 보고 싶다고 했고, 인터뷰가 생각보다 잘 진행이 되면서 '클로이만 괜찮다면 인턴 기간이 끝나고 우린 정직원 쪽으로 전환할 생각도 하고 있는데, 미국에 이민 올 생각 있어요?'라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족은 떨어져 사는 거 아니야."라는 아빠의 말은 이미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 살면서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나에겐 귀를 간지럽히지도 않고 그저 스쳐갔고, 필요한 서류며 비자 준비를 부지런히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인턴을 하려면 J1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회사랑 내가 동의한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지원자가 일 하려고 하는 직무와 전공의 연결성이 어떤지, 집에 보유 자산은 얼마가 있어, 혹시라도 이 친구가 생활비가 모자라거나 하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 인턴은 연봉이 대체로 적은 데다, 서류상 적혀 있는 회사 외 다른 곳에서의 인턴이나 정규직, 심지어 알바도 불법이다 -, 영어 실력은 어떤지, 인턴을 하고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올 건지 (J1비자는 문화 교류 비자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민 목적으로 간다고 했다간 퇴짜 맞고 돌아올 확률이 200%다)... 같이 준비를 하면서 회사도 나도, 그리고 중간 다리 연결을 해 주었던 에이전시도 "클로이 씨는 영어도 어느 정도 되고, 직무도 전공과 잘 연결돼 있고. 인터뷰어만 잘 만나면 뭐 한 두 달이면 오겠네요."라고 했기에, 모든 것이 순풍을 타고 원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는 줄 알았다.


"미안한데, 우리는 너에게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어."


정부와 관련된, 그러니까 나를 심사하는 기관에서 나를 거절한다는 연락이 왔다. 직무와 전공이 연결이 잘 되는지 모르겠다고. 아니 디자인 전공자가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는데, 우리 한 시간이 넘게 웃으면서 면접했는데, 나를 거절한다고?

알고 보니 나를 인터뷰했던 그분이 아주 악명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단다. 인터뷰 전에 에이전시 측에서 나에게 슬쩍, 절대 그 한 사람만 아니면 돼요. 그 한 사람만 피하면 돼,라고 이름은 말해주지 않고 언급했던 사람이 있었다. 인터뷰 후에 얘기를 해 보니 그 볼드모트 같은 사람이 나를 인터뷰했던 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터뷰는 아주 화기애애했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도 내 인터뷰 후기를 듣고는 "에이, 그래도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에이전시로부터 이제 이 회사와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다른 회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에이전시에서 연결해 준 회사는 엘에이에 있는 어떤 패션 잡지사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다. 어눌한 한국 말과 유창한 영어를 섞어 가며 인터뷰를 했던 회사 사장님은 우리랑 일하면 아주 재밌을 거라며, 스튜디오의 구석구석도 모니터 너머로 보여주었다. 엘에이엔 내 단짝 친구가 살고 있기도 했고 날씨가 연중 내내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보수는 좀 더 줄었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회사와의 인터뷰도 생각대로 잘 진행되었고, 사장님은 나를 당장이라도 부르고 싶다며 둘 다 들뜬상태로 면접을 마쳤다.


"클로이 씨, 미안해요. 회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데."


이런 연락을 받은 건 그로부터 한 3일 뒤였던 것 같다. 더 자세히 알아보니, 회사는 그새 망해서 문을 닫고 사장은 연락 두절이라고.

이쯤 되니 벌써 계절이 바뀌고 나도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아, 나는 해외 인턴이든 뭐든 정말 한국밖에 나가 사는 건 팔자에 없나 보다.' 라며 마음을 접고 다시 축축한 마음으로 국내 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피어나려는 거리의 꽃몽우리들이 내 맘도 몰라주고 봄을 준비하는 거 같아 얄밉게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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