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아저씨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

by Chloe 슬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유학시절에도, 나를 많이 생각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알코올중독자 홈스테이 부부 이혼으로 오갈 곳 없어진 나를 가족으로 받아 주신 분들, 오랜 시간이 지나 내 결혼식에서 가방순이까지 해준 룸메이트 언니. 그리고 그레그 아저씨도 있다.


어릴 때부터 잠이 별로 없었던 나는 호스트 아저씨를 따라 6:45분 조찬모임을 나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그레그 아저씨는 땅 소유권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3년 가까이 매일 아침을 같이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특히 지금은 나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사소한 고등학생 이야기들을 항상 친구처럼 진지하게 들어주시던 기억이 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졸업식에 초대했는데, 그 당시 취미로 시작하셨던 나무 공예로 작은 보석함을 직접 만들어 선물로 들고 오셨었다. 대도시의 대학교로 떠났다가, 일을 하러 미국 반대편으로 갔다가, 그동안 세월이 십 년도 훨씬 넘게 흘러 아저씨는 은퇴하고 이사 가서 메이플 농장을 전업으로 하신다는 소식만 들었다.


한국에 아주 이사오기 전, 너무 먼 시골이라 쉽게 가지 못했던 그 동네를 호스트 부모님께 꼭 얼굴 보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다시 찾았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방문에 그레그 아저씨도 봬야겠다고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 반가워하시며 농장에 초대해 주셨다.

이른 아침부터 데리러 오셔서 처음으로 만난 아저씨네 가족과 다 함께 아주 미국 스런 아침밥을 먹고 메이플 나무 숲을 산책하고, 메이플 시럽을 어떻게 만드는지 기계도 경험해 보고, 아저씨가 입상했다는 나무 공예 가구도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다.

어느새 친해진 아주머니와 수다 떨며 걷고 있을 때, 그 시절 아저씨가 조찬 모임에 스윗한 어린애가 하나 있다고 얘기를 자주 해서 정말 궁금했는데 드디어 직접 만나고 알게 되어서 참 반갑다는 말씀을 하셨다. 가슴 한 구석이 뜨끔했다.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스윗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찔리는 건지, 나를 그렇게 아껴주던 사람이 있었음에도 힘든 시절로만 기억을 해서 부끄러운 건지, 아마 둘 다 인 것 같다.

바리바리 싸주신 농장 기념품을 받아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는 그때 졸업식에 초대해 줘서 참 기뻤다고, 외아들이 커서 떠나고 적적했을 때 활기를 찾아 준 내가 힘든 시간 속에서도 잘 해낸 걸 볼 수 있어 대견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을 이렇게 예쁘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도 다시 스윗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을 나이 불문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진심으로 대하시는 아저씨처럼.


자주 서울로를 걸어 다니는데, 거기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가 있다. 그 나무들을 지나칠 때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하는데- 아저씨 생각이 난다.

이전 04화"어디에" 보다는 "누구랑" 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