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정도 클래식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다가 너무 잘 맞아서 이건 평생 해야겠다 싶었다. 또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지 라는 생각에 덜컥 면접을 보고 창시자 조셉 필라테스의 2대 수제자가 운영하는 강사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근데 이건 내가 뭘 상상했던 그 이상의 영역이었다. 평소 직업도 사람보단 컴퓨터랑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니, 차마 입이 안 떨어져서 큐잉 리듬을 타는 데만 첫 몇 달이 걸렸다.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 600시간의 실습, 각각 세 번의 필기와 실기 시험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다른 종류의 필라테스 자격증을 갖고 현역 강사인 동기들 사이에서 내가 똑같은 수업을 해내야 된다는 게 버겁게 느껴졌고, 이런 걸 이제 와서 배우기엔 이미 나이가 늦은 것 같아 중간중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포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엔 나 자신한테 쪽팔리니까. 한 시간만 더 채우고 다시 생각해 보자, 다음 시험 한 개만 더 보고 떨어지면 그때 관두자 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출근 전과 퇴근 후 스튜디오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누굴 탓할 건가. 이걸 하겠다고 한 내가 원수지.
그러다 450시간쯤 왔을 때인가, 연수생이 되어 두어 달 가르치던 회원이 해맑게 웃으며 벌써 몸에 변화가 느껴져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니,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보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회원 입장에서 강사가 원래 엔지니어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나를 잘 가르치는 게 중요하지. 잘해야겠다 이왕 하기로 한 거. 남들보다 더 밑에서 시작했다면 조금 더 부지런히 하면 되고, 꿋꿋하게 시간을 채워 나가면 언젠간 도달한다고 다짐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10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시간을 백번 돌린대도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그냥 아무런 미련 없이 내 길이 아닌 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중간중간 몇 번이고 탈출하는 정신줄을 겨우겨우 붙잡으며 한 시간 반의 최종 시험을 치렀다. 아직 합격이 실감도 안 나는 상태에서 지난 3년간 함께 한 마스터 선생님이 (평소엔 깐깐한 분이셨는데) 나보다도 먼저 눈물을 글썽이시며 잘했다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달려와 안아주셨다. 나도 눈물이 핑했다.
600시간을 반복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왜 프로그램이 600시간으로 정해졌는지 이해가 갈 만큼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해 있었다. 이건 그냥 필라테스 자격증이 아니다. 내 한계 밖에 있는 무언가를 내가 도전하고 중간에 포기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증명서였고 다시 한번 날 믿을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종종 난 잘하는 게 없다고 움츠러들 때면 그 자격증을 펼쳐 본다.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