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즈에서 서핑을 하다가 파도에 걸린 보드에 머리를 맞고 물속으로 빙글빙글 날아갔다. 어우 죽을 뻔했네, 혼자 웻슈트 입고 죽으면 신원미상 동양인 시체 되는 건데 하며 금세 올라온 뒤통수 혹을 문질문질 달랬다. 다음 날 하루 더 서핑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울렁거리는 속에 죽을 넣고 머릿속이 자꾸만 흐려지는 걸 보며 내가 이제 하다 하다 바보가 되어가나 했다.
2주가 넘도록 여전히 딩딩거리는 머리에 혹시나 병원에 갔더니, 아니 이게 뇌진탕이란다. 지금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된대서 병가를 내고 집에 틀어박혔다. 책은커녕 티브이도 비추천이라는데 머리나 몸 쓰는 그 무엇도 안 하려니 정말 할 게 없었다.
그나마 집에 베란다가 있어서, 거기에 의자랑 탁자를 내다 놓고 색칠공부를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칠하다 어느덧 어둑한 듯하여 고개를 들어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틀어놓았던 조용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이던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인 내게, 뇌진탕은 잠깐 쉬고 이런 거 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을 정도였다. 해가 다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어렵다. 1분 1초가 생산적이어야 하고 인생은 효율성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꼭 쳇바퀴 도는 다람쥐 같다. 그러다 가끔 내가 더 이상 발 디딜 틈도 없다 생각이 들 때, 마음의 여유를 잃어 지칠 때, 다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석양이 없어도 예쁜, 잔잔하고 커다란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나면 내 걱정과 고민은 한낱 구름 한 점보다도 작은 듯하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