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보스턴을 다시 찾았다. 고속도로 위를 몇백 킬로 달리다가 드디어 보스턴 표지판이 나오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마음 어딘가 꽁꽁 묶어놓았던 애증의 기억들이 너도 나도 떠오르며 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하지만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는 발걸음을 따르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곳들을 보며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친구들과 자주 가던 음식점에 들러, 어릴 땐 이런 게 맛있었나 의아해서 웃음도 나왔다. 의외로 즐거운 기억만 떠올랐다."
이 연재를 하며 대학교, 대학원을 다닌 동네를 오랜만에 방문했던 저 때의 기분을 여러 번 느꼈다. 지금까지 나를 버티고 나아가게 해 줬던 생각들, 느낀 점들, 기억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니, 신기하게도 나쁜 기억이 별로 없다.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마저 이제는 미화되어 좋은 추억 밖에 남지 않았다. 짧게는 3년, 길면 20년까지도 지난 일들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기도 하다.
20대 후반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하고 인생이 바뀐 매니저가, 나를 워크홀릭의 지옥에서 구해준 이야기.
취미로 가진 수집 컬렉션 중 죄책감, 감사함, 부끄러움, 애틋함 온갖 감정이 뒤섞여서 20년이 되도록 버리지 못하고 여태 간직하고 있는 스티커 이야기.
어른이 되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야 만난 진정한 친구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멘토의 한마디.
하나의 글로 쓰기엔 부족해서 남기지 못한 수많은 기억들도 스쳐 지나간다. 내가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마치 초콜릿을 까먹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열어보며 기록하다 보니 반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 언젠가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들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20대는 사고를 치고 다니는 시기이고 30대는 그 사고들을 수습하고 다니는 시기라고. 거진 나의 수습이 끝나가는 것 같으니, 20대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것처럼, 그다음 40대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특이한 버릇도 생겼다. 문득 떠오른 기억, 꼬리에 꼬리를 물다 든 생각, 지나가다 본 뭔가에 튀어나온 영감 등을 끄적거리다 보니 머릿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작은 것 하나라도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 이것도 남기기 좋은 이야깃거리겠다” 정도였던 거 같은데, 언젠가부터는 뭘 느끼는가, 왜 느끼는가, 이게 어떤 의미인가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강박 아닌 강박 덕분에 내 하루가 조금 덜 단조로운, 조금 더 풍요로운 일상이 되었다.
사람은 내가 잘 되면 내가 한 것들이 다 정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상황이 있고, 그걸 내가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어떤 마음인지 온전히 알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면 된다" 식의 조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방식"이라 모든 문제에 적용할 수 없기에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오히려 내가 혼자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들, 내가 약한 모습으로도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들, 그런 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연재를 시작했다. 언어들 사이에 관점과 시점의 차이가 흥미롭고, 아 다르고 어 다른 어감으로 글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는 걸 배워나가며 서투른 전달력이었지만, 내가 공유한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와 응원으로 닿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