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Thanksgiving day"이다. 1년 전 이맘땐 땡스기빙 데코를 꾸며놓고 가족 같은 사람들과 함께 칠면조, 다양한 사이드, 여러 종류의 파이 등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둘러앉았다. 한 명씩 감사한 일 한마디를 나누기도 하고, 그저 보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여서 특별한 날이었다. 한국에 오니 이 날이 쏙 빠지고 (추석으로 미리 보내긴 했지만)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만 남은 채, 이미 크리스마스가 되어있다. 매년 보내던 명절이 증발해 버리니, 문득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처음 이사 갔을 때가 생각난다.
보통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은 흔히들 “날씨 세금”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날씨가 가장 적응이 안 됐다. 풍성해지는 나무와 피어나는 꽃들이 예쁘고, 초록초록 하지만 아주 덥고,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아름답고, 온 세상이 하얘지며 아주 춥고, 계절이라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풍경이 일 년 내내 비슷했다. 거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지금까지 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어서, 눈도 없고 춥지도 않은 사막의 노란빛과 그 위에 따로 놀던 크리스마스 트리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었다.
아마도 나는 “그 시간” 에만 할 수 있는 것들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인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 돌아온다면 기다려야 하는 시간, 그렇기에 그때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아쉽고 소중하다.
또 그래서 그런지 일 년 간 온갖 공휴일을 챙기고 테마를 지키는 걸 좋아한다. 그에 맞춰 집을 꾸미고, 먹거리와 할 거리를 기획하여 홈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걸 가장 잘하는 Trader Joe's 마트에 내가 매일 발도장을 찍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즌 한정판을 구경하는 게 취미였던 이유기도 하다.
초콜릿과 핑크 천지 밸런타인데이,
세인트 패트릭 데이에 초록색 옷을 입고 아이리쉬 펍에서 기네스 마시기,
교회는 가지 않지만 부활절에 파스텔 색의 토끼 그릇 쓰기,
독립기념일에 빨강 파랑 줄무늬 옷을 입고 폭죽놀이 구경하기,
핼러윈에 젖소옷을 입고 어린이들에게 사탕 나눠주기,
땡스기빙에는 일 년 내내 손에도 안대는 칠면조와 펌킨파이 먹기..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건 크리스마스다. 땡스기빙이 끝나자마자 그 주말에 트리부터 세우고 단거를 잘 못 먹는 데도 한 달간 매일 밤 핫초코와 함께 크리스마스 영화 깨기를 한다. 평소에도 스트링 라이트를 집에 달아 놓을 만큼 좋아하기에 온 세상이 반짝반짝 예쁘다. 기부도 조금 더 하고, 추위는 많이 타지만 일 년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간이다.
남편은 연애 초반 이런 테마에 진심인 나의 모습들에 처음으로 “진짜 미국인이구나” 느꼈다고 하는데, 이제는 여행을 갈 때마다 직접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무늬의 오너먼트를 고른다. 매년 그 오너먼트들을 함께 트리에 달면서 추억들을 나누는 게 우리 가족의 소소한 전통이 되었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내면 좀 더 꽉 차게 산 것 같다.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맘껏 느껴서 뿌듯하고, 다음 해 또 돌아 올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마주할지 기대된다. 올해 한국에 이사오고는 꾸밀 수 있는 테마와 도구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 최근 몇 년은 여러 사정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크리스마스 스피릿이 부족하고 시큰둥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아주 올인을 해야지.
그냥 세상에 즐거운 일이 하나 더 생겨서 행복했던 어린아이처럼, 그냥 그 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면 꼭 쓸모 있는 하루가 아니었어도 잊지 못할 하루가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