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여름학기를 지내던 중에 패션쇼 모델을 제안받았는데, 키가 엄청 크고 깡마른 편은 아니었어도 학교에서 항상 맨 뒷자리에 앉는다거나 국내의 기성복은 팔다리가 맞지 않는 등 불편함이 종종 있는 일상에 이왕 이렇게 태어난 거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휴학을 해야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공부 밖에 답이 없다고 조크 아닌 조크를 하던 아빠는 결사반대를 하셨다. 남들보다 빨리 달려서 빨리 성공하셨던 아빠의 눈에는 이렇게 쉬면 뒤쳐져버리는 것이었다. 소심한 (아니면 모델 일에 자신이 없었을) 나는 가을 개학에 맞춰 미국에 돌아갔고, 정신없이 학사 석사를 마친 후 사인을 끝낸 대기업 오퍼레터 한 장을 들고 졸업했다.
입사를 하고 적응을 좀 하고 나니, 보이는 건 이제 더 긴 장거리 달리기였다. 우리 팀엔 유난히 40대 이상의 팀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길인가? 갑자기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리고 허무했다. 회사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이 필요할 때 항상 등장하는 "fun fact about me" 게임에선 나는 재밌는 이야깃거리 하나 없어 애를 먹었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던 건 공부와 취직에 관련된 게 아니면 다 포기했고 생각나는 게 없는데, 남은 게 뭐지? 그 모델 일을 안 해본 것도 거의 10년은 미련이 남은 것 같다. 해 볼걸, 어차피 잠깐인데 경험해 볼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하고 후회하는 것은 어떻게든 고쳐나가면 되고 앞으로의 선택을 할 때 뭔가 배울 게 있겠지만, 안 하고 하는 후회는 답이 없다는 걸.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그 길에 갔을 나를 앞으로도 절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가지 않은 길엔 언제나 마음이 쓰일 거다. 하지 말걸 후회할 때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면, 모두가 반대하는 잡초만 무성한 길이여도 가보자.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나의 경험들이니, 최선을 다해 겪어보면 되지. 그냥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