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의 청춘

by Chloe 슬기

아빠가 딱 지금 내 나이였을 해의 이맘때쯤, 우리 가족 첫 해외여행을 갔다. 그의 엔지니어 현역 시절은 일본 기계가 많이 쓰일 때라 그 당시 금성에서 근무하던 아빠는 일본 출장을 자주 갔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첫 해외여행지도 일본이 되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사진 속 부모님이 참 젊다.


엄마와 아빠는 어떤 청춘을 산 걸까.


언젠가 엄마와 함께, 밤늦게 야간 학원에서 일본어 수업을 듣던 아빠를 마중 나간 날. 검사 후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 화장실에서 피로 다 물들어버린 청남방을 빨던 엄마 모습. 한 달 동안 일본 출장을 간 아빠에게 전화 걸어, 보고 싶다고 엉엉 울던 날. 사줄 형편은 안되었지만 엄마가 종이 접기와 재활용품 크래프트로 방을 멋들어지게 꾸며주던 날. 아주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청춘이다.


나는 우왕좌왕 방황하며 보낸 20대, 그 나이에 아빠는 암과 투병하고 엄마는 손목시계 디자이너 커리어를 포기했다. 나는 꿈을 찾아 도전하던 30대, 그 나이에 엄마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장기이식수술을 받았고, 아빠는 또 한 차례의 암 수술과 IMF를 무릅쓰며 사업을 이끌어갔다. 아빠는 어떤 일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준비성을, 엄마는 "나중에"라는 건 없다는 실행력을 가르쳐주셨다.


병문안 오신 목사님이 기도해 주신다며 수술부위를 계속 만지니까, 아기였던 내가 아빠 아픈데 자꾸 치지 말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엄마 걱정에 자꾸 울어 외할머니가 그만 그치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안 아파서 좋겠다 왜 우리 엄마만 아파야 돼" 하고 악을 썼다고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뇌리에 박힌 건지, 그런 내가 홀로 남겨지면 너무 불쌍해서 단칸방 셋집에서 거금의 병원비를 안고도 살아남기 위해 무작정 버텼다고 한다. 그 덕에 나는 모자랄 것 없는 청춘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만을 다하며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그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좀 욱신거린다. 그런 부모님의 청춘에 나도 행복과 힘이 되었었기를.


오래전 우연히 책더미 속에 숨겨져 있던, 내가 처음 유학 갔을 때 엄마가 쓴 일기를 본 적이 있다. 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큰돈을 모아 유학을 보냈지만, 속으론 혼자 타지 생활을 하는 내게 미안해서 속앓이를 꽤 한 것 같다. 몇 년만 있으면 내게 그 나이가 다가온다. 아무리 사람은 각자 만의 길과 타이밍이 있다지만, 난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이 이뤄낸 것만큼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희생하며 그런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항상 커 보였던 그들의 나이가 되었는데 난 아직도 철이 없어 보인다.


이젠 꼭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아빤 나만 보면 “시차 없이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구식이라고, 농담이라도 꼰대라고 했던 게 미안해진다. 오늘은 맛있는 식사 하셨냐고 연락을 드려야겠다. 한창일 때 많이 아프고 많이 고생하신 만큼 이상으로, 오래오래 걱정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내 곁에 남아주셨으면. 그래서 나도 본받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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