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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Nov 07. 2024

성격과 관계

캐나다에서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중입니다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고민들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요즘 결국 지난달 중순에 글을 올리고는 다시금 회피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정말로 평범하고도 괜찮은 하루, 어쩌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한 마디, 한 가지 가벼운 생각으로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생각이 많아져 괜찮지 않아 지는 요즘이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혼자 생각이 많아지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스스로를 잠식해 버린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지만 정말로 단순하고도 눈치가 없으면서도 때로는 꼬일 데로 꼬여서 이보다 더 복잡해질 수가 없다. 생리의 호르몬 영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게 시기 불문으로 엉망이 되어버릴 때는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다. 서른 살 정도 먹은 나는 나름 나 자신이 나름 괜찮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생각보다 예민하고도 꼬인 사람이라는 것이 이곳에 와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켜보며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회피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준은 모호하지만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남이 보는 내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 또한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전에 내가 적은 위시리스트에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만들기라는 목록이 있었다. 그만큼 나는 한 마디와 한 순간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있었는데 친한 친구와 또는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면 기분이 한없이 다운되어 흔히들 말하는 동굴로 들어가기를 시전 했다. 사이가 틀어진 친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주변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고 기분이 안 좋은 티를 냈었다. 내가 이를 인지하기 한참 오래전부터 나는 관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통 그런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혼자서 틀어진 관계에 대해 끝을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친구가 또는 가족이 건넨 가벼운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 기분이 ㅎ나껏 업되거나 풀리곤 했다. 해를 거듭하면서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최대한 각각의 관계를 개별적으로 다루려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나에게 어려웠으나 조금 생각을 정리한 뒤 관계를 회복하고자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풀어보려고도 노력했다. 나는 굉장히 회피적인 사람이었기에 조금이라도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하여 방어적인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 어떻게 사이가 멀어져도 스스로 상처받지 않도록. 여전히 관계에 있어서 나의 이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으나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노력하려 한다. 나아가 이제는 나 자신이 단단하여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주말이 아닌 이상 개학일이 생일이었던 내 기억 속 새 학기는 항상 최악이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먼저 다가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새 학기 일주일 동안은 매일밤을 울었던 것 같다. 먼저 다가가기에는 두렵고 그러다 보니 새로 사귄 친구가 없어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는 먼저 다가와주었던 친구와 친해지고는 또 금세 괜찮아졌다. 먼저 말을 거는 게 어려울 뿐 말만 걸어주면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나 먼저 다가갈 자신감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재건축 문제로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쭈뼛쭈뼛하지 않고 처음부터 당차게 친구들과 교류하자는 결심을 갖고 전학 첫날부터 친구들과 씩씩하게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새 학기의 문제를 극복한 뒤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것에 빠져 지나간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문제가 있었다. 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뒤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같은 반이 된 친구들과 새로이 친구가 되고 함께하는 것에 정신이 빠져 지나간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다시금 찾아 만남을 갖는 일이 지금 생각해 보면 없었던 것 같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로 인해 대학교 친구들은 거의 난무하고, 초중고 친구들 또한 먼저 나를 찾아주거나 끊임없이 만남을 유지했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남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를 인식하고 친한 언니에게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거에 빠져 기존의 친구들을 잘 안 찾았던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언니는 이미 나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을 제일 나중에 알았던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 관계에는 유독 중간이 없었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내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거나, 쌓이고 쌓여 기분을 안 좋게 하는 행동들이 지속되면 참고 참다가 결국 폭발해 관계를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왜 그 당시에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왜 그냥 웃고 넘어가버렸는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겠으나 나는 싫은 소리를 마음에 담아두고는 꺼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제일 두렵고 어렵지만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말을 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고 그것이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최대한 나의 기분이나 생각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여전히 그 당시 또는 뒤늦게 떠오른 감정들을 표현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싸우지 않아야만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항상 잘 맞을 수는 없기에 다투고도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과거 또 하나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사건은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던 때의 일이다. 교사들끼리 수련회 같은 것을 한 적이 있는데 10년 전이기에 그 당시에는 MBTI가 유행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성격검사를 해서 교사의 자질에 맞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나의 MBTI는 전체 성격이 기억나지 않지만 첫 번째 성격유형이 I였다. 그렇게 결과가 나오자 I 성향은 교사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E성향의 교사들과 I 성향의 교사들을 나누어 앉혀두었던 기억이 난다. 나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사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 한마디에 내 자신감과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쉬는 시간에 도대체 그런 성격검사를 해서 왜 사람을 나누는지에 대해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사람들은 E성향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고정관념이 생겨 활달한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ENFP의 MBTI를 가지게 되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러나 실제 나의 MBTI는 성격검사를 할 때마다 변하고 대부분의 성향들이 50%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한다. 몇 년 전부터 MBTI가 유행을 하면서는 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그저 에너지를 어디서 받아오는지의 차이이지 어떤 성격유형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10년 전의 MBTI는 나에게 그런 상처로 남아있다.


 나는 사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중간이상은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청소나 상대방을 위한 배려. 그러나 엄마에게, 몇몇 친구들에게 나의 설거지가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름 깨끗하게 했다고 생각했으나 이와 같이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들이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들이 굉장히 많이 깨졌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의 정체성에 굉장한 혼란함을 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나는 내가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상대에게는 배려가 아니었을 수 있고, 나는 내가 스트레스받는 것을 티 안 낸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다 티가 났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사람들한테 맞혀주고 있고, 나는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처럼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 있음을 몰랐다. 여전히 아마도 내가 모르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오늘 하루 무한 걱정을 했던 것들을 내일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혼자서 괜한 생각을 하는 것들을 멈추고 싶을 때가 많다. 이것이 실제로는 관계에 있어서 쓸데없는 걱정일 때가 많고 실제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들과 성향들에 대해 한국에 있을 때는 바쁜 일상에 치여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나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부터 나의 내면을 많이 들여다보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래서인지 지금은 행복한 이야기보다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들을 주로 쓰고 있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또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글을 읽는 나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고 조금은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스토리를 적어본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표어, 포스터, 글짓기 학교에서 많이 하는 과제들인 이 세 가지 중 택 1해야 했을 때 항상 글짓기를 선택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상장들과 학교에서 찍은 단체사진, 성적표들 등 다양한 종이들을 유치원시절부터 모아두었는데 방학숙제로 하는 독후감도, 대외의 글짓기대회에서도 나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그림을 잘 못 그리고 그쪽으로 창의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글짓기를 했을지 모르겠으나 글짓기를 해서 최우수상까지는 아니어도 상장들을 받고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받는 것에 참으로 행복했던 어린이였다. 이번 글에서 나의 못난 부분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나의 마음을,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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