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만 여행 #1
드디어 여행 당일이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데 이 당시에는 엄청난 설렘과 동시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아마도 홀로 처음 나서는 것이 이유였으리라. 나는 인천에 사는지라 아버님이 차로 데려다주셨는데 공항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렛는지.
아버님은 해외여행을 한 번도 다녀오신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가실 생각이 없으신 거 같지만 언제나 아들이 떠날 때에는 '또가냐?' 혹은 '거기서 살아라'라고 하시면서도 공항까지 데려다주신다. 거기다가 짐을 내리는 순간 말없이 떠나버리는 클래스. 아버님은 나쁜 남자 혹은 츤데레의 정석이시다. 뭐 여하튼 조심하든지 말든지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고 공항에 입성했다.
그래도 인천공항은 세 번째라고 내가 예약했던 이스타항공의 카운터로 가서 티켓팅을 마치고서는 공항을 잠시 구경했다. 혼자여서 더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녔던 것 같다. 제대로 둘러보기는 처음. 각종 식당과 편의시설들 심지어는 물건을 맡기고 택배를 보낼 수 있는 곳까지. 아 언론이 정말 국뽕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잘 만든 곳이구나 하면서 어느새 출국 게이트를 지나서 면세구역으로 입장했다.
제주 여행기에 나왔던 폴리스 선글라스는 박살이 나고 말아서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선글라스를 구입했다. 칼 라거펠트 선글라스. 선글라스는 나와 항상 마무리가 좋지 않다. 박살 나거나 잃어버리거나. 여튼 선글라스를 구매하고 나서 보딩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행기로 입장.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 기장님께서 멋있는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려주셨고 곧 우리는 착륙했다. 그렇다. 여기는 대만이다.
빠르게 이민국 심사를 통과하고 나서는 시내로 향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다. 버스와 MRT라고 불리는 지하철이 있었다. 1819번 버스는 24시간 탈 수 있는데 버스라면 질리도록 싫어하는 나는 버스 대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MRT를 타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미리 구매한 토큰 모양의 티켓(가격 약 5000원)을 수령하고 메인 역까지 가는 전철을 탑승했다.
사실 이때부터 멘붕이 좀 왔다. 이전 글에서 나는 단순하게 필리핀과 베트남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던지라 이런 세련된 풍경이 펼쳐지니 머리에 꿀밤을 맞은 기분이었다. 어찌나 깨끗한지! 차가 계속 가면서 도시의 풍경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더더욱 멘붕이 왔다. 아 여기 완전 잘못짚었다!
그렇게 놀라움의 연속으로 타이베이역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또 멘붕. 역이 엄청나게 크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많이 걷고서야 태양빛을 볼 수 있었다. 9월 말의 대만은 굉장히 더웠다.
홀로 가는 여행 역시 처음이었고 당연히 혼자 숙소를 정했다. 이때까지는 숙소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러 글들을 보니 대만은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주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이렇게 젊은데 무슨 호캉스를 하고 비싼 호텔을 가?라고 한창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을 때라 메인 역 주변에 호스텔을 부킹 했다.
내가 잡았던 숙소는 메인 역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골목에 큰일 옆 골목에 위치한 부티 시티 캡슐 인이라는 곳인데 예약을 할 때 보았던 후기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1박에 3만 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제공해 주었고 정말 깨끗한 시설 그리고 카운터 직원들이 친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젊은 배낭여행자를 자칭했던 이때는 필자에게 꽤나 합리적인 숙소였다. 위치나 컨디션, 직원들의 친절함까지.
룸타입은 2인실부터 혼성 도미토리까지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저렴한 혼성 도미토리를 선택했다. 몇 사람 없어서 참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든 한 느낌이 들어서 맘이 편해진다고 해야 하나. 공용으로 쓰는 세면대부터 샤워실까지 깨끗해서 만족하면서 사용했고 로비층에서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있었고. 2층에는 푹신한 의자가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짐을 풀고 카메라를 챙기고 나서는 주위를 둘러봤다. 역 주변이라 쇼핑센터들이 보이기도 했고 식당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한 번 놀랐다. 대만의 바이브랄까. 깔끔한 도로와 더불어서 약간 앤틱함과 인더스트리얼함이 느껴지는 건물들이 보였다. 옆 골목은 우리나라 남대문 카메라 거리같이 카메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필자 역시 카메라를 좋아하기에 카메라와 렌즈를 구경하는 재미에 한 시간 정도를 사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에서의 필수품이라는 이지카드를 구매하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만의 분위기는 일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얘기해 주었다. 물론 일본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유로 편의점이 정말 활성화되어있다고 얘기를 해 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말대로 편의점에서 웬만한 것들은 다 되는 것 같다. 공과금을 내는 것부터 엄청나게 많은 편의점 음식들 그리고 특유의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이것은 달걀이라고 한다. 정말 웬만한 편의점에서는 다 본 것 같다. 약간 떡볶이 같은 소울푸드인가?
편의점을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어줬더니 편의점에 있는 내내 나를 졸졸 따라온다. 괜스레 행복해진다. 아 이래서 애교 있는 강아지를 키우라는 거구나. 그 꿈은 내가 친구와 함께 웰시코기를 분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치 ‘안녕 여긴 대만이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귀여운 놈. 여행의 시작이 참 좋아 보인다.
이지카드를 구매했다. 한국으로 치면 티머니 같은 교통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카드 하나면은 웬만한 것들은 다 결재가 가능하다. 식당, 커피숍, 심지어는 편집샵에서도 가능한 것을 보았다. 마치 어린이도 사용이 가능한 신용카드랄까? 여러 군데에서 할인도 된단다. 그래서 하나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메인 역에서부터 숙소를 오면서 보았던 빨간색 문이 보였는데 딱 봐도 뭔가 의미가 있는 건물이겠구나 해서 다시 한번 가서 보았다.
그렇다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청나라 시절 타이베이를 들어서는 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이라고도 한다. 그런 곳에 비해서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아마도 주변에 할 것들이 없어서 여행객들이 단독으로 이것을 찾지는 않는 것 같다. 이름은 북문. 영어로는 The North Gate. 구글 리뷰를 보니 별거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주변에 우체국? 건물이 있는데 숙소 주변을 산책하면서 밤에 보면 괜찮다. 그냥 저 문을 통과해본다.
이렇게 무리하지 않고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주변에서 작년에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흑당 버블티를 하나 마셔주고는(내 입맛은 전혀 아니다)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이때는 이렇게 내가 글을 쓸 줄은 몰라서 별 사진이 없다... 구글 리뷰에는 내 숙소 주변이 카페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때는 잘 몰랐었다. 나 답지 않게 일찍 숙소에 들어가고 나서 씻고 나서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계속 서칭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짧은 거리의 비행이지만 피곤했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더위가 있었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홀로 여행한다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내일은 또 어떤 설렘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