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짐칸에 우리 캐리어도 잘 넣었고, 순조롭게 할슈타트로 떠나는가 싶었다. 버스에 올라 뒤쪽 자리로 가는데,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차라리 못알아들었으면 좋았을텐데, 괜히 알아들어 내내 기분이 나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구나 싶어 분했다. 더 분했던 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오스트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에 괜히 잘못될까 싶어 뭐라고 하지 못하고 째려보고만 왔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하지만 그 꼬맹이가 내릴 때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준비하고있었는데, 우리가 있던 뒤쪽으로 안내리고 앞으로 내려버렸다. 씩씩거리고 있으니까, 엄마가 “밖에 풍경 좀 봐. 너무 예쁘다. 여기 사람들은 왠만한데 놀러가면 성에 안차겠다” 라고 화제를 전환했다.
화나는 와중에도 주변 경치가 정말 멋있었다. 길을 달리는 내내 옆에 있는 호수는 너무나도 맑고 투명하고, 그 뒤로 만년설 덮힌 산은 눈이 부시게 멋지다. 그 사이사이에 있는 집들을 보면, 그림 속 마을 같다, 부럽다,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운 동네였다. 다양한 루트를 이용해 할슈타트로 가는 것도 할슈타트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무사히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할슈타트는 길이 돌바닥이라, 캐리어를 끌고다니기 험난하다.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고 선착장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아놓고, 버스를 타서 들어가는 바람에 10-15분정도 걸어야했다. 초행길이고, 가방도 무겁고, 와이파이는 잘 안터지는 와중에 숙소도 못찾겠어서, 또 다시 초조해졌다. 나처럼 성격이 급한 딸래미라면, 여행전에 계획이 틀어져도 대처할 수 있는 느긋함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너가 한번 찾아보고올래?”
“아니, 나도 처음오는 곳인데.. 알겠어요, 잠깐만 있어 보세요”
구글맵에 의존해서 터덜터덜 숙소를 찾아나섰다. 우리 숙소만 빼고 다른 숙소들은 다 있네, 라는 생각이 들때쯤 우리 숙소를 찾았다. 워낙 작은 숙소라 명패도 작고, 할슈타트가 골목골목있어서 구글맵이 위치를 정확하게 못잡아준 탓도 있었다. 숙소를 찾고나서, 혼자있을 엄마 걱정에 부리나케 뛰어갔다. 다행히 엄마는 풍경을 보며 평온 그 자체.
이제 관광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체크인이 발목을 잡았다. “3시 넘어야 가능하다, 짐도 맡아줄 수가 없다~” 정중하게 말했으면 또 모르겠는데, 너무나도 불친절했다. 아까 버스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던 직후였어서 그런지 다시 급속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여행자고,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하는데. 약속한 3시가 지났는데도 체크인이 안된다고해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려던 찰나, 숙소의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주인은 너무나도 친절했다. 간단하게 인적사항을 적고, 규칙을 들은 후,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우리 방은 아담한 다락방이었는데, 창문으로 할슈타트의 눈덮힌 산이 보이고, 마을 전경이 보였다.
“돈벌이만 있으면 여기서 살고싶다”
“나도.. 엄마 우리 여기서 게스트하우스할까?”
“좋지~”
우리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할슈타트 구경에 나섰다. 할슈타트는 아름다웠다. 그림같은 마을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아이러니하게도 할슈타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알록달록한 집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산, 맑디 맑은 호수, 여리여리하게 피어있는 꽃들까지. 어딜찍어도 그림속에나 존재하는 곳 같았다.
엄마와 나는 정처없이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먹고, 우연히 현지인만 다니는 산길을 찾아 산길도 걸어보고, 우리 집도 아닌데, 대문앞에서 우리집인양 사진을 찍고, 현장학습나온 고등학생들이 할슈타트를 배경으로 그림 그리는걸 지켜보기도 하고, 또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벤치가 보이면 벤치에 앉아 멍하게 앉아 거대한 산이 주는 위압감을 즐기기도 했다. 그동안은 느낄 수 없었던 대자연이 주는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우리는 할슈타트에서 꼭 먹어보고싶은 음식점이 없어서 숙소로 돌아와 비엔나에서 포장해온 립과 맥주를 마셨다.
“이걸 왜 싸가나 했는데, 잘 싸왔네”
“그쵸? 다 싸오면 먹는다니까요”
기분좋게 알딸딸한 밤이었다. 자다 일어나서 테라스 창문을 열었는데 별이 쏟아지는 할슈타트를 만났다. 깜깜한 하늘에 보석이 콕콕 박혀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감탄하며 테라스의 별들을 봤다.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었는데, 삼각대가 없어서 잘 찍히지 않았다. 이제 별찍는 감이 좀 생겼다 싶을때쯤 동이 터서 별이 다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벽 산책을 나섰다. 야-라고 부르면 깃털 손질을 멈추던 백조도 만났고, 그냥 하염없이 보기만해도 좋았던 할슈타트 강가에 앉아서 멍-하게 밖을 보고있기도했다. 정말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마을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조망하기도 하고, 한 부분에만 빛이 내리는 경이로운 광경도 봤다.
새벽 산책길에 선착장 위치도 확인했다. 우리 숙소 바로 앞 3분거리에 배를 탈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다. 다행히 무거운 짐을 들고가지 않고, 가깝고, 들어올 때 버스를 타고왔으니 나갈때는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여행와서 정말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보는데, 배는 또 처음이었다. 배에서 보는 할슈타트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점점 멀어질수록 마을은 더 작아지고, 자연만 남았다. 경이로웠다. 마지막까지 그림같은 마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싶다.
*
사실 할슈타트는 딱히 볼건 많지 않다. 길에는 모두 상점인데, 특색있는 상점은 없다. 다만 예쁜 골목들과,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그림같은 풍경들이 있을 뿐이다. 만약 엄마와 유럽에 몇 번 가봤고, 가서 뭘 해야겠다!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별로 추천하는 여행지는 아니다. 경치 좋고, 잔잔한 평화를 원하는 모녀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