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옹 Apr 07. 2023

심리상담 기록 3

익숙하지만 떠나보내야 할 고통들

상담 시간에 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상담자님이 편해졌는지 준비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울음이 나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심리상담이 있는 날이고, 저는 일주일 만에 외출을 했어요.

이전까지는 운동도 거의 매일 가고, 온/오프라인 모임도 참석하고 전시회도 가고 바쁘게 지냈는데 최근에는 꿈쩍도 못하고 앓아누워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심한 두통을 거의 매일 다른 강도로 느끼고, 견디고 살아왔습니다. 그때부터 30대 중반까지 거의 매일 두통약을 먹고살았으니...


저는 약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신이 별로 없었어요. 두통이 심하면 구토를 하거나 심하면 기절하기도 했고, 링거를 맞아가며 견디던 20대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네요.


먼저 초등학교 때 두통이 심한 아이에게 게보린, 기타 두통약을 거리낌 없이 먹게끔 약을 구비해 주신 엄마에 대해 상담사는 방임이라고 정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약이 듣질 않는 저를 위해 이모가 드시는 통증의학과 처방약을 저에게 먹게 하셨어요. 그 약을 마법과 같았고 지금까지 일반적인 두통약이 아닌, 통증의학과에서 처방받는 아주 많은 약들을 먹고살았습니다.


두통이 오려고 하면 약부터 먹었어요. 심해지기 전에.. 그 고통 은은 저만 아는 느낌이고 익숙하고 늘 저와 함께였습니다. MRI 도 두세 번 찍었지만 역시 결과는 이상 없음. 많은 분들이 겪으시는 편두통 정도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바쁜 일상을 우선시하며 타협하고 살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다행히도 우울증과 성인 ADHD 치료를 병행하며 두통이 조금 나아진 기분도 들었고, 어쩌면 처음으로 약을 끊어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을 극심한 두통과 동반되는 여러 증상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견뎌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두통이 생길 때마다 성인들이 먹는 진통소염제를 먹을 수 있도록 구비해 놓는 것을 저는 방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도 명확한 방임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그나마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많은 서투른 행동들이 아이에게 적합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지더군요. 너무 슬픕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건대, 제가 만약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두통을 호소한다면 쉽게 약을 먹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겠지요. 적어도 성인이 처방받은 약을 먹게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해를 입힐지 알아보지도 않고 단 한 알도 먹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두통을 혼자서 이겨내려고 노력한 어린아이가 너무 가엾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구비해 주시는 약들을 사랑이라고 믿었고 성인이 되고 어머니를 잃고 나서도 약을 지어먹으며 그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느꼈을 겁니다. 아플 때마다 약으로 고통을 잠재우고 나를 안정시키며 고통의 긴 터널들을 견뎌냈습니다.


엄마가 밉기보단, 그냥 아무 힘이 없는 한 아이가 가엾고 불쌍해서 그때로 돌아가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어요. 충분히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가 가신 엄마에 대해 이제 와서 이렇게 굳이 뒤흔들어버리는 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상담가께 물었습니다.


상담가께서는 필요한 감정 같다고 하셨어요. 받아들이고 내려놓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이제는 회피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이제 아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최근에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시절 엄마를 향한 폭력과 평생을 독립적인 성인이자 가장으로의 역할 부재로 인한 감정 때문에 연락을 끊고 지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믿었고요.

오랜 투병 때문에 늘 손이 많이 가던 아빠가 늘 그러셨듯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마지막 순간까지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일을 하시다가 혼자 돌아가셨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이 심해지다가,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하시던 아빠를 챙겨드리지 못한 자책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분노의 감정이 피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아빠, 참 못난 사람.. 한량이었지만 자신의 가족을 돌볼 능력조차 없는 무능력한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미운 마음이 측은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혹은 의료진, 가까운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주고받고 인정을 받고 용서를 받아 마땅합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조차 외롭게 본인의 몸이 얼마나 주의를 주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을 겁니다.


상담사께서는 지금 모든 도움과 대안과 스스로를 살릴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던 아빠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오랫동안 엄마의 죽음과 나를 동일시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에 똑같은 병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온전히 감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느껴지는 모든 감정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휴.. 너무 힘듭니다. 힘들다고 입밖에 내어 소리치고 싶어요. 정말 힘이 듭니다..

 


현재 정신과에서 처방받아먹는 약들의 효능과 부작용,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평생 먹어온 두통약도, 약들로 인한 위장장애 때문에 먹던 위염약, 약을 먹고 위안을 얻어온 방임된 채 고통을 견딘 어린아이에게 천천히 설명해 줄 겁니다.


심리적 요인이든, 억눌린 감정이든 실체가 없는 고통을 이제는 이겨내 보자고. 일단 평생 먹어온 약을 먹지 않은 채 매일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의존했던 시간만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 줄 겁니다. 그리고 이겨낼 수 있다고 안아줄 겁니다. 누구나 두통과 버금가는 고통을 견디며 이겨내며 살아간다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응원해 줄 겁니다.


지금은 쓰러져도 곁에서 지켜봐 주는 남편도 있고, 연락이 뜸하면 걱정해 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더 이상 소중한 인연을 밀어내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을 택할 힘이 생겼으니까요.

제 안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늘 믿어왔어요. 남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생 난도가 높은 만큼, 볼륨이 많은 만큼 이 고통들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요즘은 명상을 자주 합니다. 꽤 도움이 되어서 왜 진작 하지 않았나 싶어요.

명상을 할 수 있는 많은 채널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명상을 추천드리고요 (갑자기)


최근에 라짜로와 에에올(에브리띵 에브리웨얼 올 앳 원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영화 세 편을 몰아봤습니다. 이것에 대해 언젠가 이야기하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갑자기..?)


저는 밝고 재밌는 사람인데, 느끼실 수 있게 해 드리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의 응원이 느껴질 때마다 큰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상담 기록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