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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민 Feb 21. 2021

우리 집 강아지가 불쌍해

반려인의 자격이란 어떻게 생기는 걸까


‘돈이 X나 많고 싶다..’


물욕이 크지 않다고 자부하는 내가 간절하게 부자가 되고 싶은 유일한 이유는 우리 집 강아지이다. 나는 사람 넷 말고도 '아리'와 '동동이'라는 이름의 흰 강아지 두 마리와 7년을 살고 있다. 둘은 모녀지간이다. 이젠 서로를 엄마와 딸로 여기는 것 같지 않다만, 어쨌든 아리는 동동이를 낳았다.


주변에 나와 같은 반려인이 많다. 이 친구들과 만나면 수다에 빈틈이 생길 리 없다. 서로의 반려동물 이야기로 이미 오디오가 꽉 차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수다 중 핫 토픽은 당연 반려동물의 복지이다. 강아지 관절 건강 때문에 강아지 계단을 살 건데 어떤 타입이 더 좋더라, 어떤 장난감을 사봤는데 더 좋아하더라, 유치원에 보낼까 싶어 알아보고 있다, 한강에 종종 가는데 어쩌고 등등. 이 대화에서 나는 어디서 봤답시고 아는 척을 하며 호응해 주는 쪽이다.


 

계단이 있어도 이렇게 뛰어넘기도 해요

 


우리 집의 반려동물 복지는 평범한 수준이다. 방이 4개인데 강아지 계단은 2개밖에 없어서 아리 동동이는 종종 침대나 소파에서 냅다 뛰어내리기도 하고, 장난감은 아리, 동동 각각 두 개랑 아주 작은 노즈 워크 담요 하나이며, 유치원은 다니지 않고 앞으로도 보내지 않을 것 같다. 또, 차를 타면 한강이 멀지 않지만 가본 적은 없다. 강아지 동반 카페도 살면서 두 번 가봤다. 아, 그리고 생일은 따로 챙기지 않는다.


며칠 전에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그녀는 강아지를 키운 지 반년이 조금 넘은 친구였는데, 아리 동동이가 친구의 방문에 신나서 내 방에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고 친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야야, 애들 미끄럼 방지 매트 좀 깔아야겠다.” 집 안 전체에 깔려면 최소 몇십만 원이 우습게 깨지길래 차마 구매하지 못했던, 우리 집의 아픈 손가락 같은 반려 용품이었다.


감히 잴 수 없는 것을 재 보려고 하는 시도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 친구의 반려견을 향한 사랑과 나의 사랑이 비교가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묘한 박탈감과 죄책감. 반년 전 친구가 강아지를 키우겠다 말했을 때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엄격한 얼굴로 온갖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나인데, 실은 돈이 없어 내 새끼들 건강도 안 챙겨주는 사람일 뿐인 걸까. 반려인의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사랑은 잴 수 없음에도 자꾸 이런 계산을 하고 보는 이 양가적인 감정에 마음속이 복잡했다. 그러면 ‘프리미엄’ 사료를 알지 못해 매번 사람 음식을 퍼뜩 주면서 자기 집 고양이 살을 찌워가는 어느 집 할머니도 반려인의 자격이 없는 건가. 미끄럼 방지 매트를 두지 않을 법한 모든 집을 상상해서 그들도 나쁜 거냐며 찌질하게 나를 위로했다. 근데 정말로 좋은 반려인의 자격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말로는 사랑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마음은 왜 이렇게 짜게 식어가는지.


내 반려동물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라면 면발을 바닥에 흘려 아리가 잽싸게 주워 먹는 걸 보고 오빠한테 화를 냈다. 오빠는 나의 분노 섞인 잔소리에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가 얘네라면 맨날 같은 사료 먹고 오래 사는 것보다 라면 한입 먹고 조금 일찍 죽는 게 낫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에도 나는 사람 음식을 주지 않지만, 가끔 가족들이 조금씩 나눠 주는 사람 음식에도 화를 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라면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에 정답이 있을까? 사람 음식을 주자는 것도 주지 말자는 것도, 결국은 모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영원히 동물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 그들의 행복을 지켜주고자 언성을 높이지만, 그들이 직접 목소리를 높일 순 없는 문제였다.


생활비에 조금 여유가 생길 때면 반려동물 쇼핑몰에 들어가서 종종 물품들을 구경한다. 그곳을 구경하다 보면 말 못 하는 네 동물을 위한 일인데 네가 뭔들 못 사겠냐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고급지고 좋아 보이는 물품을 이미 봐 버렸는데 저렴하고 조금 덜 좋은 걸 사주려니 마음이 좋지 않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길에서 지나치는 반려동물 용품 가게, 광고, 동물 병원, 쇼핑몰에서는 반려인의 자격 기준이 있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동물의 권리를 높이고자 하는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그들이 내놓는 반려동물 서비스는 반려동물의 과학적, 수의학적, 동물행동학적 정보를 통해 만들어지고 설명된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내가 이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면 마치 반려동물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저 정보들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동물의 행복을 위하는 일에 모두가 같은 마음임에도 우린 소비자로서, 반려인으로서 끊임없는 평가를 요구받는 것이다.


반려 동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최선의 방법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고, 시장은 이 점에서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취약한 우리의 마음을 공략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정답을 모른 채 글을 쓰고 있다. 집중력에 좋다는 장난감을 사다 놔도 아리는 자꾸만 내 꼬질한 수면양말을 가져온다. 돈이 없어 한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채찍질했을 반려인이라면, 그 엄격한 매를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소파의 모든 면을 강아지 계단으로 꽉꽉 채워줄 순 없어도 반려견의 허벅지 힘을 키우기 위해 가끔 산책길로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당신을 안다. 무소음 드라이기는 없지만 반려 동물의 귀를 살짝 막고 털을 말리는 당신을 안다. 그리고 진정 동물을 위한 길은 아직 잘 몰라도, '아리' '동동이'가 원하는 것은 조금 알고 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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