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치원생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던데,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핸드폰이라는 걸 가졌다. 검은색에 반으로 접히는, 꾹꾹 버튼을 눌러쓰는 그런 핸드폰.
그전에는 학교에서 집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학교 중간의 전화기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콜랙트콜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맘때쯤이었나,
아버지의 첫 핸드폰은 안테나가 달린 삼성 애니콜이었다. 문자도 되지 않았던 핸드폰. 011로 시작하는 이 번호를 아버지는 참 오래도 썼다.
집에도 전화기가 있었다.
꼬불꼬불 선이 달린 요즘은 가게에나 있는 전화기.
요즘은 집전화가 없는 집이 더 많은 듯하다.
핸드폰은 온갖 것이 다 되는 스마트폰이 되어버렸다. 전화는 물론 영상통화까지 앱을 이용해서 하는 세상.
내 어릴 적 어머니는 전화기를 꽤 자주 들고 계셨다.
주로 외가 친척들에게 전화를 하곤 했는데 항상 이야기의 내용은 내가 듣기 거북한 것 들뿐이었다.
남에 대한 험담.
신세한탄.
나라는 감정쓰레기통의 용량이 적었나 보다.
전화 너머로 쓰레기가 비워진다.
나는 그 악취에 짓눌려있다.
좋은 소식을 들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그냥 질퍽이던 내 유년기에 통화는 일종의 질척이는 잔여물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기억이 없다.
전화가 반가운 소식과 즐거운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전화기는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갖게 되었을 때도 열심히 문자를 했을지언정 통화는 어딘가 불편했다. 꼭 전화를 해야만 할 때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통화가 필수인 무거운 주제일 때에서야 통화버튼을 눌렀다.
내 핸드폰이 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일상을 이야기하는 통화는 낯선 일이었기 때문에 전화가 오면 항상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을까 곤두선채 이야기를 듣고 대답했다.
통화연결음에 내 불행이 새나갈까 두렵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 그 온전한 불행에 기진맥진해 있는 나는 목소리에도 불행이 묻어났다. 불행을 떨칠 힘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수화기 너머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편하지 않다. 손가락만 까딱이면 아무 표정 없이 웃을 수 있고 한번 더 생각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불편한 마음이 가득한 통화를 굳이 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주로 화면으로 웃고 떠들었다.
'ㅋㅋㅋ'를 꾹꾹 눌러가며.
'또, 2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했잖아.'
나는 통화에 에너지가 참 많이 들어가는 사람이라서, 녹초가 되어있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고 매일 긴 시간을 통화하는 사람이 생겼다.
전화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낯선 일 이건만, 이 사람은 참 그게 당연한 듯했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나서는 통화가 더욱 잦아졌고 길어졌다. 그에게 통화의 의미는 나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내 목소리를 들어서 힘이 난다며 연락해 오는 그가 싫지 않았기에 나는 계속해서 그의 연락을 쪼르르 받아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한계를 만났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사롭고 행복한 일상이 버거운사람이었구나, 살아갈 힘도 부족한 나였다.
내 통화에 대한 에너지 고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그가 못 느낄 리가 없었다.
결국 도돌이표.
나는 언젠가 통화버튼을 가볍고 즐겁게 누를 수 있을까?
알바천국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30%가까이 '콜 포비아'를 겪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