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물에 인색한 사람이다.
부서지던 장미꽃을 어떻게 잊겠어
당신의 첫 선물에 대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선물을 받은 기억?
누군가에게 근사한 선물을 준 기억?
첫 기억을 잘 모르겠다면 혹시 너무 강렬해서 잊지 못할 선물에 대한 이미지가 있나요?
나는 선물이라 하면 너무나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첫 기억이 명확하다.
아주 어릴 때였다.
집의 가장 큰 방 안에는 항상 큰 장롱이 있었다. 몇 차례 이사를 다녀도 항상 그랬다. 어머니는 그 장롱이 열린 앞에서 무언가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고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후줄근한 양복을 입은 아버지께서는 썩 기분이 좋아 보였고 손에는 장미꽃다발이 들려있었다.
부모님은 싸움이 잦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의 싸움을 나에게서 숨기려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게다가 싸움의 주된 주제는 나의 양육방식이었다. 정말 단어 그대로 싸움의 가운데에는 내가 있었다.
그날의 바로 전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장미꽃다발을 든 아버지가 꽤 멋져 보였다. 나는 그런 근사한 꽃다발을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였다. 주로 집에서 내복바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어린아이. 그래서 쪼르르 그 꽃다발을 받는 모습을 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가 마주해야 했던 모습은 꽃다발이 부서지는 모습이었다.
바닥을 구르는 예쁜 포장지에 싸인 장미꽃은 부서져 빨간 꽃잎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날은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강렬하며 처음의 선물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러니까 첫 단추가 잘못 꿰여도 단단히 잘못 꿰였다. 나는 그래서였는지 일찍 히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믿지 못했다. 부모님도 선물을 주고받지 못하는데 대체 생판 모르는 새빨간 옷을 입은 외국인 할아버지가 나에게 선물을 줄 턱이 있나. 더군다나 나는 아주 자주 울었는걸.
나의 가족은 그렇게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았다. 나중에는 생일마저도 서로 모른 채 지나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나의 생일은 한창 여름방학 중인 시기였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생일 축하를 받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에 꽤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나의 생일날 꽤 많은 축하를 받은 날이 있었다.
기프티콘을 받고 생일초를 불었다.
정말 고마웠지만 나는 선물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어쩔 줄을 잘 몰랐다.
그리고 그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집에 있는 나의 가족들은 내가 생일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그날은 평범한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뭐 나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생일을 알지 못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성장하며 만난 사람들이 내게 선물을 주거나 나도 선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뒤늦은 사회화였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를 더욱 집중해서 풀곤 한다.
나도 그랬다.
나의 선물로 기쁘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을 고르는 법을 익혔다. 꽤 잘 익혔는지 때때로 센스 있는 선물이라는 칭찬을 받곤 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생일이 있는 달이었다.
우리는 잘 연락을 하지 않지만 연락을 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아버지께서 먼저 연락을 했었다. 딱히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 이번달에 생일이 있지?"
그 한마디에 아버지는 상기된 목소리로 그 언저리에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약속 전 어느 날에 하루종일 선물을 골랐다.
그리고 식사 후 내 차에서 선물을 꺼내드렸다.
포장지 한번 감싸지 않았건만 아버지는 싱글벙글 이었다. 다음 통화에서 그 선물이 얼마나 유용했으며 내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물을 했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 정도였다.
'참, 더 일찍 좋은 선물을 내게 주고받는 법을 알려주셨으면 내가 많이 좋은 선물을 해드렸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