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의 자연을 탐구하는 놀이터

불노뉴 숲(bois de Boulogne)

by 장서은


방과 후가 되면 손주들은 분주해진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뜰채와 투명한 채집통을 옆구리에 차고 현관문을 나선다. 목적지는 매일 같지만 그 설렘은 한결같다. 파리 16 지구 불로뉴 숲 안에 자리한 커다란 인공호수, 손주들에게 이곳은 호수라기보다 자연을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특별한 놀이터였다. 할머니 오늘은 가재 많이 잡을 거라며 확신에 찬 손주의 눈빛엔 이미 모험이 시작된 듯 기대가 가득하다.


손주를 따라 도착한 호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숲 속 깊숙한 곳,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 위로 잔잔한 바람이 흐르고 커다란 오리들의 행렬이 느릿하게 지나간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나는 전율이 느껴졌다. 세상의 어떤 예술 작품도 이 풍경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이렇게 크고 그림 같은 호수가 집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축복인데, 그곳이 손주들에겐 생생한 자연교실이자 놀이 공간이다. 어른인 나조차 설레는 이곳에서 손주들은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Do crayfish live here?”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었다. 손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외국어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외국인이 대화를 나누고 돌아간 뒤 저분들이 뭐라고 하셨어?라고 묻자, 이 호수에 진짜 가재가 사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했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손주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작은 입으로 모국어도 아닌 낯선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크고도 반가운 성장의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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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 뉴트리아 먹이를 주기도 했다. 물가를 따라 돌다 보면 손주들 눈높이에서는 작은 생명들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호수는 남편의 매일 아침 조깅 코스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호숫가에 도착한 손주는 뜰채 넣는 방법부터 설명한다. 이렇게 살짝 넣어야 가재가 도망가지 않는다며 돌 틈 사이 숨은 가재들을 찾아 통 안에 하나둘 담는 모습이 마치 작은 탐험가 같았다.


오늘도 손주들은 세상을 탐험했고 우리도 그 곁에서 함께 살았다. 행복했던 하루가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풍경으로 머물렀다. 그날의 공기, 물빛, 그리고 손주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마음에 스며든다. 그 순간들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가장 선명한 기억은 나의 마음속 깊이 새겼다.


누군가는 파리에서 예술과 건축을 보며 감탄한다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 호수에서 보낸 손주들과 함께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이고 추억이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온 손주는 할머니 집에 갈 시간이라 이제 가재들을 놓아주어야 한다며 조심스레 한 마리씩 호수로 돌려보내 주었다. 가재들은 고마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손주의 모습을 보며 또 하나를 배운다. 함께한 시간도, 기쁨도, 생명도 소중하면 다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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