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과 함께한 시간의 자리에서
오늘은 딸의 안내를 받으며 손주들과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랐다. 이름만 들어도 그림 같은 풍경이 떠오르는 곳. 파리 시내 북쪽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듯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손주들 손을 잡고 딸과 나란히 걸으며 다시 오르게 된 이 길은 사실 나에게는 조심스레 꺼내야 할 기억 하나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둘째 딸과 파리를 여행하던 중 이곳 몽마르트르에 오르면서부터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붐비는 관광객들의 틈을 타 다가오는 소녀들에 대한 경계심을 잠시도 늦출 수가 없었던 몽마르트르… 다행히 빠르게 눈치챈 덕에 큰일은 면했지만, 그 이후로 몽마르트르 언덕 하면 묘한 긴장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산책은 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손주들과 함께 오르는 길이고 든든한 현지 가이드인 큰딸과 함께하기에 덜 긴장하게 된다.
몽마르트르는 그때나 지금이나 관광객들이 넘쳐났지만,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평화롭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다시 만난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얀 돔과 곡선의 벽,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찬란한 모자이크 벽화는 바깥 풍경과는 사뭇 다른 정숙한 공기가 스며 있어 마음까지 고요해진다. 잠시 쉴 겸 손주들과 조용히 앉아 사진도 남겼다.
내려오는 길에 딸을 따라 들어간 몽마르트르 박물관은 밖에서 보기엔 작은 주택으로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정원도 보이고 제법 넓었다. 그곳에는 르누아르가 머물렀던 작업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작품 보는 것을 좋아하는 큰딸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덕분에 아름다운 몽마르트르의 변천사도 알게 되었다.
점심은 조금 특별한 곳에서 했다. 세계 피자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문난 피자집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게처럼 보였지만 몽마르트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명한 피자집이라고 한다. 피자를 좋아하는 남편은 잔뜩 기대하는 모양새다. 나 역시도 기대가 됐다.
좁은 자리가 겨우 났다. 딸이 몇 가지 종류의 피자를 주문했고 당연 대상 받은 피자도 주문했다. 잠시 후 세 판의 화려한 피자가 등장했다. 어떤 것부터 맛을 볼까, 딸이 대상 피자부터 맛보라며 한 조각씩 접시에 올려주었다. 이게 대상을 받은 피자냐며 남편이 물었다. 역시 피자는 한국식 피자가 더 낫다는 남편의 표정이 조금은 실망한 듯 보였지만, 한 번 먹어보기도 힘든 유명하고 귀한 피자를 딸 덕분에 맛볼 수 있었기에 몽마르트르에서 좋은 추억 하나를 남기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은 어쩌면 다시 만났을 때 치유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매치기당할 뻔한 그때의 나는 불안했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손주들과 함께 몽마르트르를 걸으며 웃는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전혀 다른 풍경을 보았다. 몽마르트르는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났고, 조심해야 할 것들도 있었지만 오늘 나는 이곳에서 다시 좋은 기억을 하나 더 얹었다. 이 언덕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