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소리 "엄마, 오늘은 어디에 갈까?" 이제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싶어 오늘만큼은 집에서 푹 쉬자고 슬쩍 제안해 본다. 하지만 딸과 사위는 파리에서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리가 없다. 아까운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안 된다며 이곳저곳을 검색해 기어코 오늘도 계획을 세운다. 엄마, 퐁피두 센터는 안 가봤다며? 밖에서 다 봤다고 하자 안에 있는 현대미술관은 꼭 봐야 한다는 딸의 말에 오늘도 든든한 현지 가이드를 따라나선다. 다행히 딸의 멤버십 패스 덕분에 우리는 긴 줄을 건너뛰고 회원 전용 입구로 바로 입장하는 행운을 누렸다.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문을 연 현대문화의 성지 같은 곳으로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파리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정서와는 다소 결이 다른 파격에 가까운 건축물은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를 했다고 한다. 이곳은 건물의 뼈대와 배관,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외부로 드러낸 독특한 스타일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퐁피두 센터 안에 자리한 현대미술관(Musée National d'Art Moderne)에는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작품 10만여 점이 전시되어 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전설적인 예술가뿐 아니라, 국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현대미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어렵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심오한 영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동안 많은 미술관을 돌아다닌 덕분일까, 이제는 작품들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현대미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기발함이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번역기를 이용해 설명문을 읽고 그림 속 숨은 의미를 상상하며 작가의 의도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물게 했고 가장 인상 깊게 본 그림 중 하나는 ‘개인적 가치’로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의심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품 보는 마음도 모녀가 통했던지 딸도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남편 역시 변했다. 예전에는 미술관에 가면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데 열중했던 남편이 이번 파리에서는 작품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엄마, 아빠 현대미술 볼 때가 제일 진지해 보였다며 딸이 한마디를 했다. 우리는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생각보다 현대미술은 어렵지 않았다. 정답 대신 느낌으로 읽어내는 예술,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더욱 빠져들게 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오롯이 ‘느끼는 존재’로 머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