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결혼식에서 배운 것

by 망청이

나에게는 8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엎어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다.

어릴 적 집에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 아이는 꼭 언니들 사이에 끼어 놀고 싶어 했다.

조잘조잘 말도 재미있게 잘해서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주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동생의 성장기를 나와 함께 지켜본 사람들이었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또 중학생·고등학생으로 자라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풍경이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머나 세상에!”라며 놀라워했다.

그런 어리고 응석 많던 동생이 늙은 노처녀 언니의 결혼을 포기라도 한 듯
먼저 시집을 가게 되었다.

결혼 날짜가 잡히고 몇 달 전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괜스레 눈물이 났다.
“선글라스 쓰고 가야겠어.”
“나 도저히 못 가겠다.”
장난처럼 내뱉었지만, 슬펐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자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 전에 얼마나 울었으면,
나는 이미 마인드 컨트롤의 신이 되어 있었던 걸까.
(내 오열파티를 구경하겠다며 일부러 참석 의사를 밝힌 친구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도 집에서 큰 행사를 처음 치르게 되었다.
친인척이 많지 않았던 터라 하객이 적을까 걱정하시던 아빠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언니 지인도 열 명은 올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올 사람… 세 명뿐인데…
나 친구… 많이 없는데…’

그런데 아빠 말이 맞았다.
어린 시절 그 꼬맹이가 결혼을 한다니,
모두가 신기한 듯 찾아와 주었고,
정말이지 자기들 동생의 결혼식처럼 기뻐해주었다.

멀리 사는 친구는 못 온 게 아쉽다며 직접 선물을 보내주었고,
직장 동료들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찾아와 주었다.

다들 “네가 못 가니까 대신 가는 거야.”라며 웃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마음은 무엇보다 따뜻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누군가의 형제자매 결혼식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마음을 써주고 함께해 줄 수 있을까.


어렵고 힘들 때나, 기쁘고 즐거울 때나
함께 나눌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건 이미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 꽤 괜찮게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소중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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