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상사는 ENTJ

by 망청이

첫 직장.
십여년째, 이직 없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직원 수는 열 명 남짓.
야근도 잦고 출장이 많지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웃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작은 회사다.


입사 첫날,
상사는 내 포트폴리오를 보더니
“형편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전공자들은 사회에서 쓸모없어.”

그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이 사람 밑에서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움이 스쳤다.


시간이 지나며 상사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늘어갔다.

INFP 성향의 나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마치 꾸중 듣는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며,

실수를 반복했다.

매일같이 혼나고 욕을 먹으니 자신감은 점점 사라졌다.

‘오늘도 혼나겠지.’
그런 생각으로 출근하던 날이 이어졌고,
‘이 회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상사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누구 앞에서든 나를 꾸짖었다.

두 시간 넘게 설교할 때도 있었다.

그저,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였다.

상사는 주저 없이 나서서 큰소리를 냈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이었다.


상사는 어디서든 중심에 서 있었다.
회의든 현장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전형적인 ENTJ 리더형 인간.
판단이 빠르고,
결정이 나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때로는 독불장군처럼 보였지만,
그만큼 방향이 명확했다.

감정보다는 논리를 따랐고,

회의에서는 언제나 결과부터 물었다.

“지금까지 한 건 뭐야?”
“그 판단의 근거는 있어?”

단호했고, 판단이 서면 밀어붙였다.
그때는 차갑다고 느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ENTJ 리더의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보다
일의 완성도를 선택하는 사람.

상사는 강한 사람에게는 강했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기세에 눌리지 않았고,
불합리한 일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거칠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믿음직스러웠다.


반면 나는
우유부단하고, 남을 이끌 용기조차 없었다.

늘 감정이 앞섰고,
갈등을 피하려 했다.

그래서일까.
상사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끌었다.

처음엔 그 단호함이 버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상사의 확신 속에서 안정감을 배웠다.


누군가는
‘리더’로 태어나는 사람이라는 걸,
상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상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여전히 단호하고,
여전히 앞서서 나서는 사람.


이제는 안다.
그가 던졌던 말들 속엔
‘이 일을 함께 키워가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다는 걸.


상사는 지금도 내 옆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형편없다던 그 상사,

냉정했지만

결국 나를 키운 사람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그 상사와

같은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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