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텅 비어가는 마음을 못 견뎌했다. 무릇 성인들의 가르침이나 저명한 종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마음을 비우라는 거였음에도 나는 그런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신뢰하고픈 생각은 없다. 내가 성인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닌데 왜 마음을 비워야 하는가 말이다. 마음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게 우리네 삶인데.
그래서 나는 성인이나 종교인도 아니면서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이를 볼 때면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려는 사람이거나, 어떤 일에 자신이 없어서 내뱉는 변명으로 보는 편이다. 설령 종교인일지라도 사람 좋은 표정 짓고서 말장난처럼 이러쿵저러쿵 조언하는 것도 딱 질색이다.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대상에는 진실로 마음을 비울 수 없는 게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러한 마음 비움도 우리는 선택적인 셈이다.
각종 매체에서 유명인들이 나와 삶의 지혜랍시고 떠드는 말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뒤로는 온갖 호박씨를 까거나 개인의 잇속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것들이 마치 세상 너그럽고 도통한 사람처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꼴을 보자면 인간이라는 족속의 가소로움마저 든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닐 테지만)
특히나 전업으로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선 문학도 그중의 하나여서 출간 서문에서 문학이 이렇네 저렇네 해가며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니 어쨌네, 사유의 집대성이라든가, 인간의 실존을 끌어내는 날카로운 문장이니 하는 말에서도 더없이 거부감을 느낀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썼는데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말이 더 담백하고 솔직하지 않나. 좀 많이 팔려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싶다면 누가 뭐라고 하는가 말이다. 왜 출간 서문은 한결같이 고고하기만 한지.
예전에 브런치를 탈퇴했다가 다시 브런치를 하게 됐다. 나는 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고, 좋아요도 많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 글만 쓴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야 할 텐데... 나는 이제 그런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퇴사한 이야기, 육아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 바람난 친구 이야기, 암에 걸린 이야기, 이혼하거나 별거한 이야기, 맛집 관련 음식이야기, 온갖 낚시성 제목인 글들... 그런 글을 읽는 게 이제 너무너무너무너무 싫고 지겹다.
댓글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가면서 칭찬하는 건 더 지겹고,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브런치에서 서로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솔직히 닭살 돋는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라는 직업군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나만큼 작가군을 시답잖게 보는 사람도 드물 테니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모두들 제 속을 감추고 겉으로만 온갖 척들을 다하는 경연장이 이곳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