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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Aug 12. 2024

마음 편히

나는 잡문을 읽을 때나 쓸 때면 마음이 드러난 글을 좋아한다. 그것도 적나라하게.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이렇게 행복해요,라는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온 날이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웠고, 앞으로 살아갈 날도 불행에 더 가까울 거라는 당연한 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행복하고 긍정적인 글을 읽으면 그 기운이 내게로 옮겨오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는 사실은 불행한 삶인데 나만 모르고 있다는 두려움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타인의 글에서 기필코 불행을 찾아내겠다는 건 아니다. 행복해요,라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불행해요, 식의 글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불행을 안고 사는 것처럼 자신을 동정하는 글보다 못난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과 불행의 글에서 굳이 택해야 한다면 역시나 불행에 가까운 글이다. 불행은 결핍이고 그러한 결핍에서 나온 글은 행복에서 나온 글보다 생명력이 오래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다. 마치 희극보다 비극이 더 오래 살아남는 것처럼.


문학에 첫발을 디딜 때 나는 문학의 가치를 대단한 '무엇'으로 여겼다. 문학개론에도 나와 있듯이 글쓰기의 목적 중 하나가 자기 구원이라고 했으니 그 말을 철저히 믿은 셈이다. 그래서 문학을 하기만 하면 나 역시 행복할 거라고 믿었을뿐더러, 부끄럽게도 남들이 조금은 부러워하는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짧은 몇 년의 글쓰기에서 내가 깨우친 것은 더 깊어진 외로움과, 전보다 넓혀간 결핍이었다.


나는 그러한 외로움과 결핍을 다시 글쓰기로 가져와야만 했고, 그런 과정을 거칠수록 내가 지닌 본연의 불행이 전에 없이 명확해짐을 느꼈다. 문학 그 자체로는 자기 구원을 해줄 수 없을 거라는 낭패감에, 설령 그 목적이 달성된다면 더 이상 문학을 할 수 없겠다는 딜레마 같은 거였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불행을 운명처럼 안고 가야 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작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앞으로 내가 써나갈 글의 좋은 교본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련된 언어로 쓰는 글이 아닌, 투박하지만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는 소설적 구성이 그것이다. 문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서술하는 그녀의 문학은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녀는 2005년 대담에서 자신은 항상 무엇인가를 상실한 후에 "커다란 공허를 강열하게 느끼며 그 결핍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일상생활에서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었고, 학업에 매달리고 교수 자격시험에 통과하고 아기를 낳는 등 현실적 일에 매달려 살아가던 중 가장 환상적인 두 가지 일은 '글쓰기와 섹스'였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이혼 후 내놓은《단순한 열정》은 유부남과의 실제 불륜을 다룬 이야기로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얼마나 사랑에 진심인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나는 아니 에르노만큼은 못되어도 그동안 잡문 같은 글일지라도 최대한 솔직한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내가 느낀 점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그런 행위가 누군가에겐 역겹거나 저질로 보일지라도 솔직함은 내가 글을 써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지, 무례함과는 결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희극을 원하지만 비극에 더 열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문득문득 이런 글을 쓸 때의 나는 종일 시나 소설에 파묻혀 있는 순간이 더없이 비극적으로 느껴질 때인데, 이렇게라도 해소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멍해지는 순간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내가 앞으로 글쓰기를 통해 감당해야 불행을 떠올리다 보면 사는 일이 이처럼 허망할 때가 있을까 싶다. 머잖아 노인이 될 테고, 나는 그때 가서야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지 못한 수많은 것을 후회하느라 또 불행할 것 같다.


에어컨 없이 보내는 여름은 해마다 더웠지만, 올여름만은 단 한 번도 덥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했으며, 그런 까닭에 나라는 인간은 확실히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사람일 수밖에 없겠다. 엊그제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이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고, 매미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으면 했는데 계절은 속절없이 가고 있었다.


내 삶의 마지막은 원망일까, 그리움일까, 아니면 회한일까. 부디 아무것도 아니면 좋겠다. 더는 가슴 뛰도록 그립지도 않고, 원망도, 회한도 없이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 티끌만큼의 애착도 없이 훌훌 떠날 수 있기를. 이 생에서 가져보지 못한 '마음 편히', 그렇게 다 두고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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