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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Nov 18. 2024

검은 봉지

2020 계간 『동리목월』소설 신인상

햇살 사이가 뿌옇다.

그 속에서 떠다니는 먼지를 볼 때마다 은영은 매번 숨을 참곤 했다. 혹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도 아니면 멀고도 먼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마네킹처럼 한쪽을 외면하고 살아야 했다. 막연하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으면서….

오후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은영의 시선은 습관적으로 교문을 향했다. 아버지는 그 시간쯤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해맑은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곤 했다. 사실 그 모습이 해맑았는지 어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로서는 최선의 표정으로 서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눈꼬리가 선명하고 언제나 눈썹 머리가 사납게 올라간 탓에 어쩌다 마주친 친구들은 그런 아버지를 어려워했다. 말쑥한 양복이 아닌 회색빛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는 세상 모든 소녀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친 사내의 모습은 웃는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 사내가 번번이 근처에 일이 있었다면서 뭔가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주고 갔다. 그러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했다.

"저녁에 공부하다가 출출할 때 친구들과 나눠 먹어."

다 큰 어른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여고 교문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이란…. 은영은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누가 볼까 싶어 얼른 달려가서 비닐봉지만 낚아채곤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뒷말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저녁에 공부하다가 출출할 때….’ 매번 여기까지만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덧붙인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는 말은 순전히 지어낸 말이다. 그 뒷말이 무엇이든 은영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더는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그런 은영의 마음을 알았는지 오는 횟수가 차츰 줄었다. 은영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곁눈질로 교문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오히려 친구들이 입맛을 다시며 왜 아버지 안 오냐고 캐묻곤 했지만, 은영은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라는 듯 대꾸하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딸을 보며 아버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날을 되돌려보는 건 아버지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철없는 후회일까. 이런 물음에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필시 팔자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 달갑지 않은 추억에 붙들려 마침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상은 어김없이 울렁증을 동반했으니까. 그렇게 한번 가라앉은 마음은 다시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서면서 무한 반복으로 이어지곤 했으니까.

서울에서 출발한 지 벌써 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땐 사춘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시로 파고드는 울렁증은 어떤 식으로든 풀지 않고는 못 배기게 했다. 오월이 다가올 때면 사월이 끝날 무렵부터 무력해지다가 거리 곳곳에 진열된 카네이션을 만나는 날엔 그 붉은 꽃잎만큼이나 어딘가 몽롱한 정신으로 떠다니곤 했다.

“당신 성격도 참, 어지간하다. 어릴 때는 다 그렇지 뭐, 그게 뭔 대수라고….”

고향에 다녀오겠다며 작심하고 집을 나서는 은영의 뒤통수에 대고 신랑은 푸념처럼 투덜거렸다. 거리의 화단에는 이른 철쭉이 제각각 해바라기로 아우성치는 완연한 봄이었고, 핸들을 잡은 지 정확히 네 시간 십 분 만에 은영은 고향의 복개천을 따라 액셀을 밟고 있었다.

휴일의 정오를 지나는 고향은 어딘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가 확장되고, 없던 길이 생겨나고, 터널도 몇 개나 새로 나 있었다. 무엇보다 이웃 시와 통합되어 시에서 구로 바뀐 뒤부터는 모든 게 이질적이었다. 그래선지 네 시간이면 도착하는 이곳이 은영에겐 어떤 이국보다도 낯선 곳으로 다가왔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니 만개한 벚나무가 즐비한 담벼락이 이어졌다. 여고 시절 꽃비 맞으면서 수없이 걸었던 길이다. 은영은 오래전 아버지가 지금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그와 동시에 현기증으로 온몸이 허공에 붕 뜨는 나른함도 함께 몰려왔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휴게소에서 마신 커피 외엔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탓일 게다. 우선은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은영은 학교 근처 분식집으로 차를 몰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닫은지라 돌아 나갈 즈음이었다. 분식이라고 써진 글자에서 ‘분’이라는 글자가 스르르 열리면서 남녀 커플이 산악용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낸 채 나오는 게 보였다. 분식류의 메뉴가 색색의 나뭇잎 모양으로 걸려있는, 학교 앞 분식집치곤 제법 아담한 인테리어를 뽐내는 곳이었다.

“아주머니! 지금 떡볶이도 돼요?” 여고 시절의 습관적인 주문이었다.

“하모예, 분식집인데 안 되는 기 어딨습니꺼, 다 됩니더.”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은 새색시처럼 볼이 발그랗게 피어올랐고 쌍까풀이 예쁘게 진 눈으로 은영을 향해 웃으며 대꾸했다. 밖으로 시선을 두자 격자창 너머로 아버지가 서 있던 학교 정문이 네모난 유리에 갇혀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한자리에 걸려있는 빛바랜 정물 같았다.

선반에 장식으로 올려둔 복고풍의 전화기를 보자 은영의 기억 속에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버지가 없는 휴일이 더 평화롭게 느껴지는 일요일 아침이었고 퇴근한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전화벨은 어떻게든 이 평화를 깨버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듯 끊어지지 않고 울어댔다.

“이것아 전화 좀 받으면 어디 팔이 부러진다냐.”

엄마는 고춧가루가 잔뜩 묻어 빨갛게 물든 고무장갑의 한쪽을 벗으면서 전화기께로 무릎걸음을 하면서 말했다. 여전히 재래식 부엌인데다 방으로 들어오자면 신발을 벗고 높은 문턱을 지나야 했기에 엄마는 괘씸하다는 듯 혼잣말을 하고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네, 무슨 일인교….”

은영은 이어폰을 꽂아서 안 들리는 시늉을 했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괄괄했다가 일순간 사그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이어폰을 빼는 시늉을 하면서 멀뚱히 엄마를 쳐다봤다.

“네네, 알겠습니더. 예 압니더. 네네, 금방 갈께예”

엄마는 연신 굽신거리면서 ‘네네’를 반복하더니 병원 이름을 재차 확인하듯 묻곤 수화기를 든 채 말이 없었다. 벗어든 고무장갑 한 짝에서는 붉은 양념 물이 장갑의 끝으로 모였다가 이내 방울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 그라노? 무슨 전환데?”

“야야, 우야노, 너거 아부지 다칬는갑다. 병원이란다. 우야노!”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모습이었다. 좀 전의 괄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진 2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격주로 아버지를 보곤 했는데 은영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고로 진학하고부터는 꼭 그만큼의 거리감이 쌓이고 있을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가난한 살림살이가 너무 싫었다. 친구들 아버지처럼 근사한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행복의 증거와도 같은 외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아버지는 늘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는 엄마까지 덩달아 미울 정도였다. 은영은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 무사히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죽으라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은영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다는 듯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고 입학식 날이었다. 그날도 아버진 야간 일을 마치고 예의 피곤함에 절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산하게 차려입은 엄마를 보면서 어디 가냐고 물었을 때였다.

“오늘 은영이 고등핵교 입학식 아잉교, 후딱 댕기 올 테니께 고마 한숨 자고 있으이소.” 엄마는 여전히 거울을 보면서 어울리지도 않게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면서 대꾸했다. 평생 꾸미지 않던 엄마가 작심하고 치장하는 모습은 또 어찌나 촌스럽던지……

“안 와도 되는데 뭐하러 오는데? 입학식은 안 와도 되는기다.”

엄마는 딸년 키워봐야 하나 소용없다는 표정으로 “야, 이것아 졸업식도 안 와도 된다. 입학식도 안 와도 된다. 그라모 딸년 학교는 내사 언제 한번 가보노?”

고데기로 머리를 말던 엄마는 거울 속의 은영을 보며 눈을 치켜떴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늦가을 휴일의 거리는 노란 은행잎들로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바람결 따라 아스팔트를 긁으며 이리저리 뒹굴던 잎들은 일사불란하게 모였다가 이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잎새』에서 존시가 침대에서 바라본 담쟁이 잎들이 떨어질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 쓸쓸함을 깬 건 순전히 택시 기사 아저씨가 불쑥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저기 순댓국집에서 우회전하면 됩니더, 다 와 갑니더.”

그제야 아버지가 다쳤다는 전화를 받았고, 좀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고춧가루 범벅인 고무장갑을 꼈었다는 게 떠올랐다. 택시 기사는 자기만큼 이렇게 빨리 도착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듯 득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원은 학교 가는 길에 버스에서 보면 한 길 너머로 중간층부터 보이는 건물이었다. 매일 보면서도 몇 층짜리 건물인지 몰랐던 곳, 병원이라면 으레 흰색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건물 외벽 한쪽으로는 전면이 하늘색이었다. 군데군데 그려진 꽃잎과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동물을 보면서 마치 동물원으로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엄마가 허겁지겁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병원이라는 게 실감 났다. 휴일의 병원 로비도 거리처럼 한산했다. 접수대에서 수납과정을 설명하는 멘트가 없었더라면 은영은 관람료가 얼마인지 물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소, 아가씨! 좀 전에 병원이라면서 전화해서 왔는데예, 우리집 양반이 지금 여기 있다고….”

엄마는 뒷말을 얼버무렸고 데스크 창구의 여직원은 전혀 급하지 않다는 듯 차트를 살펴보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바깥분이 이영철 씨 맞으세요?” 엄마는 그저 네네, 거렸고 은영은 한 걸음 옆에 서서 다음 차례인 양 무심히 보고만 있었다. 문득 아버지의 이름이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던 엄마만큼이나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호떡이 들어 있었고, 잉어빵이 들어 있었고, 어떤 날은 순대와 떡볶이가 들어있었다. 친구들은 매번 아버지가 올 즈음이면 종이 울리기도 전에 은영이보다 먼저 교문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날은 초록의 잎들이 경쟁하듯 싱그러움을 더해가던 개교기념일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날이었고, 그걸 알 리 없는 아버진 그날도 여전히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예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여고생을 바라보며 아버진 얼마나 당황했을까, 학생들은 저마다 누구지? 뭐야? 했을 것이고, 어쩌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앞서가던 친구들이 아버지를 봤는지 은영이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은영아!  아부지 왔네.”

한 친구가 뒤돌아보며 양손을 한껏 모아 큰 소리로 불렀다. 순간 친구의 시선을 따라 아버지가 은영이를 찾았고, 그와 동시에 은영이는 못 본 척 돌아섰다. 정확히 그즈음이었다. 아버지가 서 있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게. 그날 아버진 야간 근무하러 공장으로 곧장 갔고, 은영이는 아무 일 없는 듯 집으로 왔다. 싫다고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던 그 날의 검정 비닐봉지는 끝내 아버지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또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창틀의 구석진 곳을 차지한 먼지가 제자리에서 두께를 더해가듯 그날의 기억은 매번 모습을 바꿔가면서 자신을 불러냈다. 그때마다 은영은 충실히 불려가길 반복했다. 봄바람에도 힘없이 부스럭대다가 한껏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든 봉지는 만지면 만질수록 작아지면서 종국엔 한주먹에 잡히고야 마는 게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비닐봉지가 아닌, 형태가 갖춰진 틀에 담겼더라면 어땠을까….

기다란 곡선으로 휘어진 병원 소파는 햇살을 받아 유난히 아늑하게 보였다. 모서리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미니 화분이 놓였는데 자연 도감에서 봤던 기억으로는 시클라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소곳이 잎을 떨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잠자는 꽃처럼 보였다. 병원이어서 그런지 고개를 숙인 꽃조차 안정을 취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대기자 번호가 깜빡거릴 때마다 마이크를 통해 전형적인 멘트가 울려 퍼졌다.

언젠가 소설책에서 읽었던 인공지능으로 운영되는 미래병원이 떠올랐다. 도무지 아픔이라는 걸 모르는 AI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시종일관 원리원칙만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결국엔 모든 쇠붙이가 지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동 수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타려고 해도 기계의 허락이 있기까지는 꼼짝달싹 못한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이었다.

엄마는 벌써 엘리베이터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경보선수처럼 재빨리, 그러나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하마터면 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긴 복도를 따라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동안 엄마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퍼뜩퍼뜩 안 오고 뭐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403호였다. 지금쯤이면 피곤함에 절어 자고 있을 아버지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문득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질 즈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F를 누르니 정확하게 4층에서 문이 열리면서 모녀를 빠르게 토해내고 닫혔다. 기계란 이런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어진 명령대로 수행할 뿐, 자신의 내부에 들어온 사람의 심리가 어떤지는 조금도 살피지 않는 법이다. 은영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도 기계 같은 사람이었다. 어린이날, 생일, 입학식, 졸업식, 크리스마스…. 아버진 조금의 예외도 없이 격주로 밤낮을 바꿔가며 출근하고 퇴근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 어떤 예외의 일로 이곳에 누워있는 것이다. 엄마는 4층이라는 숫자가 주는 미신 때문인지 왜 하필 4층이냐며 혼잣말을 했던 것도 같다.

병실은 한적했던 로비와는 달리 제법 많은 환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누워있었다. 한결같이 ‘XX 병원’이라는 글자가 세로 글로 선명하게 박힌 환자복이었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아니면 창문에 반쯤 내려진 블라인드 탓인지 실내는 초저녁처럼 어스름이 들이찬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누운 아버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늘 회색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이렇게 밝은색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검사만 받으모 곧 들어갈낀데 쓸데없이 머하러 왔노? 어떻게 알고 왔노?”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낯설었던 아버지가 예의 정확한 기계로 돌아온 순간이기도 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안 왔능교, 어데가 어떻게 아프요? 난 또 큰일 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침도 못 묵고 배 고프제?” 엄마는 그제야 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날 처음으로 엄마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본 것도 같다.

아버지 말로는 단순 과로일 거라고 했고, 몇 가지 검사를 마친 담당 의사는 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관에 이상이 생긴 거라고 했다. 덧붙여 본인이 관리하지 않으면 위암으로 전이될 수도 있는 상태라면서 식습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수업이 끝날 무렵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학교로 찾아온 것도 그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어린 시절 지나친 각종 기념일을 한꺼번에 챙기려는 듯이 뜬금없이 살갑게 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은영이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아버지도 그 무렵 알았을 것이다.     

*     


-딩 동 뎅 동, -딩 동 뎅 동….

“전화 온 거 아입니꺼? 전화 온 거 같은데예.”

여전히 새색시처럼 볼이 발갛고 쌍까풀이 예쁜 분식집 여자는 투박한 사투리로 빨리 전화 받으라며 손을 귀에 대는 시늉을 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아니, 어디 좀 들를 데가 있어서, 다 왔어. 곧 갈 거야.” 

설거지하면서 곁눈질로 힐긋거리던 여자는 궁금한 건 못 참겠다는 듯이 물어왔다. “타지에서 오셨는갑지예? 어쩐지 차림새가 세련되고 멋있다 캤습니더.”

느닷없는 말에 은영은 그저 고개만 조금 끄덕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타지….’ 그랬다. 여고를 졸업하고 그토록 원하던 서울로 대학을 갔을 때도 그곳은 낯선 타지였다. 졸업하고 처음 광고회사에 발을 디뎠을 때도 타지는 언제나 따라붙는 꼬리표와 같은 거였다. 지금의 신랑을 만나 서울에 눌러살아도 이따금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은 그대로였다. 다른 집 딸들은 결혼하고 나면 친정엄마랑 친구처럼 잘도 지낸다던데 어째 전화도 잘 안 하느냐고 늘 타박이신 엄마였다. 그럼에도 오늘처럼 막상 집에 내려간다고 하면 무슨 일이라도 있냐면서 걱정부터 하는 엄마였다. 그럴 때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딱히 이유를 들 수도 없는 것들이 이유가 될 때 은영은 언제나처럼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굳어진 성격은 친정 부모님에겐 당연한 모습이 돼 버렸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사춘기 시절이 지금도 여전히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두 분은 보육원에서 만났다고 했다. 외로웠기에 서로에 대한 정은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은영은 두 분의 사랑으로 외롭지는 않아야 했고, 돌이켜보면 마땅히 그랬어야만 했다. 하지만 인생에 황금기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을 거라 믿던 때였다. 가난하다는 건 포기해야 할 것들을 절반쯤 안고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돈이 이유가 된다는 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속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은영이가 꿈꾸는 세상에서, 그리고 꿈꾸고 싶은 세상에서 그 속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반쯤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 짓고 있었다. 적어도 은영이에겐 그랬다.

전화기 수신 벨 소리를 은영이 몰래 학교 벨 소리로 설정해놓은 건 순전히 신랑의 장난기였다.

“이 소리가 대체 왜 싫다는 거야? 난 학교 다닐 때 이 소리가 제일 신나던데.”

수업을 마치는 소리가 얼마나 좋냐면서 집에서도 장난스레 부러 전화를 걸곤 했다. 구김살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처럼 작업복 입을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집안 대청소라도 하는 날에도 꽤 근사한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은영이를 처음 만났을 때, 흔한 여자들처럼 재잘거리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어떻게든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가볍지 않아야 했노라고, 그게 가난이 준 교훈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버진 다음날 바로 퇴원했다. 담당 의사는 엄마를 따로 불러 한참 동안 아버지의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 멀리서 보는 엄마의 표정이 잠시 굳는다 싶더니 다시 풀어지고 있었다. 아버진 며칠 더 집에서 쉬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러다 언젠가 주간 근무를 하는 주에 아버지랑 함께 집을 나선 날이었다. 가을로 접어든 거리는 계절의 빛깔을 운치 있게 드러냈지만 은영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걷는데 아버지가 불쑥 이어폰 한쪽을 빼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듣냐? 한번 들어보자…. 뭐야? 아무 소리도 안 나는구만.”

“그쪽 고장 나서 안 나와, 줘!”

얼른 뺏어든 은영이는 다시 귀에 꽂았다. 느닷없이 살갑게 다가서는 아버지가 어색하고 싫었다. 등굣길에 굳이 따라나설 때부터 혹시라도 친구들이 볼까 봐 내심 불안했던 것도 있었다. 학교에선 얌전한 모범생이었지만, 훗날 삶의 출발선에 섰을 때 절반의 포기를 안고 출발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이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했고 친구들과도 가급적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 덕분에 성적표에 기록된 학교생활 난에는 늘 솔선수범하고 급우들과 원만하며 명랑하고 쾌활하다고 적혀있었다. 성적표를 받아도 집에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분은 성적표를 나눠 준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친구들은 은영이를 부잣집 딸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적어도 아버지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그곳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튼, 은영이가 기억하는 모습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걸었던 것 같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햇살에 은행잎이 유난히 샛노란 아침이었다.

여고 시절 수없이 드나들던 교문에 섰다. 졸업하고서 한 번도 찾지 않았던 학교였다. 휴일이라 몇몇 학생들만 운동장 벤치에서 보였을 뿐, 그저 평온한 교정의 모습이었고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지금이라도 종이 울리면 마치 교실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친구들은 졸업 후에도 스승의 날이다, 동창회 모임이다, 해서 학교를 찾았지만, 은영은 이런저런 핑계로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아쉬워했지만, 은영은 아버지가 오도카니 서 있던 그 자리를 어떻게든 잊고 싶었다.

지난날 이곳에서 외면했던 검은 봉지에 든 것이 이어폰이었음을 안 것은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우연히 열어본 옷장에는 아버지의 작업복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걸려있었다. 작업복으로 가득한 옷장은 신사복이 가지런히 걸린 모양새였다. 텔레비전에서 아내가 남편의 옷을 받아들고서 옷걸이에 걸어 넣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딘가 부러워했던 엄마였다. 도시적인 생활에 대한 동경이라면 동경일 모습이 어설프기 짝이 없게도 작업복을 걸어두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작업복의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검은 봉지가 보인 것도 그때였다. 안에는 새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이어폰이 들어있었다. 은영은 순간 물건을 훔치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 마냥 그대로 두고 옷장을 닫았다. 다음날 카세트에는 고장 난 이어폰은 사라지고 새 이어폰이 꽂혀있었는데 은영은 모른 척했다.

교정의 봄볕이 이렇게 따사로울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동안 그날의 기억도 조금씩 윤곽을 더해가고 있었다.

“아따, 내려왔으모 집으로 퍼뜩 올 것이지, 어데서 머하고 이제사 오노? 아침은 묵고 내려 온기가?”

엄마는 여전히 괄괄했다. 시간은 모든 걸 변하게 만든다지만 엄마의 다부진 말투만은 비껴갔다. 부엌과 방문께를 잇는 높은 턱도 여전했다. 고춧가루를 묻힌 채 넋 놓고 섰던 그날처럼 엄마는 대뜸 고무장갑 낀 손으로 당면 한 줌을 집더니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이거 맛 좀 한번 바라 간이 심심한가 모르것네, 늙으니까 입맛도 변하는기라”

엄마 눈엔 여전히 철부지 여고생으로 보이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말투였다. 은영은 한입에 쏙 받아먹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최고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엄마도 기분이 좋은지 꿀밤을 먹일 듯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버진 계속 일하시겠대? 이제 좀 쉬시면서 엄마랑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시라고 해. 평생 일만 하다가 죽겠네.”

“아따, 말 같은 소릴 해라. 너거 아부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가? 일 안 하면 죽는 줄 아는 양반 아이가, 놔두라. 그래도 가만히 집구석에서 드러눕는 것보단 아파트 경비래도 움직이는 기 나은기라. 병원에서도 안 그카더나. 무리만 안 하모 움직이는 게 낫다고.”

“……”

“그라고 와, 전에 니가 아부지 생일이라고 사준, 거 머시냐, 트로트만 나온다는 카세트 그거 안 있나, 그거 맨날 끼고 안 사나, 노상 그거 틀어놓고 일하는갑더라. 아파트 주민들이 지나다가 시끄럽다고 눈치 주니까 언자는 한 짝은 들리지도 않는 그 이어폰인가 머신가 고걸 어디서 구해와 갖고는 혼자서 실실 웃고 그란다 아이가. 그래도 딸내미가 사준 기라고 끔찍이도 아끼는기라.”

“……”

일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삼만 원 주고 산 걸 말하는 것이리라. 먹먹한 마음은 은영이를 또다시 뫼비우스의 띠 위로 올려놓았다. 정작 가난이 주는 설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아버지 탓으로만 여겼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게 어떤 삶인지, 지금도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이 보였다. 한눈팔지 않고 평생을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아버지였다. 비록 꾀죄죄한 작업복이지만 그 덕에 대학을 다녔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신랑의 다정다감함도 아버지의 성실함을 자신보다도 더 이해하신 시아버님 덕분인지도 모른다. 첫 상견례가 있은 후부터 은영을 대하는 시아버님의 태도가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자신보다 먼저 알아봐 주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며 살았다. 여성으로서의 선구자적 길을 걸어간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는 모습이라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라는 말이 좋았다. 다만,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담글 수 있을 만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에서 잠시 멈칫거리긴 했지만.

아버진 병원에 두어 번 더 입원하고서야 일을 그만두었다. 엄마의 성화가 한몫했겠지만, 공장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은영의 말에 망설임 없이 그만두셨다. 그때는 아버지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단 그저 시댁에서 아버질 어떻게 볼까 싶은 마음에 더 그랬을 것이다. 은영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춘기를 안고 살았다.

“자, 다 됐다. 이거 너거 아부지한테 좀 갖다주고 온나.”

찬통에 넣고도 비닐봉지로 얼마나 싸맸는지 겉으로 봐선 뭐가 들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걸 내밀었다.

“이기 뭔데?”

“머긴, 잡채지. 너거 아부지 잡채라면 환장한다 아이가. 모르나?”

은영은 이내 안다는 시늉을 했지만, 잊고 살았다는 사실에 귀밑이 홧홧 달아올랐다. 엄마는 보육원에서 지낼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게 떡볶이와 순대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결혼하고서도 떡볶이와 순대로 끼니를 대신할 정도였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배불리 먹었을 때의 행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곧잘 했다. 밤에 배가 고파 식은 잡채를 몰래 먹다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맞았다던 보육원 시절의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는 찔꺽눈이 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주어진 처지에서 묵묵히 산다는 것이 그저 체념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린 셈이다.

찬합에 가득 넣은 잡채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혹시라도 기름이 배어 나올까 봐 이중 삼중으로 비닐을 싸서 더 그랬을 것이다.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였다. 지난날 부끄러워서 도망가게 만들었던 그 봉지 안에 아버지의 매 맞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스며든 봉지는 유난히 반들거렸다.

동네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옛집들이 무더기로 헐린 자리에 새로 지은 아파트라고 했다. 아파트라고 하지만 동이 두 개인 아파트였다. 아버진 101동과 102동을 매주 번갈아 가는 경비직이었다. 서울의 대형 아파트 경비실은 규모나 시스템적인 면에서 근무환경이 여느 직장인 사무실과 다르지 않았지만, 시골의 경비실은 그야말로 한 평 남짓한 좁은 곳에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채였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고 지난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오후 내내 따갑게 비추던 볕이 사그라지는 거리는 아름다웠다.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순한 황금빛으로 번지는 말랑한 햇살들이 발밑으로 번지고 있었다. 벚꽃이 진자리엔 푸른 잎들이 저마다 생글거리며 연둣빛으로 일렁거렸다. 군데군데 파스텔을 뿌려둔 듯한 연노란 산수유는 언제 져버렸는지 노란 꽃빛의 아득한 향만 남았다. 누구나 생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갈 테지만 그 상흔이 꽃으로 피어날 때 당신 속에서 자란 흉터도 어쩌면 꽃이 지는 서러움만큼이나 아팠을 것이다. 그렇게 늙어오신 당신, 지나간 시간이 남은 시간보다 무겁다는 걸 안다는 건 그래서 더 서글픈 일이다.

저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황금빛 햇살을 받은 공터가 더없이 빛나 보이는 곳에서 오늘도 회색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비질을 하고 있었다. 허리가 반쯤은 구부러진 사내, 잡채를 몰래 먹다 멍이 들도록 맞았다던 가여운 아이가 눈에 어른거려 가슴께로 찌르르한 통증이 지나갔다. 지난날 사납게 하늘을 향했던 눈썹 머리는 힘없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던가, 은영은 잡채가 가득 든 봉지를 높이 치켜들어 보였다. 천진한 아이처럼 한쪽이 고장 난 이어폰을 낀 늙은 사내가 환하게 웃었다.

몇 겹으로 싼 검은 봉지가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중이다. 그때 은영은 어디선가 울려온 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닫혔던 교문이 열린다. 거기 회색빛을 한 사내가 해맑게 서 있는 걸 본 것도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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